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회관을 나서며,배움의 끝은?

by 김세은


처음엔 노인복지회관 수강을 한다는 친구의 말에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백발의 어르신들 틈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망설임이 컸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 보내다 어느 날, “한번 들어나 보자”는 마뜩잖은 마음으로 신청을 했다


문학교실과 팝송교실.

금요일마다 두 과목을 듣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70~80년대 팝송을 즐겨 들으며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던 기억에 자연스럽게 우선 선택한 수업이었다.


교실 안 풍경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필반도, 팝송반도 대부분 70대 후반에서 80대의 어르신들이었다.

낯선 분위기는 서로 소개와 인사하며 웃는 사이

금새 친숙하고 부드러워졌다.


큰 걱정은 따로 있었다. 다음 시간부터 무조건 글을 써서 앞으로 나와 발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배우려고 왔는데 당장 써와야 한다니!’과연 이 수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산더미 같은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며 글 쓰는 일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갔다.

추억의 팝송 시간에는 20대의 시절로 되돌아간 듯 젊은 나를 불러 세우며, 폼 나게,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만큼은 나이도, 현실도 잠시 잊혔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독서량도 조금씩 늘어갔다. 무심히 지나치던 풍경과 감정들을 진지하게, 때로는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글감을 낚는 어부가 되어 있었다.


수필반 선생님의 권유로 브런치의 문을 두드리며 그렇게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글을 올릴 때마다 작가님들의 라이킷과 댓글, 황송하게도 구독까지 이어졌다. 그 반응들이 위로가 되었고, 또 용기가 되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배우고 싶다’는 욕구는 오히려 더 커졌다. 젊은 시절엔 생각조차 못 했던 캘리, 붓글씨와 스케치에 도전했고, 데생과 크로키, 오일 파스텔화까지 다양한 배움을 경험했다.


‘노인복지회관 문화축제 청춘만세’.

무대 위에서는 춤과 악기, 노래가 펼쳐졌고, 전시장에는 그림과 글이 가득했다. 놀라움과 경이로움, 그리고 존경심이 동시에 밀려왔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작품들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서 깊은 사유에 잠겼다.


나이 든다는 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젊은이들의 세상에 이민 온 이방인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쓸쓸한 감정이 스며들 때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는 긴 세월을 치열하게 살아왔다.


일과 싸우며 지낸 45년, 퇴직 후 집 안에 머물며 무료함과 공허하게 느껴지던 시간들을 의욕과 열정으로 되살려 주었고, 삶의 의미를 다시 묻게 했다.

노인복지회관 시스템이 건네준 무한한 사랑과 배려에 감사함이 절로 나온다.


몇 해 동안 숙제 하는 기분으로 글을 쓰며, 꿈도 꾸지 못했던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을 얻게 해 주었고, 그림과 붓글씨로 시를 쓰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나이와 무관하게 의욕 넘치는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이 시스템에 다시 한 번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까지 나라의 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또 자녀들을 키우며 자신의 삶을 뒤로 미뤄온 어르신들. 노년은 결코 움츠러들 시기가 아니다.

착한 비용과 여유로운 시간, 그리고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는 시기다.


젊은 날 이루지 못한 꿈과 낭만 있는 노후를 품을 수 있는 이곳,

살아 있음의 환희를 다시 느끼게 해줄 노인복지회관은 당신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순간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언제쯤 ’글감 강박‘에서 벗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