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7-9
2014. 8. 7
선생님,
보내주신 쪽지 잘 받았습니다. 행간에서 돈과 권력이 인간 위에 있는 세상의 보통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 그리고 교육을 통해 변화를 원하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육과 인간의 삶에 대해 통찰하게 하는 대화 속에서 저는 조금씩 성장합니다. 지금 여름방학을 맞아 강의 여행 중이시겠군요. 저도 지금 길 위에 있습니다. 여행의 백미는 아무래도 그 어떤 동행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도록 홀로 떠나 낯선 세계에 온전히 자신을 던질 때 찾아오는 외로움과 돌발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나약하고 게으른 인간인 저는, 비로소 제 두 발로 설 각오를 다지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 친절, 미소에 담긴 관심이 ‘감사’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절절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의 목적은 목적지가 아닌 삶에 대한 태도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9년 8월 말, 저는 열아홉 시간에 가까운 비행 끝에 핀란드라는 나라에 처음으로 도착했고, 헬싱키-반따 공항에서 뚜르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어릴 적 즐겨 보았던 티비 프로그램에서 밥 아저씨의 붓이 몇 번 쓱 지나가고 나면 “참 쉽죠?”라는 멘트와 함께 뚝딱 만들어지곤 했던 서양 풍경화를 연상하게 하는 평탄한 대지와 숲, 드문드문 보이는 목조 가옥, 그리고 호수가 버스 차창 너머로 펼쳐졌지요. 그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이 붙들린 나머지, 장시간 버스와 비행기를 타고 또 갈아타느라 쌓였던 피로와 저의 초췌한 몰골도 잠시 잊고 눈도 잠깐 붙이지 않은 채로 창밖을 한참 쳐다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코펜하겐을 가기 위해 뚜르꾸에서 헬싱키 공항으로 가는 길. 5년 전 그때와 똑같은 풍경을 차창 너머로 보았습니다. 그때처럼 풍경이 저를 압도하지는 않지만, 그 대신에 조금 알게 된 대상에게서 느껴지는 사랑스러움이 있습니다. 핀란드의 호수 빛깔 눈동자를 지닌 이곳 사람들을 계속해서 알아가고 싶은 욕구가 제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후에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와서, 지도를 들고 낯선 거리를 더듬고 더듬어 숙소인 호스텔에 도착했어요. 도보 십 분이면 될 길을, 큰 짐을 끌고 지도를 계속 보면서 이십 분 넘게 걷다 보니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네요. 오늘 코펜하겐은 태양이 작렬하는 한여름 날씨입니다. 여섯 명이 남녀구분 없이 함께 쓰는 도미토리 방에 침대를 얻었습니다. 마침 방에서 쉬고 있었던 대만 남자와 덴마크 남자에게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갈까 제안했더니 흔쾌하게 그러자고 합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호스텔의 배낭여행 분위기에 저는 절로 신이 났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바텐더 과정을 배워보고 싶어서 고향에서 올라와 코펜하겐에 한 달간 머무르게 되었다는 이 덴마크 남자는 이제 열아홉 살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대학에 가지 않고, 앞으로 항해사가 되고 싶어서 해양 선원 학교에 들어왔다는 그는 오늘 배운 칵테일 레시피를 말로 열심히 설명하고, 대만 남자와 저는 귀로 충족되는 즐거움과 혀로 충족되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안타까워합니다. 학교생활이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시원하게 대답합니다. 굳이 행복하냐고까진 묻지 않았습니다. 큰 걱정거리가 없어 보이는 앳되고 구김 없는 얼굴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내일부터 아주 천천히 코펜하겐의 도서관, 책방, 디자인 가게, 미술관, 크리스티아니아, 자전거, 까페를 찾아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이 열아홉 살 청년을 키운 덴마크의 힘은 과연 무엇일지 조금이나마 감이 잡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 이만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2014. 8. 9
선생님,
오늘은 길거리에서 라스베리와 완두콩을 파는 한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마침 과일이 먹고 싶었던 참이라서 저는 가판대에 놓인 베리들을 살펴보다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지요. 제 예상대로 서머잡*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어요. 바로 근처에 코펜하겐 대학 캠퍼스가 있었기 때문에 대학생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더군요. 한낮의 따가운 햇살 때문인지 마침 손님도 뜸했던 참이었죠.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고양이 마냥 저는 그만 제 특기이자 취미를 발휘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가판대를 찾은 본연의 목적보다 대화에 정신이 더욱 팔려버렸고, 다행히도 그 아가씨는 낯선 여행자의 질문에 밝은 표정으로 답해주었지요.
그 덴마크 아가씨는 열아홉 살인데 앞으로 당분간 춤을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왜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창의적으로 살고 싶어서’라는 대답을 돌려주더군요.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또 다른 제도 교육에 뛰어 들어가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생활비도 벌면서 자기 앞가림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바로 앞에 코펜하겐 대학이 있는데도 풋콩과 베리를 파는 그 아가씨의 얼굴에는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불안도 비치지 않았어요. “일을 하다가 나중에 대학을 가고 싶으면 그때 가면 된다. 덴마크의 대학에는 학생들의 연령대가 참 다양하다.”라고 말하는 그 표정에서는 여유로움마저 느껴지더군요.
