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틔울 수 없는 마음애는 씨를 뿌리지 마라
<단어의 속살, 삶의 무늬>
우리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거나, 상대의 주장이 현실성이 전혀 없을 때 단호하게 내뱉는다.
“어디 씨도 안 먹히는 소리 하고 있어!”라고. 심할 때는 ” 어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라고 까지 한다.
이 거친 듯 명쾌한 표현 속에는 수천 년간 흙을 일구며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지독히도 현실적인 농사 철학이 서려 있다.
본래 ‘씨가 먹힌다’는 말은 씨앗이 땅속에 제대로 안착하여 싹을 틔울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농부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 씨를 뿌려도, 땅이 돌덩이처럼 굳어 있거나 메말라 있으면 씨앗은 흙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겉돌다 새의 먹이가 되거나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즉, ‘씨도 안 먹히는 소리’란 받아들이는 토양(상대방의 마음)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거나, 뿌려지는 씨앗(말의 논리) 자체가 생명력이 없을 때 사용하는 소통의 파산 선고다.
이 상황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비유는 아마도 ‘사막에 내리는 이슬비’ 일 것이다.
타오르는 사막 한가운데 이슬비 몇 방울을 떨어뜨린들, 그것이 땅을 적시고 생명을 싹 틔울 수 있겠는가?
지면을 적시기도 전에 증발해 버리는 그 빗방울처럼, 공감 능력이 메마른 사람에게 던지는 논리적인 설득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또 다른 사례로, 얼어붙은 한겨울의 강판 위에 콩을 던지는 행위를 떠올려 보자!
콩은 땅에 박히는 대신 경쾌한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상대를 이기려는 욕심만 가득해 마음의 문을 꽉 닫아건 사람에게 건네는 조언은, 바로 저 얼음판 위에 던져진 콩알과 같다.
톡톡 튀어 달아날 뿐, 단 한 알도 마음의 대지로 스며들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내가 뿌리는 ‘씨앗(말)’이 얼마나 귀하고 옳은지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의 고수는 씨앗을 탓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토양’을 살핀다.
지금 저 사람의 마음이 가시덤불인지, 혹은 딱딱한 길가인지를 먼저 헤아리는 것이다.
씨도 안 먹힐 땅에 억지로 씨를 뿌리는 것은 아까운 씨앗만 낭비하는 꼴이며, 나중에는 농부(말하는 이)의 기운마저 소진하게 만든다.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씨도 안 먹히는 소리 말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나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 마음의 밭이 너무 굳어 있어 상대의 진심을 밀어내고 있다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삶의 무늬는 결국 내가 어떤 씨앗을 뿌리고, 또 어떤 씨앗을 받아들여 싹을 틔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부디 영양가 없는 헛소리로 남의 밭을 어지럽히지 말고, 동시에 누군가의 귀한 진심이 내 마음의 문턱에서 튕겨 나가지 않도록 스스로의 마음 밭을 부드럽게 일궈두어야 할 일이다.
싹 틔울 가능성이 없는 곳에 미련하게 씨를 뿌리지 않는 단호함, 그리고 좋은 씨앗이 왔을 때 기꺼이 그것을 ‘먹어줄(수용할)’ 줄 아는 유연함. 이 두 가지가 만날 때 비로소 우리 삶에는 풍성한 수확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