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로다 가 주는 교훈
아침에 나의 브런치 글에 공감을 표해주신 분들의 글을 하나하나씩 읽다 보니, 한 분의 글에서 “나도 한번 이 글의 소재를 다른 각도로 조명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의 문구인데 나름 재해석해서 많은 분들과 공유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 마디로 “책임전가 •책임회피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가 오늘 글의 핵심 주제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리다."
구약성경 에스겔 18장에 등장하는 이 기이한 속담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에 달고 살던 '변명'이었다.
조상의 잘못 때문에 자신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는 억울함의 표현이자, 불행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전형적인 '탓'의 심리학이다.
신 포도를 먹은 당사자의 이가 시린 것이 당연한 이치이며, 행위와 결과 사이의 정직한 인과관계를 회복하라는 준엄한 선언으로 해석된다.
1. '조상 탓'의 시대에서 '내 탓'의 시대로!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연대 책임이라는 미명 하에 개인의 과오를 집단의 문제로 희석하거나, 반대로 윗세대의 과오를 아랫세대가 고스란히 떠안는 모순을 겪어왔다.
그러나 위의 사례가 제시하는 ‘개별 책임의 원칙'은 현대 민주주의와 공정성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내가 먹지도 않은 포도 때문에 이가 시려야 한다면 그 사회는 불공정하다.
반대로 내가 단 포도를 마음껏 탐닉했는데 그 대가를 타인이 치러야 한다면 그 사회는 부패한 것이다.
공정의 시작은 결국 ’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개인'의 확립에서 출발한다.
2. 인과응보의 경제학: 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 논리에서도 이 원칙은 유효하다. 무분별한 과잉 소비나 도덕적 해이는 결국 누군가의 '이가 시린' 결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고통의 주체가 행위 당사자가 아닐 때 시장의 질서는 무너진다.
우리는 흔히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한다.
환경이 나빠서,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혹은 시스템이 문제라서라는 핑계 뒤로 숨는다.
하지만 에스겔은 말한다. 의인은 그의 공의로 살고, 악인은 그의 악으로 죽을 뿐이다. 선택의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라는 비용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맺으며: 정직한 감각을 회복할 때
"내가 먹었는데 왜 아버지 이가 시린가"라는 질문은 역설적으로 우리 시대의 책임 전가 문화를 꼬집는다.
부모의 후광으로 이득을 보거나, 반대로 자신의 실패를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모든 행태는 에스겔이 금지한 그 '낡은 속담'의 변주일 뿐이다.
결국 인생이라는 식탁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은 단순하다.
내가 집어 든 포도가 시다면, 기꺼이 내 이가 시린 고통을 감내하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정직한 문법이다.
이제는 타인의 이가 시리기를 바라는 비겁한 기대를 접고, 자신의 손에 들린 포도를 응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