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년 전부터 왓츠인마이백(what’s in my bag?)이 유행이다.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보면 십 대와 직장인부터 연예인까지 가방 속 소지품들을 꺼내 보이며 소개하는 영상이 넘쳐난다. 가방 속에서 등장하는 뜻밖의 물건은 주인의 생활 습관이나 취향 또는 성격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여행자들에게도 필수품은 아니지만 가방에 넣게 되는 자신만의 물건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매콤한 맛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는 혀를 달랠 컵라면이나 고추장 튜브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낯선 숙소에서도 깊은 수면으로 인도해 줄 애착베개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피아노 악보가 그렇다. 그동안 함께 한 세월을 증명하듯 구겨진 흔적과 연필로 그은 선으로 가득한 누런 빛깔의 종이 악보를 배낭에 넣고 나면 비로소 행장이 모두 갖추어진다.
2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의 일이다. 리옹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늦게 도착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역사 로비 어딘가에 있을 피아노를 찾아 나섰다. 파리에는 기차역마다 누구나 연주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공용 피아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프랑스의 철도 회사인 SNCF의 홈페이지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기차를 놓쳤다면 피아노를 치세요.’ 동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위스에서 단 일분의 연착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그들의 자부심인 초정밀 시계를 기차역 곳곳에 걸어놓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발상으로 보였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기차가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이 날 내가 탄 열차도 한 시간 정도 늦게 리옹역에 도착했다). 앞선 열차가 연착되어 후속 열차를 놓친 사람한테 속 편하게 피아노를 치라고 말하는 건 프랑스인의 낭만인지, 근대 산업혁명의 심장과도 같은 기차가 의미하는 세분화된 시간 관리라는 사명을 내팽겨 치는 것인지 심히 헷갈렸다. 하지만 막상 내가 시간을 때워야 하는 상황을 맞고 보니 빨간 초침이 무섭도록 정확하게 움직이는 대형 시계를 걸어놓은 기차역보다 야마하 피아노를 대령해 놓은 기차역의 정신세계가 더 마음에 들뿐만 아니라 실용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저 멀리 검은색 업라이트 피아노가 보였다. ‘À vous de jouer(당신 차례입니다).’ 피아노 앞에서 망설일 여행자를 위한 호객용(?) 문구까지 붙어 있었다. 피아노를 배치해 놓은 장소가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바닥에는 그리스 원형극장의 축소판 같이 생긴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그 원을 벤치들이 오밀조밀 에워싸고 있었다. 물론 벤치엔 여행객들이 앉아 있었다. 다행히 다들 스마트폰을 보느라 아무도 내 연주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광주의 종합버스터미널에도 사람들을 기다리는 피아노가 있었다. 그곳의 피아노는 파리 리옹역의 피아노와는 달리 버스를 타러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이 고개를 잠시 돌려 “저기 피아노가 있네.” 하며 무심히 스쳐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원래는 윤기가 흐르는 검정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을 피아노는 세월의 흔적을 감추려는 듯 총천연색의 그림으로 튜닝이 되어 있었다. ‘달려라 피아노, Play me.’라는 문구도 함께 적혀 있었다. 이 한마디에 사람들이 얼마나 심하게 달렸는지 피아노 건반 중에 두세 개는 아예 소리조차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직선의 시간을 바삐 오가던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건반을 만지는 동안 잠시 원형의 시간 속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 나처럼 버스를 놓쳐버린 사람들이 삶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그것이 삶의 매력이라는 깨달음을 안고 한 도시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탈것을 놓치는 경험이 하나둘 쌓여갈수록 피아노는 터미널이나 기차역에 없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3
일곱 살 무렵,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부모님은 국산 중고 피아노를 새 피아노인 것처럼 말씀하시며 집에 들여놓으셨다. 어른들의 거짓말을 간파할 만큼의 세상 물정을 아직 알지 못했던 나였지만 새(?) 피아노의 타건감은 이상하리만치 무겁고 둔탁해서 어린 나에게 온갖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물 먹은 이불을 발로 꾹꾹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피아노를 칠 때마다 고통이 밀려왔지만 우리 집에서 내 고충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부터 가벼운 타건감에 수정의 단면을 소리로 옮긴 듯이 깨끗한 고음, 그리고 온몸으로 진동이 느껴지는 풍성한 저음을 내는 피아노를 늘 갈망해 왔다. 어른이 되어 전셋집을 마련한 나는 피아노를 놓을 공간부터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중고이긴 하지만 내 형편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브랜드의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를 구입했다. 일본 H시에서 태어난 2005년생 피아노.
