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9
선생님,
지난밤에는 끝도 없이 눈이 내렸습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나 비가 다시 내릴 것처럼 온통 잿빛입니다. 그 하늘 밑으로는 잎을 모두 떨구어 낸 나무들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런 겨울 날씨 속에서 햇빛 한 줄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 중 한 명이긴 하지만, 사실 글을 쓰거나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북유럽의 겨울 날씨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제저녁엔 설거지를 끝낸 다음 집 근처에 있는 아우라 강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면서 소복이 쌓인 눈이 달빛과 가로등의 불빛 아래에서 반짝거리는 오묘한 광경을 보고 있으면 (핀란드의 눈은 습기가 적어 뭉쳐지지 않는 대신, 밤하늘 불빛 아래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신비한 특성이 있어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오릅니다. 이곳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저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말씀드렸듯이 지난 일 년간 공부모임에서 각자 논문을 읽고 쓴 비평글에 서로 토론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선생님은 저에게 앞서 배우는 자가 뒤따라 배우려 하는 자에게 베푸는 헌신과 신뢰에 더불어 지식과 사유가 단단하게 결합된 좋은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셨죠. 덕분에 저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리고 핀란드로 다시 오기 전 한국에 돌아와 머물렀던 일 년 반 동안에도, 저는 몸이 아팠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혼자 숲을 걷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썼던 교단일기, 북유럽 학교 건축 이야기, 책 이야기, 수필 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냉혹한 교육 현실 속에 던져진 한 교사가 괴로움을 토로하는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고단한 현실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단계로 저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핀란드는 도대체 왜 가니?
지금까지 제가 아마 백번도 넘게 들은 질문일 겁니다. 그리고 박사과정 유학을 위해 다시 핀란드로 떠날 것을 결정하기 전 제 자신에게 수없이 물었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저는 임용고시 준비 대신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모아 배낭을 짊어지고 낯선 사회를 여행했던 경험이 있어요. 그때 중국 윈난의 어느 모계사회 오지마을에서 일주일 가량을 머물면서 마을 사람들의 농사일을 거들기도 하고, 그 사람들처럼 꼬박 두 시간을 걸어 시장에 가는 생활을 함께 하면서 제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회를 스쳐가듯 살펴보는 관광객이 아니라, 그 사회에 오래 머물면서 질적인 시선으로 좀 더 깊게 들여다보는 체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지요. 그런데 그 사회가 핀란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네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핀란드인들의 일상을 에워싸고 있는 보편복지를 지켜보는 관찰자이자 때로는 직접 수혜를 누리기도 하는 외국인 유학생이었던 저에게 핀란드라는 나라는 흔해빠진 시내버스조차 탐나는 글쓰기 소재로 다가오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처음 이년 반 동안의 석사과정 유학생활이 낯선 사회가 저를 양적인 새로움과 호기심으로 압도하는 과정이었다면, 지난가을부터 시작된 두 번째 유학 생활은 핀란드라는 사회가 저에게 주는 어느 정도의 익숙함을 질적인 새로움으로 바라보고 한국이라는 사회와 견주어보기도 하면서, 그 속에서 생각을 키워가려고 시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듯 핀란드 생활을 통해 좋은 시선이 담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다시 유학을 결심하게 된 하나의 동기가 되었지요.
제가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곳 대학에서 하는 일 역시 어차피 글을 읽고 쓰는 일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저의 하루는 글로 시작해서 글로 끝나는 겁니다. 제가 마침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네요. 그래서 아마 제가 핀란드에서 하고 있는 일의 성격을 좀 더 잘 알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렇게도 질문을 하셨겠지요. ’왜 글을 쓰니?’라고.
왜 글이 쓰고 싶은 건지 어느 날 찬찬히 생각을 따라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자리하고 있더군요. 저는 이따금씩 죽음을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제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잊혀진다는 것이었어요.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들에게서 서서히 잊혀지는 망각의 힘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도 적응하여 살아갈 힘을 얻게 되겠지만, 죽은 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제가 죽고 나서도 제 글들은 온전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물론 그렇게 되려면 좋은 글을 써야 하겠지요), 그렇게 연약한 저의 마음이 죽음과 망각에 대한 두려움을 힘의 근원으로 삼아 글을 쓰게 만듭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핀란드라는 나라는 글을 쓰거나 피아노를 연습하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춥고 긴 겨울에 밖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고, 날씨는 몇 시간씩 책상머리나 피아노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제 감성을 자극하고, 게다가 한국에서처럼 시시때때로 전화기가 울려대거나 메시지가 날아들 일도 없으니까요.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이면 제 자신을 책상 앞으로 불러 앉힌 다음 글을 씁니다. 그렇게 제가 쓰는 글은 일차적으로는 제 내면과의 대화이고, 또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제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건네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글을 쓴다는 건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뜻이고, 그렇게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라는 건 결국, 혼자 생각하는 일을 즐기지만 그 생각의 끝에는 늘 타인과의 소통을 늘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이 만들어 낸 이야기일 겁니다.
