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고민이 먼저 밀려온다.
뭐부터 해야 하지? 무엇을 읽으며 시작해야 하지?
며칠째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요즘 나는 ‘행복 강박’ 대신
‘글감 강박’에 시달리는 중이다.
12월에 사둔 책 열다섯 권이 식탁 모서리에 산처럼 쌓여 있다.
유발 하라리, 카네기, 조지 오웰, 쇼펜하우어, 몽테뉴, 윌리엄 트래버…
보고 싶은 마음만 앞서 무작정 사들였지만,
이책 저책 읽다 책갈피만 꽂아 둔 채 나를 응시 하고 있다.
해야 할 일도 책만큼이나 많다.
집안일에, 캘리, 뎃상 마무리까지…
장가 안 간 쌍둥이 아들 생일상도 준비해야 하고,
12월이라 남은 모임도 몇 개 있다.
두서없이 마구 자란 머리를 정리하러 미장원도 가야 하고,
어제 늦은 저녁 먹은 뒷처리도 남아 있고, 운동도 해야 하고, 크.
며칠째 못간 엄마 에게도 가야하고 하루 스케줄은 이미
냄비처럼 끓어 넘칠 지경이다.
그런데 왜 하필 요즘,
쇼펜하우어의 ‘표상’과 ‘지성과 이성’ 같은 단어가
내 머릿속을 떠 다니고 있는 걸까?
칠십 평생 몰라도 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알겠다고 덤비니 머릿속에 쥐가 날 지경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생긴 지적 허기,
그 목마름이 나를 자꾸만 이런 세계로 밀어 넣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엔 나일강에 흠뻑 빠졌다가 간신히 나왔는데
이번에는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곁을 배회하다
이젠 쇼펜하우어의 사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언제쯤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다음엔 어디로 향해 루비콘강을 건너게 될까?
“멍청한 사람일수록 책을 많이 읽는다.”
어디서 주워 들은 말이 문득 스친다. 그게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나는 꽤 멍청한 편인가?
아니면, 그 멍청함 덕분에 세상을 더 궁금해하고
더 기쁘게 읽고 있는 걸까.
문득 헷갈리다가도 웃음이 난다.
브런치에 글을 읽어보며 어느 작가님의 ‘응원하기’를 눌렀다가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여러 번 시도하다 엉켜버렸다.
몇 번을 반복하다 그만두기를 여러 번 “에이 모르겠다’ 그저 마음만.
좀 쉽게 하면 좋을텐데. 왕 짜증. 늙음 탓인가?
미장원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나오는 길,
바람은 뜻밖에 포근했고
베스킨라빈스에서 케이크를 사고
정육점에서 한우 1.2kg을 배낭에 담고,
단풍잎이 내려앉아 하늘에 별처럼 뿌려진 길을 걸어오며
참 바쁜 하루! 넋두리를 글속에 풀어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