4
생애 첫 피아노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가 없어지지 않고 몸 어딘가에 깊숙하게 저장되어 있는 탓인지 내 손으로 피아노를 들인 이후로도 나는 소리와 타건감에 대한 갈망을 충족하기 위한 여정에 나서곤 했다.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유럽에서 명품 옷이나 가방을 파는 가게들을 방문하는 동안, 나는 피아노 매장을 순례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S였다. 피아니스트들이 함께 무대에 오를 피아노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S의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를 언젠가 내 손으로 연주해 보고 싶었다. 매장 안에는 길이가 2미터를 훨씬 넘는 그랜드 피아노들이 뚜껑을 들어 올린 채 기품 있는 자세로 꼿꼿이 서 있었다. 판매 담당 매니저는 구글 지도가 켜진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들고 등산 배낭에 청바지 차림으로 들어선 내가 마치 피아노를 구입하러 온 파리지앵이라도 되는 양 피아노의 규격과 생산연도, 생산지 등을 요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매니저의 환대에 명품매장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 따위 잊어버린 나는 이날의 용건을 자신 있게 들이밀었다.
“피아노를 쳐볼 수 있나요? 연주자들을 위한 연습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조성진 씨도 왔다가지 않았나요?”
“지하로 내려가면 그랜드 피아노가 놓인 연습실이 있어요. 안내해 드리죠.”
그는 마음껏 즐기라는 말과 함께 문을 닫아주며 연습실을 나갔다.
여든여덟 개의 건반을 천천히 훑었다. 음 하나하나가 매혹적이었지만 S의 강점인 고음부는 특별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갈 때마다 가재를 잡던 차갑고 맑은 개울물이 떠올랐다. 건반 밑에 돌덩이를 달아놓았나 싶을 정도로 무겁고 둔탁한 소리로 고통받았던 기억을 저만치 밀어내고 있었다. 매장을 떠나기 전 매니저는 명함을 내밀었다. 살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 속내가 어떠하든 나를 뜨내기가 아닌 고객으로 진지하게 응대해 준 매니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가격표를 슬쩍 보며 이렇게 말했다.
“집 대신에 까짓 거 이거 한 대 사면 되겠네요.”
S가 만들어 내는 소리에 매혹된 나는 비엔나에서 또 다른 피아노 매장을 찾았다. 빈의 낮 최고 기온이 34도를 넘나들던 여름날, 문이 반쯤 열려있는 가게 안으로 살며시 들어가니 한 남자가 건반을 연신 두드려가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늘 여기서 연주회가 있나 봐?”
“아니. 오늘 아침에 출근해 보니 피아노 소리가 어제랑 다르게 들리길래 손보는 거야.”
이상 기후로 더욱 덥고 습해진 날씨 속에서 달라진 음을 예리하게 알아채는 귀를 가진 그의 직업은 톤 마이스터, 그러니까 조율사였다.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관광객조차 한산해진 팔월의 한낮, 이상적인 음을 향해 한 시간이 넘도록 튜닝 레버로 현을 미세하게 조였다 풀었다, 건반 두드리기를 반복하고 있는 그는 자동차 정비공 같기도 하다가 의사 같기도 하더니 차라리 수도승 같기도 했다. 매장 한 편에는 피아노 액션 모형이 놓여 있었다. 내가 보기엔 아주 정교하고 복잡한 나무 장난감 같았다. 조율사 발터는 건반을 눌러가며 액션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베토벤은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 같은 소리라던가 당시 피아노로는 만들 수 없는 소리를 연주하고 싶어 했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대신 손끝을 타고 몸으로 전해지는 현의 진동을 느끼고 싶어 했어. 그래서 지금 네가 보는 모양의 액션이 나오게 된 거야.”