그리고, 저 역시 글을 통해 자아를 드러내고 다수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대단히 즐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느 순간엔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예술가적 기질이고, 비꼬아서 말하면 자기도취적인 성향이라고나 할까요. 글 솜씨가 유려한 것도, 사유를 풍부하게 담아내는 것도 아닌 제가 글을 공개하고 난 다음 날 아침이면 제가 뱉어놓은 글에 대한 부끄러움과 비판에 대한 부담보다는 누가 얼마나 읽고 반응을 해 주었을까 기대하며 인터넷을 열어본다는 사실은 제가 다분히 이런 뻔뻔한 기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어쨌든 핀란드에 와서 몇 년째 이곳 사람들의 삶을 염탐하고 직접 경험하기도 하는 저로서는 낯선 사회라는 글감을 통해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된 셈입니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문서 편집기의 텅 빈 화면에서 커서는 공포스러운 깜빡임을 반복하고, 겨우 머리를 쥐어짜 내어 몇 줄 써 보지만 이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리고 나면 커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글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면 글 쓰는 사람의 직업병인 뒷목과 어깨, 그리고 오른쪽 손목 통증이 삼종 세트로 한꺼번에 밀려오지요 (저는 이 순간마다 수년간 고개를 젖힌 채 천장 벽화인 '천지창조'를 그려야 했던 미켈란젤로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영어로 학술적인 글, 즉 논문을 써야 한다는 것도 저에게는 아주 큰 도전이자 시련입니다. 한 줄 한 줄 논리의 비약 없이 제 생각과 다른 이들의 선행 연구를 정교하게 종합하여 글을 전개한다는 것도 아주 힘든 일일뿐더러, 거기에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글을 써야 한다는 어려움까지 합세하여 저를 괴롭히는 순간이면 제가 왜 여기에서 이걸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완성된 한 단락 혹은 한 편의 글을 손에 넣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군요. 완성된 글은 더 이상 머릿속에 뿌옇게 떠다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구름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언제라도 꺼내어 다시 읽을 수 있는 뚜렷한 형체를 지닌 제 사유의 총체이니까요. 게다가 그 글을 통해 동시대 혹은 과거의 인물들과 시공간을 초월하여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혹적이기까지 합니다. 제가 작년 겨울 신문에 PISA(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 관한 기사를 한 편 쓰면서 선생님의 글을 인용한 적이 있었죠. 언어로 제 글이라는 집을 지으면서 선생님의 문제의식이 담긴 글을 초대하여 공동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어 참 기뻤습니다. 선생님과 제가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같은 곳을 향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습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은 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실 것이라 생각하니 글쓰기가 두려움과 막막함이 아닌 설렘과 동행의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글은 제 사유가 조금씩 자라온 궤적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성장 일기 같은 것이겠지요. 제가 이 책의 초반부에 보낸 편지들을 나중에 다시 꺼내어 읽어본다면, 제가 보기에도 분명히 편협한 사고가 눈에 띌 것이라 생각하지만 한 번 보낸 편지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닌 까닭에 거둬들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적 자극과 경험이 쌓여 제 생각이 변화한다면 때로는 이전의 생각을 뒤엎기도 하면서, 그렇게 성장의 여정을 진솔하게 드러내 보이도록 할게요.
이제, '핀란드에 도대체 왜 갔니?'라고 누군가 다시 묻는다면, 글쓰기를 통해 외로움을 승화시키고, 동시에 자아를 드러내면서 타인과 끊임없이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교류하고자 하는 어느 뻔뻔하고 해맑은 인간의 실존적 욕구가 불러온 결과라고 답하겠습니다.
저녁이네요. 선생님과 편지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일주일에 세 번 서로 번갈아가며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밥을 먹는 이웃 D와 M을 위해 일요일은 제가 저녁을 준비하는 날입니다. 메뉴는 새우튀김을 얹은 카레라이스와 오이 상추 겉절이입니다. 선생님의 추측대로 음식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익어가고 있는 공동부엌이지요.
이미 '내일'이라는 현재에서 주무시고 계실 선생님께 아직 '오늘'을 살고 있는 제가 편지 보냅니다. 그럼 저는 이만 공동부엌으로 가볼께요.
J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