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모처럼 숙소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었고 몇 분 차이는 아니겠지만 나는 가장 먼저 자리를 일어나 문을 나섰다. 아직 6시가 안 되었고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내 걸음이 느리긴 느린가 보다. (왜지?) 어제 우리 숙소에 같이 묵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를 앞질러 가더니 한 시간쯤 지나니 어제 숙소 친구들은 길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걷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늦는 만큼 땡볕 아래서 더 오랜 시간 고생하게 된다. 스틱이 없어서인가? 괜히 도구 핑계를 대본다.
오르막 길의 연속이었다.
아이러니하게 몸이 고통스러우면 풍경은 더 아름답다. 그래도 땡볕보다는 오르막 길이 나았다.
문제는 내리막 길이었지만 말이다.
오르막 길이 있으면 당연지사 내리막 길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 그 두 길을 다 만날 줄은 몰랐다. 나는 평소에도 내리막길을 더 힘들어하는데 내리막과 돌길의 조합은 나에게 최상의 난이도다. 오늘은 큰 배낭도 함께다. 튀어나온 돌과 자갈들 때문에 온몸이 긴장되고 다리에도 힘이 더 많이 들어간다. 오늘은 내가 왜 스틱을 중간에라도 사지 않았을까 조금 후회가 되었다.
최근 계속 평지였어서 고도는 체크하지 않고 거리만 체크했던 나의 실수다. 그래도 구름 낀 날씨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제 끝인가? 이제는 진짜 끝나겠지? 음... 아니네...'
중간에 쉬지도 못하고 계속 내리막 길을 걷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애들이 뭔가 맘에 들지 않았을 때 터지는 짜증 섞인 울음... 보진 않았지만 내 표정은 거의 유치원생 수준이었을 것이다.
순례길 첫날 피레네 산맥을 제외하고(그날은 다른 종류의 힘듦이었으므로) 오늘이 몸이 힘든 걸로는 단연코 1등이었다.
드디어 마을로 진입했지만 내가 오늘 머무를 숙소는 마을에 끝쪽에 있었다. 너무 힘들면 그냥 멈춰서 일단 보이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쉬어도 됐지만 한번 앉으면 일어나기 힘들 것 같고 도착해서 편한 게 쉬고 싶은 마음에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3~4분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그런 맘으로 힘겨운 한걸음 한걸음을 떼었다.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오죽했으면 7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너 괜찮니? 어디까지 가는 거니?"
걱정스럽게 물으셨고, 그 숙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나온다고 알려주셨다.
몇 걸음 좀 더 가다 보니 어려 보이는 동양인 여자애는
"너 너무 힘들어 보인다. 내가 도와줄까?"
하며 나의 작은 가방이라도 들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기분과 상태가 얼굴에 아주 정직하게 드러나는 타입이긴 한데 여기서도 정말 투명하게 그대로 보이나 보다.(정말 고치고 싶은데)
본인 짐도 힘든데 다른 사람 짐을 들어주겠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데 그 마음이 고마워서 진심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염려할 정도로 보이나 민폐인가 싶어서 다시 정신줄을 바짝 잡고 다리에 힘을 주고 걸었다.
'곧이다! 힘내자!'
어제 숙소에서 순례길이 다섯 번째고 프랑스길은 이번이 두 번째라는 이탈리아 남자(이뇨)를 만났다.
"너는 까미노 얼마나 됐어?"
"나 한 20일 쫌 넘었을걸?"
"그럼 너는 지금부터는 Spiritual phase겠네."
라고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Body, Mind, Spirit 이렇게 3단계의 여정이라고 한다.
내 경우는 Mind-Body-Spirit에 가까운 것 같다. 초반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집중했었고, 이후는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다리도 아파와서 몸에 더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이뇨의 말처럼 spiritual phase에 진입한듯하다. 오늘은 정말 힘들어서 영혼도 털리고 30년간 잃었던 신앙도 돌아올 지경이었다.
이제 더 이상 지난 몇 달 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현재, 지금 걷기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Camino de Santiago, a Journey for the body, mind and soul.
D23: Santa Catalina de Somoza ~ El Acebo de San Miguel, 28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