액션을 본 후 그동안 피아노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피아노가 소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자각에 이르렀다. 대만의 작가 궈창성은 소설 『피아노 조율사』에서 조율사의 심정을 이렇게 대변한다.
음악가가 추구하는 완벽함은 너무도 추상적이고 독단적인데 정작 실현되는 곳은 순수한 물리적 기계 장치 위라고, 그 사실을 음악가는 늘 간과한다고 내가 말했다.**
나 또한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가재를 잡고 놀던 청량한 개울물 같은 소리, 밝으면서도 어딘가 한 줄기 애잔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소리를 꿈꾸기만 했지 정작 그 소리가 실현되는 곳은 연주자의 운동에너지와 나무, 양모, 가죽, 구리, 철이 한데 어우러지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걸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막 견습을 시작한 도제공처럼 발터의 동작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지켜보고 있으니 그가 피아노 내부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여든여덟 개 건반을 얹어 놓은 키보드 너머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건반 뒤에는 양털을 압축해서 만든 해머들이 언제든 현을 타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빈틈없는 자세로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이백 개가 넘는 현이 튜닝핀에 감긴 채 장력을 소리 없이 견디고 있었다. 발터는 음정의 주파수를 알려주는 튜닝기 대신 귀로 들어가며 조율을 하고 있었다. 그게 화음을 만드는 데 더 좋다고 했다. 아마도 튜닝기의 주파수가 가리키는 평균율의 음정에 얽매이기보다 화음을 눌렀을 때 생기는 음파의 변화를 귀로 들으면서 가장 이상적인 배합을 만드는 것이 더 좋다는 뜻 같았다. 피아노는 한 음 한 음이 오롯이 홀로 아름답게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음들이 서로 어울렸을 때 어떤 소리를 만들어내는가가 더 중요한 악기이니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에는 완벽한 음을 가진 피아노가 없다. 연주자는 조율사가 조정한 건반을 연주할 수 있을 뿐이다.***
궈창성의 소설 속 화자인 조율사도 저 어딘가에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순수한 음정이나 완벽한 음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조율사의 귀에 가장 이상적인 배합으로 들리는 음률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지금까지 내가 들어왔고 연주해 온 모든 피아노 소리는 완벽하지 않은 음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서글퍼지지만, 지구상에는 사람만큼이나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피아노가 존재한다고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진다. 지휘자 구자범의 말처럼 피아노는 순수하지 않은 평균율의 결집체, 그러니까 완벽함을 버린 덕분에 조옮김이라는 더 큰 자유를 이룩해 낸 악기 아니던가.****
비엔나에 머문 닷새 중 사흘 동안 가게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몇 곡을 연주하고 휴대폰으로 녹음했다. 발터는 부러진 피아노 해머로 만든 열쇠고리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비엔나를 떠나며 나무 악기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과 예술의 정점에 피아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율사는 서로 다른 음의 주파수가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지점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여름 발터가 준 해머 열쇠고리를 볼 때마다 그가 피아노를 조율하던 모습이 떠오를 때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파동에도 주파수가 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피아노의 음들처럼 서로가 내는 음정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음정을 결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파수를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인생과 여행이 음악이라면 우리는 그 누군가와 섬세하게 마음의 주파수를 조율해 가며 내가 내는 떨림이 너와 나의 울림이 되는 순간을 늘 갈망하는 게 아닐까.
(2편으로 이어짐)
* 피아노의 액션이란 연주자가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해머가 현을 때리게 하는 내부 장치이다.
** 궈창성. 2024. 피아노 조율사. 문현선 옮김. 민음사. 26쪽.
*** 같은 책. 21~22쪽.
**** 평균율이란 조바꿈이 불편한 순정률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음들 사이의 진동수의 비를 균등하게 조정한 음률이다. 피아노를 비롯한 건반악기에서 널리 쓰인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박경미의 수학 콘서트 플러스). 평균율과 더 큰 자유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구자범의 ‘더 큰 음악, 더 큰 세상, 더 큰 자유’를 참조할 것.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89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