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2

by starr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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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행색을 하고 오랜만에 찾은 핀란드에서 나는 정주민의 상징인 핀란드 은행 로고가 찍힌 직불카드를 사용했다. 은행 계좌도 끊지 않았고, 뚜르꾸 시에서 보내주는 문화뉴스레터도 여전히 받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핀란드와의 끈을 유지하려는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친구들이 보기엔 내가 마치 끈이 풀려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 풍선처럼 가벼워 보였을 것이다. “너는 더 이상 여기에 살지 않잖아.”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러시아와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는 핀란드에서도 불안감이 고조되기 시작했을 때 내 친구들은 집 근처에 있는 벙커의 위치를 확인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뿐인가. 비행기를 타기 전에 뉴스를 읽으며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람들을 걱정했던 나는 헬싱키로 향하는 비행기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영토를 피해 우회하고 있는 그 순간 기내식과 음료로 뭘 먹을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두고 온 일들과 암 치료를 위한 진료 예약날짜를 떠올렸다.


우리의 삶은 무거워졌다 가벼워지기를 예기치 않은 주기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우연이 중첩된 주사위 놀이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여행과 일상과의 관계도 이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은유로 표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반복되는 의무와 상처로 가득한 일상의 무게가 최대한 제거된 채 편집된 환상과 낭만화된 고생담이 적당히 버무려진 기억이 아닐까 한다, 일상을 살아내는 힘은 관계와 의무라는 중력장을 이탈하여 우주비행사처럼 낯선 세계를 유영하듯 돌아다니는 여행에 대한 동경이고, 여행을 살아내는 힘은 긴 이동 끝에 짝 달라붙은 머리로 빨랫감이 가득 담긴 짐가방을 끌고 도착한 집과 익숙한 관계가 안겨주는 묵직한 안정감일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쿤데라는 테레자를 관계의 묵직함을 지향하는 인물로, 사비나는 자유분방한 가벼움을 추구하는 인물로 묘사한다. 그리고 프라하의 봄 이후 체코인들이 처해 있었던 시대상황 속에서 점점 더 낮은 곳으로 또는 점점 더 먼 곳으로 이동하는 테레자와 사비나, 그리고 토마시, 프란츠 네 사람을 통해 가벼움과 무거움이 공존하는 삶을 그려낸다.


그녀의 가슴이 회한으로 묵직해졌다. 그(토마시)가 취리히를 떠나 프라하로 돌아온 것은 그녀 때문이었다. 그가 프라하를 떠난 것도 그녀 때문이다. […] 이제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부당했는지 깨달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토마시를 많이 사랑했다면 그와 함께 외국에 남아야 했다! 거기에서라면 토마시는 행복했을 테고 새로운 인생이 열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를 떠났고 그곳을 떠났던 것이다! […] 사실 그녀는 그가 귀국해서 자기에게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요정이 농부를 소용돌이 속에 끌어들여 빠뜨려 죽이듯 그녀는 그를 불러들여 더욱 낮은 곳으로 끌고 갔다. […]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를 따라오라고 불렀고 결국 그를 이곳(시골)까지 불러들인 셈이다. […] 춤을 추면서 그녀는 토마시에게 말했다. “토마시,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원인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 것이 바로 나야.”


아! 사비나는 이 드라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감옥, 박해, 금서, 점령, 장갑차 같은 단어는 그녀에게는 모든 낭만적 향기가 빠져 버린 추한 단어들이다. […]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 지금까지는 배반의 순간들이 그녀를 들뜨게 했고, 그녀 앞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그 끝에는 여전히 또 다른 배반의 모험이 펼쳐지는 즐거움을 그녀의 가슴에 가득 채워 주곤 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더 이상 부모도 남편도 사랑도 조국도 없을 때 배반할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을까? […]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제네바를 떠나온 이래 그녀는 이 목표에 부쩍 가까워졌다. […] 그렇다, 이제 너무 늦었고, 사비나는 자신이 파리에 머무르지 않고 더 먼 곳, 더 멀리 떠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그렇게 테레자로 살며 비눗방울보다 더 가볍고 투명한 사비나를 열망하고, 사비나로 살며 테레자의 삶을 지탱하는 관계의 묵직함을 그리워한다. 언젠가 파리에서 연금법 개악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울긋불긋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진을 찍어온 적이 있다. 그 사진들은 잠시나마 빠리지앵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인증샷의 배경으로 사명을 다하면 충분한 것이었다. 여행객은 그 어떤 시위의 구호나 이념에도 매이지 않아 가볍고 투명하다. 오늘 밤 열 시 기차는 그곳에서 나를 싣고 떠날 것이기 때문에. 한편, 거품으로 변한 인어공주처럼 가벼운 몸이 되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씩 낯선 곳을 여행하다가도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폰을 켜고 그동안 밀린 한국 뉴스를 따라잡으며 안타까워하거나 분개한다면 그건 아마도 토마시가 어느 날 갑자기 송진으로 방수된 광주리에 담겨 그의 삶으로 두둥실 떠내려온 테레자를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읊조리며 그녀의 손을, 묵직한 인연을 놓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는 […] 결국은 테레자가 떠난 지 닷새 후 원장에게 당장 돌아가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 원장은 정말 화를 냈다. 토마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Es muss sein. Es muss sein.”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해요.) […]
이 단어의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게 하기 위해 베토벤은 마지막 악장 첫 부분에 이렇게 써넣었다. “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 신중하게 내린 결정.
베토벤에 대한 암시를 통해 토마시는 벌써 테레자 곁에 가 있었다. […] 원장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베토벤의 멜로디를 흉내 내며 부드럽게 말했다.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토마시는 다시 한번 말했다. “네, 그래야만 합니다! Ja, es muss sein!”**


그 어느 곳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Es muss sein!”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유동하는 세상이다. 난민, 정주민, 이주민, 여행자. 이 정체성들 중에 무엇을 지니고 살아갈지는 모르겠다. 요동치는 세계와 내 삶을 둘러싼 여건 속에서 여러 정체성을 함께 지니며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토마시가 진중하게 껴안았던 테레자와의 인연마저도 여섯 번의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였듯이, 우리 삶의 굵직굵직한 장면들도 주사위나 윷놀이에서 같은 숫자가 반복해서 나오는 것과 같은 우연의 중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인생이 끊임없이 진보해야 한다는 생각,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무거운 생각을 가만히 내려놓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차이를 발견하는 감수성을 가지고 살아가보자고 생각해 본다. 그 작은 차이를 발견하기 위해 글을 쓴다. 어떤 정체성으로 살든, 나를 둘러싼 세상의 질서에 짓눌려 무겁게 살지만은 않기를. 최대한 자유롭게 살면서도 이 지구에서 나와 관계 맺은 존재들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책임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시지프스의 형벌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만 같은 일상의 무거움과 단 한 번의 리허설도 허용되지 않는 우리 삶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사이에서.



* 밀란 쿤데라. 200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룡 옮김. 민음사. 173, 201-205, 500-505쪽.

** 같은 책. 57-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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