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서 나의 행복을 찾을 것인가
이렇게 깜깜한 새벽에 걷는 것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도시 중심을 벗어나니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고 일교차가 컸다. 따뜻하게 입고 나왔는데도 콧물이 나왔다.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아쉽기도 하면서 내심 기쁘기도 했다.
눈부신 순간도 고통스러운 시간도 끝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은 있어야 하는 거니까.
오늘도 길에서 마주친 이뇨가
"내일모레면 끝이네. 너무너무 아쉬워. 이 길이 끝나지 않으면 좋겠어."
이뇨는 많이 아쉬운 눈치였는데 나는 “나도”라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오히려 반대였다. 마지막이 기대되기도 하고 이렇게 조금 아쉽다 싶을 때 끝나는 게 정말 좋았던 추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뇨는 프랑스 순례길이 이번이 두 번째라고 했는데 이미 와봤던 곳이라면 아무래도 감흥이 덜 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는 길에서 볼 때마다 온몸에서 행복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오늘 이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표정을 보니 왔던 길을 돌아가서 다시 시작이라도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느 구간을 지나고부터는 대부분 식당에 브레이크타임이 있어서 점심을 먹는 시간이 늦어졌다. 점점 기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었다.
여정의 끝에 가까워지니 그동안 오가며 인사를 하던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초반에는 순례길을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했냐를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나서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언제 돌아가는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국에서 여기 올 때는 '일단 가서 생각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와서 특별한 계획 없었다. 그냥 마드리드 out 이니까 순례길을 마치고는 근방의 와이너리를 다녀오고 마드리드에서 하루 휴식 후 일정을 마무리하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계획보다 나흘 정도 더 여유가 생겨서 몇 가지 옵션이 더 생긴 셈이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긴 하지만 시간 여유가 있게 온 순례자들은 순례길의 연장으로 '땅 끝'이라고 불리는 곳까지 간다고 했다. 한 달 동안 걷다 보니 갑자기 걷지 않은 것이 어색할 것도 같고 나도 스페인 서쪽의 끝까지 걸어가 보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다 와서 베드버그에 물렸다.
오기 전에 베드버그가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대부분 알베르게가 철제로 된 침대고 일회용 침구를 많이 써서 베드버그에 물렸다는 사람을 별로 보지는 못했기에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막판에 물리고 말았다.
20대에도 베드버그에 물렸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는 가려운 게 컸었다. 그런데 여기 베드버그는 가려운듯하면서 아프고 금세 부풀어 올랐다.
아마도 어젯밤에 걸어 놓은 빨래에 베드버그가 딸려 온 것 같았다. 창밖 빨랫줄에 널었었는데 어제 세탁기를 늦게 돌린 바람에 햇볕에 건조하지 못했고 빨랫줄에 널지 못한 일부 옷가지는 침대 프레임이 널었었다. 새벽에 빨래를 걷는데 축축해서 조금 찜찜하더니… 아무래도 어제 묵은 알베르게의 오래된 건물과 목재 침대가 문제였던 듯싶다.
낮이 되고 덜 마른빨래도 말릴 겸 햇볕도 가릴 겸 면티를 팔에 걸고 걸었는데 한두 시간 후부터 팔이랑 손이 가려웠다. 발가락과 발바닥도 쑤시는 느낌이었는데 덜 마른 양말에도 붙어 있었나 보다. 나중에 신발을 벗으니 손가락에 생긴 것과 같은 수포가 생겨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연고를 일단 바르고 발가락에는 밴드를 붙였다. 수포가 터지면 발가락은 염증이 생길지 모르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같은 숙소에 한국 여자분(주부님)이 계셨는데 베드버그에 물렸다고 하니 소지품을 건조기에 뜨겁게 한번 돌리라고 조언을 해주어서 침낭부터 배낭 옷가지를 모두 건조기에 고온 건조했다. 이후에는 더 이상 새롭게 물리지 않았다. (참 좋은 아이디어였다!)
자야 하는데 알베르게 안이 찜통이었다. 그동안 에어컨이 없는 알베르게도 많았지만 이롷게 더웠던 적은 없는데 오늘은 더워서 자꾸 깼다. 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답답해서 밖으로 나갔더니 나처럼 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나와 있었었는데 밖의 공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돌아와 누워 다시 잠들기를 기다리는데 깨어있으니 베드버그 물린 곳이 더 가려운 느낌이었다.
잠도 안 오고 천장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
재미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 들러야 할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 길을 계속 가는가.
티비도 유튜브도 보지도 않는데 나는 왜 지루하지 않은가.
매일 비슷한 음식만 먹으면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땡볕에 걷는데 나는 왜 행복한 걸까.
나는 이뇨처럼 이 여정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결국은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코로나 이후부터 나는 와인에 곁들인 배달음식과 넷플릭스를 보는 것으로 행복을 채우고 있었다.
퇴근하고 고생한 나에게 주는 작은 보상이라는 핑계로, 주말에는 심심함을 채워줄 명목으로, 그렇게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다.
이제 나를 행복을 다른 것에서 찾아야 한다.
D28: Saria ~ Gonzar, 30.3 km
D29: Gonzar ~Melide 31.8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