그 눈물겨운 생존의 역설
[단어의 속살, 삶의 의미]
세상에는 참 모진 말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백미(白眉)는 아마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의 소중한 것을 가로챌 때, 혹은 힘든 처지에 있는 이에게 염치없이 무언가를 뜯어낼 때 우리는 이 말을 쓴다.
최근 격식을 갖추어야 할 상황이 발생, 예상치 못한 지출에 ‘눈탱이’를 맞고 나니, 내 처지가 꼭 그 간을 내어주는 벼룩이 된 것만 같아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아니, 벼룩에게 정말 간이 있기는 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벼룩은 곤충이라 우리 인간 같은 ‘간’이라는 장기가 없다.
간은커녕 몸집 전체가 깨알보다 작은데, 거기서 내 먹을 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이 하필 ‘벼룩의 간’을 소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우리 선조들의 기가 막힌 비유력에 다시 한번 간담이 서늘해진다.
‘벼룩’은 그 자체로 ‘작고 보잘것없음’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 작은 벼룩의 몸 안에, 보이지도 않는 ‘간’이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즉, 세상에서 가장 작고 미미한 존재가 가진, 생명과도 같은 아주 최소한의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말은 물리적인 장기를 뜻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뺄 것도, 줄 것도 없는 극한의 상태”를 상징한다.
벼룩에게 간이 있든 없든, 그만큼 절박한 사람의 것을 탐내는 그 몰염치함을 꾸짖기 위해 이보다 더 극적인 비유가 어디 있겠는가.
보이지도 않는 간을 내어주어야 하는 벼룩의 고통과, 그것을 기어이 찾아내어 내먹으려는 탐욕의 대비가 자못 서글프기까지 하다.
요즘 보면 항공사들의 항공운님 정책이 너무나 야박해 혀를 두른다. 좌석의 등급이 너무나 다양해 평범한 여행객의 주머니에서 야금야금 빠져나가는 예상 밖의 비용들... 그것들이 꼭 우리네 ’ 간’을 떼어가는 것 같아 “젠장!” 소리가 절로 나오는 모양새다.
하지만 ‘쑥대밭’ 된 마음을 추스르고 이 표현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넉넉해지는 기분이다.
벼룩의 간을 내먹으려는 세상!
그러나 우리는 이토록 찰진 비유를 통해 해학으로 버텨온 민족 아니던가.
비록 내 주머니는 조금 가벼워졌을지언정, 이런 흥미로운 어원을 찾아내어 글로 옮길 수 있는 지적여유만큼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나만의 ‘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란 참으로 묘하다. 파고들수록 내 무지가 부끄러워지다가도, 끝내 이 자랑스러운 우리말의 품격 앞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니 말이다.
자, 이제 또 어떤 재미있는 말이 내 호기심을 또 자극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