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1

by starr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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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탄 비행기의 목적지는 핀란드였다. 이 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으로 인해 비행기는 대권항로를 포기하고 에둘러 가느라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공중에 뿌린 끝에 이른 새벽 헬싱키 공항에 나를 떨구어놓았다. 뚜르꾸에 도착하니 아침 10시. 체크인을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뺨을 때리듯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캐리어를 질질 끌고 호텔로 향했다. 생쥐 꼴로 호텔 로비에 앉아 접속한 페이스북으로 쪽지가 날아왔다. M. 2017년 난민신청자들이 머물던 임시숙소에서 만났던 친구였다. 그때 나는 시리아와 이라크를 떠나와 핀란드 당국으로부터 난민자격을 인정받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자원봉사자였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저녁 시간을 그들과 같이 보냈다. 그들은 고향집의 화덕 대신 전기 오븐이 갖추어져 있는 임시숙소의 부엌에서 마르꾸끄(Markook)라는 주식용 빵을 솜씨 좋게 구워냈다. 난민 신청 결과가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에서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그림을 그리고 수공예품을 만들었다. 건반 몇 개가 음정을 이탈하긴 했지만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어서 그들이 신청하는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싶었지만 나는 아랍어를 하지 못했고 그들은 영어를 하지 못해 원활한 소통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들은 고향에서 즐겨 보던 드라마의 나라에서 온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망명자들이 시리아나 이라크를 떠나 유럽에 도달하는 과정이 워낙 험난하다 보니 대부분이 이삼십 대 남자들이었다. 11월의 핀란드, 가뜩이나 짧아진 해도 모자라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의 초입에서 그들은 매일 축구를 했다. 그들의 표정은 바람 빠진 축구공만큼이나 쓸쓸하고 불안해 보였다.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다. 언제 난민 신청 결과를 알려줄지, 신청을 거절할지도 모르는 일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이 년째 이민국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던 M의 눈빛은 우중충한 늦가을 날씨에도 촛불을 켠 듯 강렬했다. 그 눈빛에는 불확실성의 시간을 살아내는 자가 느꼈을 불안과 삶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의식주를 돌보는 것 이외에는 당장 일다운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불만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M에게 시리아를 떠나 핀란드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고향에서 본인의 안전이 위협받는 나날이 계속되자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터키까지 육로로 이동한 다음, 에게 해를 건너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노숙과 텐트 생활을 반복하며 한 달 여 만에 핀란드에 다다랐다고 했다. 얇은 티셔츠에 잠바 하나 걸치고 스웨덴과 핀란드의 국경에 도착한 그는 그해 시월 말을 ‘Goddamn cold(빌어먹을 추위)’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터키 이즈미르에서 다 쓰러져가는 나무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그리스의 어느 섬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었다고. 작은 나무배 하나에 오십여 명이 통나무처럼 차곡차곡 올라탄 다음 혹시 배가 균형을 잃고 뒤집어질까 봐 몇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바다를 건넜다고 했다. 문득 십여 년 전 내 여정이 떠올랐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M의 나이였을 때 아테네에서 여객선을 타고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크레타, 미코노스 섬을 거쳐 터키 이즈미르로 이동하는 배낭여행을 한 바 있었다. 그런데 그는 반대 방향으로 목숨을 건 여행을 한 것이었다. 한국인들에게는 한 이온음료 광고에서 산토리니의 하얀 벽돌집과 푸른 지붕 너머로 햇살을 받으며 넘실거리던 투명한 코발트블루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에게해가 M과 그 나무배에 함께 올라탔던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심연의 바다였을 것이다. 바다를 건너던 그 몇 시간이 그들에게 얼마나 공포스럽게 느껴졌을지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의 탈출 여정을 들은 이후로 나는 M이 가족과 친구, 고향을 떠나 망명자가 되어 여행길에 오르는 모습을 계속해서 상상해보곤 했다. 망명자가 되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십 세기를 관통했던 생애 속에 전쟁 난민과 추방된 이방인이라는 궤적을 지녔던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존재하지만 소속되지는 않은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집과 터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정주민도 아니고, 집을 짊어지고 이동하는 유목민도 아니다. 여권을 들고 자신의 국적을 확인받으며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자는 더더욱 아니다. 21세기가 바이러스나 유튜브 영상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국경의 개념이 무색한 시대라고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 최고의 발명품인 상상의 공동체, 즉 국민국가의 위력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에서 망명자들은 상상 밖의 존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바우만은 망명자들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난민들(정확히 말해 망명자들)에게는 국적이 없다. […] 국적을 잃은 그들의 상태는 국적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던 국가의 권위가 전혀 존재하지 않거나 단지 유령처럼 존재하게 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선다. […] 그들은 법의 혜택을 박탈당하고 버림받은 새로운 유형의 추방자이고, 지구화(세계화)가 낳은 산물이며 […] 그들은 표류가 일시적일지, 영원할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비록 그들이 어떤 곳에 잠시 머문다 해도 그들은 결코 끝나지 않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아무리 그들에게 호의를 베푼다 한들, 그들은 한 달 뒤 취업 면접을 계획하거나 임시숙소를 떠나 이웃 나라로 여름휴가를 다녀오기 위해 숙소와 교통편을 예약할 수 없다. 그저 오늘 먹을 빵을 굽고 함께 망명을 온 동료들과 축구공을 차며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물일곱 살의 그에게 난민이 되겠다는 결심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가족, 집, 직업, 익숙한 마을과 도시 …. 가지고 있었던 모든 사회 경제적 기반과 사람들을 일순간 내려놓고 인생의 불확실성을 온몸으로 껴안는다는 의미이지 않았을까. 알레포의 약국에서 약사보조원으로 일해 온 그가 시리아를 떠나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공부를 계속해서 약사가 되고 시내에서 본인의 약국을 운영할 수도 있었을 터였다. 아버지의 부음을 핀란드에서 스마트폰으로 접하고 그저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는 것으로 부친의 영면을 빌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었다. 고향과 국적이 있는 나라를 떠나온 대가는 혹독했다. 그는 핀란드에 도착해서 사 년을 기다린 끝에야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거주허가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 후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간호 계열을 택해 졸업을 몇 달 앞두었을 때 그는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시리아에서 취득한 졸업장은 핀란드에서 인정되지 않았고 낯선 땅에서 자신의 힘으로 생활을 영위할 기반을 마련하는 그 첫걸음을 떼는데 팔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거 내 최종 목표 아니야! 나중에 약사 될 거야.”


