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난 일요일 오후, 운동을 마치고 아이들과 서둘러 집을 나섰다.
조선 역사상 가장 외로웠던 왕,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했던 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 끝에 꼭 이런 말이 붙는다.
“너, ‘왕과 사는 남자’ 봤어?”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기 어려울 정도로 화제인 영화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단종은 대개 이렇게 기억된다.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사약을 받은 비운의 어린 왕.
하지만 단종, 이홍위는 조선 역사에서 원손, 세손, 세자, 왕의
모든 과정을 거친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임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말한다.
정통성도 권력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계유정난, 사육신, 한명회….
많은 영화와 이야기 속에서 단종은 등장하지만,
결국 이야기는 늘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노산군은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죽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짧은 기록 사이의 여백을 바라본다.
역사에는 몇 줄로 남겼지만, 그 시간 속에는 분명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영화 속 단종은 백성들을 만나며 조금씩 용기를 얻는다.
왕이란 무엇인지, 나라란 무엇인지, 왜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백성을 위한 왕의 모습을 보여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단종 복위 운동이 성공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역사가 새롭게 쓰였을까, 아니면 더 큰 혼란이 찾아왔을까.
그래도 적어도
그가 홀로 쓸쓸히 강을 건너는 비극만은 없지 않았을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단종의 눈망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치 진짜 단종의 혼이 스며든 듯한 슬픈 눈빛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계속 올라왔다.
영화 속에서 단종이 매화에게 남긴 마지막 글이 특히
마음을 붙잡았다.
“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대는 나와 함께했다.
그 고마웠던 시절을 뒤로하고 나는 이제 가려 한다.
그대는 나의 벗이요 누이요 어머니였다.
먼 훗날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도 나의 벗이 되어다오.
나도 기꺼이 그대의 벗이 되겠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의 손이 아니라
“차라리 그대의 손으로 나를 강 건너게 해 달라.”
그 장면에서 결국 눈물이 터졌다.
강가에 앉아 있는 단종의 모습은
왕이 아니라 그저 외로운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옆에 앉아 있던 아이들의 훌쩍이는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사람들이‘연기 전다’라고 말하듯, 배우 유해진의 연기는
소름 돋을 정도였다.
대사 없이도 표정 하나로 수많은 말들을 하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할 배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박지훈이 연기한 단종의 눈망울 역시 깊었다.
그 슬픔 속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서사가 담겨 있었다.
이 영화는 연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내가 오래 붙들고 생각한 인물은
왕이 아니라 엄흥도였다.
삼족을 멸한다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몰래 장례를 치른다.
권력도, 힘도, 배경도 없는 한 아전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가족의 목숨까지 걸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세조는 여전히 왕위를 찬탈한 군주로 기억되지만,
이름 없던 아전 엄흥도는 충신으로 남았다.
옳은 일을 하다 죽는다면
기꺼이 그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신념.
그것은 당대에는 고통이었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빛나는 역사적 인물로 돌아왔다..
결국 단종은 사후 240여 년이 지난 1698년, 숙종 때
다시 왕으로 복위된다.
그리고 엄흥도 역시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받는다.
지금도 장릉 근처 정려각에는
왕의 곁에 잠든 그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 제목이 ‘왕과 사는 남자’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권력도 힘도 없었지만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한 사람.
만약 우리에게 그런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문득 오래전 두 차례 다녀왔던 그곳,
그때는 그저 여행지 중 하나였던 청령포.
이제는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
왕을 추모하는 백성의 마음이 되어.
아마 강물 앞에 서면
왕방연이 남겼다는 그 시조가
조용히 떠오를 것 같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 울어 밤길 예놋다(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