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샷추 제로의 악몽
연초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스위치온 다이어트라는 것을 알게 되어 단백질 쉐이크와 저탄수화물 식단으로 체중을 감량하던 중이었다. 그날은 모임이 있었지만 밥은 적게 먹고 고기를 많이 먹으며 나름 식단을 지켜낸 후, 디저트 가게로 이동했다. 평소였으면 고민하지도 않고 아바라(아이스바닐라라떼)를 시켰을 테지만 그날은 다이어트가 신경 쓰여 다른 메뉴를 살펴보았다. 요즘 MZ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아샷추 제로슈가' 음료가 눈에 띄었다. 언젠가 '기안84'가 대학 후배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어떤 후배의 '아샷추'를 한 입 먹고는 "우엑 이게 뭐야"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정확하게 뜻도 알아보지 않고 호기롭게 '아샷추 제로슈가'를 시켜보았다. 한 입 먹어보니 나 역시 '으엑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커피에 샷을 추가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한 음료였다니! 조금 상한 아이스티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이게 MZ들의 입맛이구나… 다시는 안 시켜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지인들과 웃고 떠들며 음료를 조금씩 마시다가 결국엔 마지막 한 모금까지 쭈욱 빨아들였다. 시럽 같은 것이 얼음 아래 깔려있어서 달콤한 맛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음, 달콤하군. 아이스티 원액인가?'라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나는 갑작스러운 복통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화장실은 가파른 계단으로 한 층 올라가야 했는데, 지인들에게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말한 후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는 중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으며 빈칸에 겨우 들어가 앉자, 식은땀이 미친 듯이 나서 바닥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살면서 배가 이렇게까지 아팠던 적이 있었던가? 거의 출산의 고통에 버금가는 굉장한 통증이 내 복부를 훑고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아픈 와중에도 뭐가 잘못된 건지 궁금했던 나는 휴대폰으로 '제로슈가 음료 복통'을 검색해 보았다.
이디야, 컴포즈, 메가커피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아샷추 제로' 음료를 마시고 나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한 사람들이 많았고, 일부 매장에서는 8일 만에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스타벅스의 '돌체라떼'는 비슷한 이유로 '최고의 변비약'이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스벅 돌체라떼 먹고 화장실 갔다는 내용을 보기는 했는데 무관심하게 넘어간 기억이 언뜻 머리를 스쳤다. 변비인들의 커뮤니티에는 약으로도 역부족이었던 변비를 '아샷추' 마시고 해결했다는 복용(?) 후기와 함께, 깨끗한 화장실이 카페 내부에 잘 갖춰진 매장을 몇 군데 추천해 둔 글도 보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혼자서 걸어 나오기 힘들었던 나는 카톡으로 아래층 지인들에게 내 상황을 알렸다. 몇 명이 놀란 얼굴로 한달음에 올라와 나를 부축해 주었다. 흘린 땀으로 흥건한 내 모습을 보고 모두가 놀라며 응급실이라도 가야 하는지, 근처에 있는 누구네 집에서 좀 쉬다가 가는 게 어떨지 의논했는데 그들의 목소리조차 내 귀에는 웅웅 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모임 장소가 꽤 멀었던 탓에 한 시간 남짓 걸려 집으로 돌아갈 일이 막막하기도 해서 남편에게도 연락했지만, 취침을 앞둔 두 아이를 두고 거기까지 오는 것도 사실상 무리였다. 평소에 워낙 아프지 않고 건강하던 아내에게서 배가 아파 집에 못 가겠다는 연락이 오니 잠시나마 보이스피싱을 의심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는 나중에 전해 들었다.
화장실을 몇 번 더 추가로 방문한 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 같은 동네 방향에 사는 선배의 차를 얻어 타고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오다가 잠시 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집에 도착할 때까지 괄약근이 잘 버텨주었다. 밤새 두 시간 간격으로 복통을 호소하며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려서, 날이 밝아올 즈음에는 이 상태로 대장내시경을 찍어도 될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남편과 나누었다.
평소 제로슈가 펩시를 즐겨 먹고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대체당에 대해 별다른 경계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이번 복통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종류의 대체당에 대해 찾아보았다. 이번에 내 복통의 원인이 된 것은 '에리스리톨' 이었다.
그동안 내가 먹던 애사비(애플 사이다 비니거) 제로 음료에도, 달콤한 단백질 쉐이크에도 에리스리톨이 소량 들어있었다. 평소에 잘 먹던 성분인 것으로 보아, 그날 카페에서 마지막에 쭉 들이켰던 그 한 모금 안에 너무 많은 양의 에리스리톨이 들어있어 그 사달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그날 먹은 다른 제로 음료들에 소량씩 들어있던 에리스리톨이 누적되어 일일 섭취 적정량을 초과했을 수도 있다.
건강과 당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제로슈가 열풍이 불고 있다. 콜라,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 뿐만 아니라 젤리, 초코칩쿠키, 아이스크림과 각종 카페 메뉴에도 '제로'라는 말이 심심치않게 붙어있다. 설탕을 줄여서 당을 덜 섭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대체당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아보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은 사건이었다. 예전같으면 예사롭지 않게 보고 지나쳤을 경고 문구들이 카페 키오스크 옆에 붙어 있어 요즘도 종종 그날의 통증이 머릿속에 소환되곤 한다.
- 경고 -
제로 슈거 음료에 들어가는 대체당은 개인에 따라 복통이나 구토를 유발할 수 있으니 섭취에 유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