그는 나를 또렷이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간호조무사. 간병이 필요한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비숙련노동 직종으로 취급받으면서 노동 강도에 비해 급여가 낮아 핀란드 사람들이 취업을 꺼리는 분야였다. 당국이 M의 취업 상담 과정에서 이 진로를 권한 것이다. 난민으로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내내 그림자 노동을 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이등시민의 계층 상승에 대한 꿈이 담긴 그 한 마디에 마음이 아렸다.


그렇지만 팔 년 전 망명자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벼운 신분으로 춥고 어둡고 낯선 땅에 도착했던 M은 정주민이 되어 있었다. M이 자랑스레 꺼내보였던 그의 거주허가증은 A타입이었다. A타입 거주증을 가진 사람은 영주권자만큼 권한이 크진 않지만 거주하는 도시의 의회의원선거에서 투표도 할 수 있다. M과 나는 카페에서 서로 커피 값을 내겠다며 핀란드 현지인들은 좀처럼 하지 않는 별스런 실랑이를 계산대 앞에서 민망하게 벌였고 결국 나는 M이 자신의 은행계좌와 연동된 카드로 결제하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M의 거주증과 은행계좌는 그가 핀란드 사회의 정식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는데 깐깐한 선생 한 명이 학점을 쉽사리 주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그의 삶은 망명자 임시숙소에서 지내던 시절보다 안정되고 묵직해 보였다.