저는 한국에 있었을 때부터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행복도를 짐작해 보는 버릇이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라기보다는, 큰 걱정거리가 없어 보이는 평온한 얼굴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코펜하겐에서는 핀란드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교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어요. 국교가 루터교인 나라인데도 말이죠. 심지어 교회 건물이 레스토랑이나 펍으로 팔릴 만큼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이 줄고 있다고 하고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삶의 불안을 잠재우고 저렇게 무덤덤한 얼굴로 앉아 있는 걸까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고, 가치 있는 상품으로 팔리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해야 한다거나, 실직이나 질병과 같은 미래의 불확실성이 안겨다 주는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현재를 미래에 헌납하며 살아야 하는 냉혹한 신자유주의적 생활 방식에 덜 노출되어 있고, 익명의 사회구성원들끼리 느슨하게 연대하며 살아가는 복지국가의 시민들이라서 그런 걸까요. 어른들 중에서도 치열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 순박한 웃음과 순한 눈매를 가진 이들이 꽤 눈에 띄더군요.
북유럽의 복지국가제도 역시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엄연히 사회 불평등이 존재하고, 최근 세계 경제위기 이후 더욱 강력해진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영향으로 불평등의 조짐들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인류가 지금껏 창안한 여러 경제 체제 중에서 지속가능성이 있으면서도 다수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제도 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젊은 세대들의 얼굴에선 청춘의 에너지를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쓰고자 하는 그런 치열함은 부족해 보였어요. 진보적인 사회를 꿈꾸는 치열함은 어쩌면 한국의 젊은 층에서 더 자주 엿볼 수 있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리영희 선생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진보를 향한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은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보수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비록 서명 운동을 벌인다거나 시위에 참여하진 않을지 몰라도, 자신은 아직 그 문턱을 밟아보지 못한 대학교 근처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땡볕 아래에서 완두콩과 과일을 팔면서도 전혀 기죽은 기색이 없는 열아홉 살 또한 진보적인 청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많게는 임금의 절반에 육박하는 누진세, 시민 누구나 그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보편적 복지를 바탕으로 하는 덴마크의 복지 시스템, 그리고 한국에 비해 직종 간 임금 격차가 작아서 학력이 낮은 사람이 고학력 자본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문화야말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기 위해 눈치 따위 보지 않는 젊은이들을 키우는 텃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곳 북유럽에는 자본 권력이나 사회의 질서뿐만 아니라 가족을 포함한 타인에게 그다지 의존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집단주의가 강한 문화권에서 온 외국인들에게는 이런 북유럽의 독립적인 삶의 태도가 개인주의적이고 불친절하며 차가운 인상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가족이라는 최소 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주의나 끈끈한 가족애는 사회복지제도가 취약한 국가에서 흔히 발달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같은 유럽이라도 영국이나 동유럽, 그리고 남유럽 같이 북유럽에 비해 사회복지제도가 취약한 나라에서는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 관계를 중심으로 뭉치는 집단주의 문화가 발달해 있다고 해요. 물론 집단주의 문화가 가진 장점도 많지요. 하지만, 혈연이나 친분 관계로 맺어진 가족 혹은 소규모 공동체가 개인의 안위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개인은 당연히 그 집단의 의견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개인의 자유는 집단에 의존하는 만큼 감소한다고 생각해요.
한편,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인맥으로 맺어진 공동체가 담당하는 복지의 기능을 북유럽에서는 국가가 담당하면서, 시민들은 이에 대한 대가로 고세율의 세금을 내게 되고, 그 덕택에 가족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자유로워지게 되는 거죠. 이렇게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크게 없는 복지 사회에서는 가정 안에서도 밖에서도 자유, 신뢰와 평등을 기반으로 한 다소 느슨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서로 의지는 하겠지만 의존은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간격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구어 가려는 젊은이들의 독립심과 자율성이 꽃피게 되는 것 같아요.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핀란드 사람들과 대화하고, 또 이번 여행에서 덴마크 사회를 나름 매의 눈으로 관찰하면서 얻은 제 생각입니다.
오후에 만났던 그 아가씨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저녁에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가판대 앞을 지나갔어요. 저와 이야기를 나눴던 아가씨는 없었고, 대신 더 어려 보이는 아가씨가 가판대를 지키고 있더군요. 이제 열여섯 살이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한다고 하길래 이렇게 길거리에서 과일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약간 짓궂게 물어보았죠.
글쎄요 (웃음). 설사 싫어하신다고 해도 어쩔 수 없죠. 저는 이미 제 삶을 제가 관리하기로 마음먹었고, 제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부터 저와 부모님의 관계는 친구 사이로 정해진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도 제 결정에 대해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하시지 않고요. 제가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은 주실 수 있겠지만 딱 그 정도예요.
이 덴마크 청소년의 한 마디에서 저는 북유럽의 개인주의가 무엇인지를 좀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열여섯의 저를 회상해 보았어요. 누구나 그랬듯이 황금 같은 제 열여섯 살의 대부분을 정규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에 바쳐야 했죠. ‘그때 내게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어느 누구라도 말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한편 이렇게 제 힘으로 북유럽까지 와서 공부도 하고 다른 사회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게 큰 복이라고 느꼈어요. 하루 종일 걸었더니 발목이 시큰거리네요. 사흘째가 되니 도미토리 방에 배인 땀 냄새와 밤에 코 고는 소리도 배낭여행의 추억인 듯 정겹습니다. 저도 이만 자러 갑니다.
코펜하겐에서,
J 드림
* 노동자들이 긴 휴가를 떠난 여름철에 주로 청년, 청소년들이 빈자리를 메꾸어 일을 하게 되는 계절 아르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