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지는 여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어제부터는 확실히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수학여행을 왔는지 학생들 단체도 보이고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어디서 갑자기 이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는지...
원래 같이 걷던 사람들도 어딘지 느슨해지면서도 조금 들뜬 느낌이다. 그동안은 조용하게 걸었었는데 마지막 구간은 확실히 시끌시끌했다.
산티아고 프랑스길을 걸으려면 한 달은 걸리기 때문에 3구간으로 나누어 오는 사람들도 있고 마지막 100km 구간만 걷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누가 말하길 마지막 100km만 걷는 사람은 순례길에서 가장 별로인 구간만 걷게 되는 거라고 했었는데 와보니 여러모로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제 다이엔이 몇 시에 출발할 거냐고 물어봐서 7시 즈음 출발할까 한다고 했고 나는 정확하게 7시에 출발했다. 어차피 다이엔과는 다른 숙소였지만 이제 정말 마지막인 만큼 추억을 더듬으며 혼자 걷고 싶었다. 그런데 다이엔이 왓츠앱으로 계속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디까지 갔냐, 자기는 어딘데 어떻다면서... 나는 사실 귀찮았다. 그렇지 않아도 좀 조용히 걷고 싶은데 그런 분위기도 아니고 계속 메시지가 오니 방해가 되었다. 급기야,
"내가 너 쫓아가려고 안 쉬고 계속 가다가 잠깐 밥 먹으러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계산하는데도 한참 걸린다. 너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나 좀 기다려주면 안 돼?"
사실 나는 혼자 가고 싶어서 더 빨리 걸은 것도 있다. 나는 거절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다이엔의 유쾌한 성격은 좋지만 같이 다니기엔 부담스러워서 적당히 돌려서 말했지만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고 다이엔에게도 확실하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미안, 나는 마지막 길은 혼자 조용히 가고 싶어. 그리고 도착해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이 있어."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고 나서야 다이엔은 알겠다고 했다.
사실 미안할 일은 아니었지만 가는 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와 거의 일정이 같았던 쌤이 며칠 동안 다이엔과 다니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는 길에 마침 쌤을 마주쳐서
"너 왜 이제 다이엔이랑 같이 안 다녀? 다이엔이 오늘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하더라? 근데 나는 혼자 걷고 싶어서 미안하다고 했어. 근데 사실 마음은 좀 불편해"
라고 했더니 쌤도 혼자 다니고 싶다고 대놓고 말했다고 했다. (역시 사람들이 느끼는 게 다 똑같군) 그래서 나도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에 혼자 오는 사람은 친구를 사귀러 온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오기 때문에 마음이 맞으면 일정구간 같이 다닐 수는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계속 다닌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나는 솔직히 하루도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역시 나는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혼자 사는 것이 더 맞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여기에 같이 와서 걸어서 완주를 하고 그래도 여전히 둘 다 마음이 변치 않다면 결혼해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그건 좋은 생각이었다.
드디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했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성당 앞 광장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광장에는 이미 많은 인파가 있었는데 가장 먼저 발견한 아는 얼굴은 이뇨였다. 이 순간엔 아는 얼굴과 눈을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그를 한다.
"오! 쑴이~~! (옷 냄새를 맡으며) 나 지금 땀범벅인데.. "
"뭐 어때, 나도 땀 엄청 흘렸어."
이뇨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뇨가 아니었다면 갑자기 비가 오는 날 나만 우산을 가지고 마중 나온 엄마가 없는 아이처럼 조금 서러웠을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이뇨 친구까지 셋이 앉아서 사진도 찍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기다렸다. 사실 특정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아는 얼굴이 오면 함께 축하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벅찬 여운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은 쉽게 광장을 떠나지 못한다.
이탈리아 3인방 아저씨들은 먼저 도착해서 미사를 보고 계신다고 했다. 길거리에 아는 얼굴들을 보며 축하하고 즐겼다. 한 번이라도 이야기해 본 사람이면 아는 척을 했고,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들과는 앉아서 같이 맥주를 마셨다. 완주 후 함께 마시는 맥주는 그 어느 때보다 시원했다.
저녁은 이탈리아 3인방 아저씨들과 데오, 크리스티앙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 먹었다.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는 각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며 '함께' 그리고 또 '따로'의 추억을 나눴다.
한참을 웃고 떠들고 나니 음식은 다 먹은 지 오래고 자리를 일어나야 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지만 누구도 쉽게 일어나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한 명이 말했다.
"오늘은 너무 행복한데, 내일이 되면 슬플 것 같아."
공감한다는 듯 우리는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거나 서운함이 깃든 미소를 보였다.
식당을 나와서 작별의 포옹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이 저녁 식사가 마지막이었다. 살면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 또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했든 얼마나 걸렸든 무슨 길로 왔든 결국 종착지는 여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몇 번째든, 어떤 이유로, 무슨 기대를 가지고 왔는지는 중요치 않다. 열심히 걸어서 여기 도착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걷는 과정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사실 종착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후반이 되어 갈수록 조금씩 지쳐가서인지 이제 목표를 달성했구나, 끝났구나,라는 생각에 일단 행복감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30일을 걸으면서 오가며 눈인사하던, 대화하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행복했다. ‘같이’ 걷던 사람들과 속도를 맞춰 이 기쁨을 함께 누리려고 내가 그동안 열심히 걸어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이제 걷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좋을까? 서운할까?
마치 내일도 길 어디선가 마주칠 것 같은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부터 벌써 허전함이 몰려왔다.
D31: O Rua ~ Santiago Compostela, 20.8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