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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헬싱키 공항의 어느 카페에 앉아 있었다.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를 놓쳐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인천에서 탑승한 헬싱키행 비행기는 연착되었고, 환승을 해야 했던 나는 제시간에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저 비행기를 놓칠 거라는 사실 만이라도 미리 알려주었더라면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입국심사대를 향해 요란스레 뛰지도 않았을 것이며, 나를 노려보며 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헬싱키 입국 심사요원의 질문에도 좀 더 소상하게 대답을 했을 것이며, 보안검색대 앞에서 몇 겹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승객들 사이에서 초조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다가 왼쪽 머리에 손을 갖다 대었더니 여전히 욱신거렸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 길을 걷다가 어느 식당에서 내건 광고 구조물이 바람에 넘어지면서 머리를 맞았다. 아침에 부랴부랴 엑스레이 사진 몇 장을 찍고 허겁지겁 공항으로 출발했다.
통유리창으로 활주로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다 말고 갑자기, 며칠 전 집에서 보았던 초파리 한 마리가 생각났다. 유유히 내 눈앞을 휙 하고 스쳐 지나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어느 여름날 아침에 일어나 보았던 진귀한 풍경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거실 바닥에 흰 먼지 같은 것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창문이 열려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전날 자기 전까지만 해도 깨끗했던 바닥인데 뭔가 이상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간밤에 알에서 깨어난 초파리 유충 수십 마리가 단체로 꼬물거리며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벌레야."
세렝게티 초원에서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을 쫓아다니며 다큐를 만든 어느 피디가 한 말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집에서는 초파리 한 마리의 동태를 예의주시했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숙소에 있을지도 모를 빈대를 염려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많은 곤충을 벌레라고 부르며 경멸하거나 해충이라 부르며 경계한다. 인간이 벌레를 보면 가까이 다가가 탐색하면서 위험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보다, 일단 위험한 것으로 재빠르게 간주하고 대처하는 것이 살아남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이러한 혐오의 감정은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벌레를 좋아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덤덤해지려고 해 봐도 잘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 벌레 생각과 갑작스러운 사고라니. 기이한 상황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한편 이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정에 제법 잘 어울리는 출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
카프카 박물관으로 향했다. 20세기가 낳은 3대 소설가 중 한 명.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카프카에스크(Kafkaesque·카프카스러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독보적인 그의 작품세계. 프란츠 카프카를 수식하는 모든 말보다 내게 더 크게 와닿았던 것은 그가 일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 이 시대 수많은 직장인 작가들의 대선배라는 점이었다. 카프카는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 보험 담당관으로 일하면서 퇴근 후에는 밤늦게까지 글을 썼다. 그에게 있어 해방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는 문학이었고, 직장에서 하는 일은 밥벌이로 규정하긴 했지만 그가 일하는 내내 조용한 퇴사자로 살았던 건 아니다. 당시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었던 프라하에서 공장을 돌리는 인간 부품으로 일하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여건을 매일 접하며 안전모를 발명하기도 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일과 그 일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카프카는 공무원과 작가라는 이중생활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 힘겨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투잡(?)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된 것이 그가 이른 나이에 목숨을 잃게 된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물 먹은 스펀지같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퇴근해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돌본 다음 늦은 밤 컴퓨터 앞에 앉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글쓰기는 시간과 육체를 갈아 넣으면서 한 줄 한 줄 우직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노동집약형 작업이라는 것을. 운동을 하거나 몸을 돌볼 시간을 아껴가며 모니터를 한참 쳐다보고 있노라면 글이란 무릇 작가의 건강과 수명을 갉아먹으며 자라나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든다. 카프카의 경우처럼 말이다. 폐결핵이 악화되자 ‘내가 죽거든 원고를 모두 불태워버리라’는 사실상의 유언을 친구에게 남기고 마지막 요양원으로 떠났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며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일했던 노동자재해보험공사는 8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면 퇴근할 수 있는 신의 직장이었던 것이다. 충격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한 묘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3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카프카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내 안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나오자마자 피곤이 밀려왔다.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피로를 덜어내려는 심산으로 생강차를 시키고는 테라스에 앉아 카프카 소설집을 펼쳐 들었다. 이윽고 점원이 생강차와 함께 꿀을 가져다주었다. 차에 꿀을 넣은 다음 남은 꿀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책을 읽고 있는데 어느새 내 주위로 벌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그 벌들은 비닐 덮개로 막혀 있는 꿀통 안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했다.
‘이 꿀은 누구의 것인가?’
순간, 전지적 곤충 시점이 내게로 밀려왔다. 언젠가 여행 중에 연락이 닿아 만난 K와의 점심 식사에 나타났던 벌들도 떠올랐다. 상에 오른 많은 음식 재료는 그들이 분주하게 꽃가루를 옮겨준 덕분에 생산된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벌의 출현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손을 가볍게 휘저어 딴에는 품위 있게 그들을 내쫓으려 했다. 나는 벌이 애써 일한 노동의 결과물을 착취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을 식탁에서 추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식탁 건너편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K가 내게 넌지시 물었다.
“우리는 왜 벌을 쫓아내려고 할까?”
그가 툭 던진 그 질문이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2편으로 이어짐)
* 최정균. 2024. 유전자 지배 사회. 동아시아. 57-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