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계쓰홀릭 Jul 04. 2024

나의 아름다운 도시, 부산(1)

소소한 에세이 과제 - 내가 떠나온 곳

  나의 인생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태어나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부산에서의 절반과 스무 살 성인이 된 후 대학 생활부터를 보낸 서울에서의 절반 가량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에서의 내 삶은 무척이나 안정적이었다. 태어난 아파트에서 스무 살이 되도록 이사 한 번 가지 않았고, 동네 아이들 대부분이 다니는 초·중·고등학교를 무탈하게 개근으로 졸업했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서른이 다 되어갈 때쯤에서야 부모님이 그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오셨으니 부산에서의 내 삶은 오롯이 한 집에서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와 반대로 서울에서의 내 삶은 대체로 이동이 잦았다. 스무 살 때 첫 학기는 언니와 안암동 하숙집에서 지냈고, 두 번째 학기부터는 우여곡절 끝에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 이후로는 학기 단위로 친구와 자취를 하기도 하고 다시 기숙사에 입사하기도 하며 여러 동네,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공간을 경험했다. 아파트 외에도 빌라나 반지하 원룸, 밥을 주는 하숙집, 옵션이 다 갖춰진 대신 월세가 비싼 고시텔 등 금액과 위치에 따라 이런저런 장단점이 극명하게 나눠지는 새로운 곳으로의 이전은 늘 새롭고 흥미로웠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기숙사에서 친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만나면 각자의 고향에 대해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곤 했다. 친구들 덕분에 생전 몰랐고 가 볼 일도 없었던 새로운 고장도 많이 알게 되었고, 나중에라도 여행하며 그 주변을 지나게 되면 그곳 출신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기도 한다. 기숙사에 산다고 하면 많은 선배나 동기들이 ‘고향은 어디?’ 냐고 물었었다. 부산이라고 이야기하면 대뜸 ‘어! 사투리를 안 쓰네? 부산사람들은 사투리 잘 못 고치던데’라고 감탄(?) 하기도 했다. 부산이나 대구 등 경상도 사람들은 특유의 강렬한 억양이 있어서 어딜 가나 몇 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고향을 들키고는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정확하게 말하면 사투리를 고친 게 아니라, ‘서울말’이라는 제2모국어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이며 ‘부산 사투리’라는 모국어 역시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마치 스위치가 바뀌듯 말투를 바꿔 쓸 수 있는 원어민일 뿐이다. 아마도 부산 친구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나긋나긋한 말투에 답답하리만치 느긋했던 성격이 서울말 학습에 반영된 것 같다.


  부산에서의 내 삶은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집에서 몇 걸음만 나가면 광안리 바닷가가 펼쳐져 있었고, 급격하게 신도시로 개발된 해운대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아올 만큼 글로벌한 위상에 어울리게 눈부신 빌딩으로 하루가 다르게 채워졌다. 그렇게 멋진 고향이지만,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왔을 때의 그 뿌듯함은 추억을 잠시 잊게 했다. 고향 친구들이 ‘지금 뭐 해?’ 하고 톡을 보내왔을 때 무심한 듯 ‘어, 한강 다리 건너는 지하철!’ 아니면 ‘친구들이랑 대학로에 연극 보러 왔어.’ ‘예술의 전당에 왔는데 분수쇼 하네.’라고 답하면 ‘오오오 우리 계쓰 성공했다~’ 하는 식의 반응을 해주었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충분히 ‘서울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 다음 편에 계속 -



 


작가의 이전글 버릇 잡는 버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