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계쓰홀릭 Jun 26. 2024

버릇 잡는 버릇

소소한 에세이 과제 - 버릇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반복하는 행동이나 말이 있다. 그것을 습관 혹은 버릇이라고 하는데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떠는 행동은 보기에 좋지 않고 건강을 해치기도 해서 고쳐야 할 버릇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음식을 먹을 때 쩝쩝거리는 것, 젖은 수건을 아무 데나 두는 것, 벗을 때 뒤집어진 옷을 그대로 빨래통에 넣는 것 등은 ‘우리 남편의 이런 행동이 너무 거슬려요’ 하는 식의 제목으로 인터넷에 떠돌기도 하니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나쁜 버릇’의 범주에 드는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사람마다 거슬려하는 분야가 달라서 어떤 사람은 똑같은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명 ‘면치기’라고 불리는 – 면을 먹을 때 후루루룩 하고 한 입에 빨아들여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먹는 – 기술이 한때 방송에서 먹방의 상징으로 대접받으며  ‘복스럽게 먹는다’, ‘먹을 줄 아네’라는 평가를 받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월드 스타인 이정재, 정우성 배우가 ‘먹교수’ 이영자 앞에서 소리 없이 비빔칼국수를 먹는 장면이 이슈가 된 후부터라고 생각한다. 조용히 면을 끊어먹는 모습을 보고 스튜디오에 있는 패널들은 “면치기를 안 하다니!” 라며 흥분했지만, 이영자의 잔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한 모습으로 젠틀하게 먹는 –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문채 음식을 씹는 – 것을 보고 그제야 ‘사실 그동안 방송으로 면치기를 보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외국에서는 그렇게 먹으면 욕먹는다’ ‘월드스타답다’는 댓글이 달렸다. 누군가에게는 복스럽게 잘 먹는 모습으로 식욕을 돋우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저분하게 먹는 모습으로 비친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사건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예전부터 주변 사람이나 상황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20년도 더 지난 사건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 나처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건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렸거나 주변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자신의 경험 여부만 간신히 기억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재주 덕분인지 나는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말투나 습관 같은 것을 잘 찾아내고 그것을 흉내 내어 그 사람을 함께 알고 있는 지인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어내곤 한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와 구민체육센터에서 하는 요가교실을 등록한 적이 있다. 연세가 좀 지긋하신 요가선생님은 중독성이 있는 묘한 말투를 가지고 계셨다. 처음 한 두 달은 별생각 없이 수업을 들었는데, 어느 날 그 선배를 포함한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우리 요가선생님 말투 되게 특이해. 하낫 둘 후~ 둘 둘 후~ ” 하며 특유의 리듬을 따라 했다. 요가를 수강하지 않는 사람들도 함께 웃었지만, 특히 그 선배는 눈물까지 흘리며 박장대소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요가 수업에서 그 대목에만 다다르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허벅지도 꼬집어보고 혀도 깨물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선배와 내가 낄낄거리는 모습에 요가 선생님도 정숙해달라고 하셨고, 그 후로 우리는 그 수업을 도저히 더 수강할 수가 없었다.

  신규 교사 시절에는 학교의 교장, 교감선생님 말투를 흉내 내어 동료 교사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흉내의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고 “교무실에 갔는데 교감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는 식으로 상황을 전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말투가 묻어 나온 것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사석에서는 ‘개인기’처럼 쓰이기도 했다. 누가 와서 “교장 선생님 흉내 좀 내봐요.” 하면 자주 쓰시는 문장을 한 두 개 따라 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은 그것이 나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길어지는 회식의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한 후배 한 명이 “교장선생님, 이 언니가 교장쌤 흉내 엄청 잘 내는 거 아세요? 언니~ 지금 해봐요~!” 하며 당사자 앞에서 개인기를 요청한 것이다. 딸 뻘이나 될까 말까 한 새내기 교사가 교장선생님 앞에서 교장선생님 흉내를 내다니! 너무 당황해서 이런저런 말로 둘러대며 자리를 피했지만, 그때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나쁜 뜻이 없어도 상대방 – 특히 어르신 – 에게는 조롱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근무지에서는 우연한 기회로 위아래 열두 살 정도 차이 나는 예닐곱 명의 친목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제일 나이 많으신 남자 부장님은 우리 그룹의 리더이면서 지갑도 잘 열어주시고 젊은이들과 대화도 잘 통했는데, 가끔 별 뜻 없이 꼰대질을 하기도 하셔서 나의 반발을 샀다. 티격태격하면서 톰과 제리처럼 지냈지만 그래서 더 편하게 대하는 사이랄까. 그분은 특유의 경상북도 억양으로 중요한 대목이 생각 안 날 때 “저거잖아 저거~ 그거 했잖아.”라고 하기도 했고, 놀라운 일이 생겼을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옥” 하며 숨을 내쉬는 버릇이 있었는데 나는 또 그것을 놓칠 새라 부장님의 말투를 캐치해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친목 그룹의 동료들은 그것을 너무 재밌어하고 단톡방에서도 써먹을 만큼 좋아했다. 부장님은 그때마다 미소 짓고 계셨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그 버릇이 사라졌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부장님, 요즘은 왜 그거 안 하세요?” 하고 물어보았는데 별다른 대답이 없으셨다. 아마도 내가 흉내 내는 모습을 보고 ‘아 저 행동이 별로구나. 나는 이제 안 해야겠다.’ 하고 마음먹으신 게 아닐까? 본의 아니게 일종의 ‘거울치료’를 하게 만들어 버린 나는 왠지 조금 죄송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한참 어린 후배가 나의 말투를 흉내 내고, 다들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과목별 선생님들의 특징을 잡아 흉내 내고 희화화하는 것은 공부에 지친 여중생들의 흔한 오락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직장 상사나 선배의 버릇을 흉내 내는 것은 더 이상 단순히 웃음만 주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더러는 내가 보여주는 개인기를 무척 좋아하며 “어머 내가 그랬구나! 너무 재밌다.” 하는 분도 계셨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흉내내기 시작한 그분들의 ‘버릇’은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거나 당사자가 직관한 후로 점점 줄어들었던 것 같다. 정작 내가 어떤 버릇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몰랐던 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특유의 관찰력으로 독특하고 재밌는 버릇을 찾아 재연하지만, 그분들의 개성이었던 그 버릇을 자꾸만 없애 버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나는 별다른 버릇이 없다고 여겨왔지만, 본의 아니게 지인들의 버릇을 찾아 없애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내 사회적 지위와 중년의 나이에 걸맞은 점잖은 어른이 되기 위해 내 버릇의 양면성을 인지하고, 상황에 맞게 줄여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벚꽃터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