2

M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는 길, ‘토마시’를 떠올렸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거스르듯 모든 묵직한 관계와 이데올로기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외과의사 토마시가 등장한다. 의사로서 장래가 촉망되었던 토마시의 인생은 우연히 체코 공산당의 비위를 거스르는 글을 신문에 투고한 다음부터 수직 하강한다. 애인들과 잠자리는 같이 해도 같이 잠이 들지는 않을 만큼 관계의 가벼움을 추구했던 토마시는 자신이 쓴 글이 문제가 되자 외과의로서의 임무와 소명이라는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프라하 시내의 유리창을 닦는 노동을 하며 가벼워진다. 한편, 그는 유일하게 같이 잠드는 사람인 테레자의 행복, 고통과 같은 감정을 함께 느끼며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프라하를 떠나 시골의 트럭운전사가 되어 그녀를 향한 사랑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역설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핀란드에서 박사과정을 마쳐갈 즈음, 졸업 이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 년짜리 연구원 계약이나 강사 자리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펀딩 신청서와 연구 계획서를 내야 하는 불확실성만이 확실한 미래 앞에서 고민하는 친구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토마시처럼 가벼워지는 건 어떨까. 핀란드에서 박사학위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해보면 어떨까. 낮에는 청소로 돈을 벌고 저녁에는 글을 쓰면 자유롭지 않을까.’


한국에 돌아온 후로도 한동안 여전히 이주와 정주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며 이곳과 저곳의 삶을 견주어보았지만 M보다는 가진 것이 많아서일까, 내가 가진 조그만 사회적 지위가 만들어낸 중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핀란드에서 청소노동자가 되어 생계를 돌보고 밤에는 글을 쓰는 삶을 택할 만큼 자유분방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외국유학까지 가서 받아온 박사학위로 한국에서 교수가 되거나 연구원이 될 만큼 목표 지향적으로 살지도 못했다. 그래서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쓰고 싶은 글을 썼다. 그러면서 한국의 다른 도시에서 혹은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어쩌면 어느 곳에도 완전히 뿌리내리지 않고 거주지를 옮길 마음의 준비를 했던 내가 M보다 더 부유하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바우만이 명명한 액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난민일지 모른다. 몇 안되는 좋은 직장과 성공적인 삶을 좇아 일인용 서핑 보드에 올라탄 채 거대한 삶의 유동성과 노동 유연성이라는 파도에 몸을 던지는 우리 모두는 지구상의 어느 곳도 고향이라고 부르지 않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떠나야만 하는 잠재적 난민이 아닌가. 물론 유학생 혹은 구직자, 이민자라는 이름으로 나라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혹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 다니며 그려질 우리 대다수의 삶의 궤적은 M이 겪었던 고난의 여정에 비한다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역시 유동하는 세계의 유랑자라는 점에서는 같다. 바우만은 이렇게 덧붙인다. ‘오늘날 개인은 선택하는 자유인이 되어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모든 선택에 포함되어 있는 위험부담들은 개인의 이해력과 행위 능력을 넘어서는 힘들로 인한 것이지만,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개인의 몫이자 의무이다.’라고.**** ‘선택하는 자유인’의 여정은 망명자의 피난이나 탈출과는 달리 자발적인 것일까, 아니면? 그 자유인에게서 악마의 저주를 받아 거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위에서 끝없는 항해를 해야 하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거기에다 기후위기로 촉발된 분쟁은 국가 간 전쟁과 내전을 더욱 빈번하게 만들고 재난을 피해 이동하는 망명자들을 더욱 빠른 속도로 양산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주민과 망명자의 경계 또한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2편으로 이어짐)



* 지그문트 바우만. 2010. 모두스 비벤디.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 한상석 옮김. 후마니타스. 77-78쪽 참고.

** 같은 책. 65-66쪽.

*** 밀란 쿤데라. 200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룡 옮김. 민음사.

**** 지그문트 바우만. 2010. 모두스 비벤디.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 한상석 옮김. 후마니타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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