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의 미소,그 의미는?
얼마 전, 한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낯익은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순간, 읽었던 오래된 기억하나 슬금슬금 올라온다.
주인공 이름은 가물가물 했지만 가슴이 묘하게 떨리던
감각만은 남은 듯 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득 주인공 이름과 줄거리가 금방은 떠오르진 않았다.
책장을 다시 펼쳤다. 아! 맞다. 미하일!
이 이야기는 한 청년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죄로 미하일은 추운 겨울 인간 세상에 벌거벗은
채로 버려진다.
추위에 떨고 있던 그를 발견한 사람은 구두장이 세몬이었다.
외상값을 받아 외투를 사려고 나섰지만 빈손으로 돌아오던 길.
그는 인간적인 주저함도 보였지만 자기 외투를 벗어 입히고 집으로 데려온다.
아내 마트료나는 처음엔 화를 냈다.
먹을 것조차 넉넉지 않은 집에 또 한 사람을 들이다니!
그러나 떨고 있는 청년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도 분노 아닌 연민이 스쳤다.
결국 따뜻한 저녁을 차려주었다.
그때, 청년 미하일은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가 웬지 이상하게 마음속에 남았다.
인간의 내면에 무엇이 흐르는지 보여주는 장면 같아서 일까!
세월이 흐르며 미하일은 구두 만드는 일을 배워가고
세몬의 가게는 점점 번창한다.
어느 날 성질이 사나운 귀족이 찾아와 질 좋은 가죽을 내밀며 장화를 주문한다.
이때 그는 얼굴을 환희 밝히며 두번째 미소를 흘린다.
그런데 미하일은 장화가 아니라 슬리퍼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몬이 당황하며 소리치는 순간,
귀족의 하인이 뛰어 들어와 말했다.
“장화는 이제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나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장면을 읽을 때 나는 처음 읽던 때처럼 다시 전율이 일었다..
우리는 늘 내일을 준비하며 살지만, 정작 내일이 우리에게 허락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로부터 또 몇 해가 흐른 뒤
두 아이를 데리고 온 한 여인이 구둣방을 찾는다.
아이들은 부모를 잃었고,
이웃이었던 그녀가 젖을 먹이며 키웠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미하일은 세 번째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그는 천사였고, 인간 세상에서 세 가지를 깨달아야 하늘로 돌아 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가 깨달은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사랑과 온정이 있고,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자신의 미래를 아는 일이며,
사람은 결국 이웃의 돌봄과 따뜻한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한 문장이 오래 머물렀다.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겨울 준비는 하면서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꿈꾸고, 더 나은 삶을 기대한다.
정말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일까!
문득 스치는 두 개의 라틴어 문장.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카르페 디엠.
오늘을 붙잡아라.
죽음이 있기에 살아 있음이 감사하고
내일을 모르는 존재이기에 오늘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쩌면 우리는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작은 온기 하나
사소한 친절하나,
작고 따뜻한 사랑 한 조각으로
오늘 하루를 버티며 살아내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