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센트미터의 시간을 읽다

5일동안의 사투

by 김세은



눈에 확 들어온 책 한 권.

세계문학전집 속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안나 카레니나』.


학창 시절 고전 읽기 목록에서 본 기억은 있지만,

방대한 분량에 읽다 멈춰버린 책.

30여 년 전 영화로 먼저 접했을 때의 인상도 단순했다.

가정이 있는 한 여인의 불륜, 그리고 비극적 결말.

그저 통속소설쯤으로 마음속에 정리해 두었었다.


그런데 다시 이 책을 꺼내 들었다.

가운데 여백 하나 없이 빼곡한 글자들, 숨 쉴 틈 없는

문장들.

눈은 뻑뻑해지고, 집중은 자꾸만 흐트러졌다.

결국 작은 글씨에 읽기 어려워 새 책을 주문했다.

3권에 책 두께가 무려 19센티미터,

5일동안 읽기 도전!

다음날 도착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왜 그리 어렵고 많은지,

같은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헤메고 다녔다.

러시아어와 프랑스어, 낯선 단어들 분주하게 찾아 가며

헤멘다.

종이에 인물들을 나열하며 읽었다.

‘이 나이에, 눈을 혹사시키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작품을 두고

“역사상 가장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 극찬했다는 말.

나의 도전기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5일 완독’이라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정확히 열흘 만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시계를 보니 1월 29일 오전 11시 50분.

괜히 뿌듯해서 흡족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이제 남은 건, “뭘 써야 하지?”


『안나 카레니나』 소설 속 첫 문장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소설은 단순한 불륜이야기가 아니었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파괴적인 사랑만큼이나

레빈의 삶이 마음 속 깊이 다가왔다


농장의 풍경, 풀을 베는 장면,

땀 흘리는 노동 속에서 피어나는 평온함.

문장을 읽고 있는데,

마치 내가 그 농장 앞에 서 있는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알싸한 풀 향기와 여름 햇살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안나 카레니나.

고전적 아름다움과 지성, 우아한 사교술까지

동화 속 공주의 삶을 살았지만,

매일 공허가 일상인 삶.

사회적 체면과 관습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허락 받지 못한 여인이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은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다.

가혹한 말이나 비난도 한마디도 없었지만 따뜻함도

없었다.

그가 보낸 편지 속 문장, 소름 돋게 한 장면이다.


“가족이란 일시적인 변덕으로 파괴될 수 없는 것이오.”

“아내의 의무를 행하지 않고도 정숙한 아내에게 허락된

모든 권리를 누리게 될 것이오”

“당신이 경비로 쓰는데 필요할 것 같아 돈을 동봉하오.”


관대함이 아닌 규율이었고,

용서라기보다 통제에 가까웠다.


차갑고 이성적인 남편, 따뜻함 없는 결혼 생활 속에서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갈구 했지만,

행복과 죄책감, 모성애와 사회적 고립 사이에서

끝내 자신을 잃어갔다.


극한의 사랑이 어떻게 집착으로 변질되는지,

고립이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잔혹하게 무너뜨리는지

이 소설은 집요하게 보여준다.


안나와 ‘콘스탄친(코스챠)드미트리치 레빈’을 통해 그려지는 삶과 죽음,

진정한 삶의 의미, 인간의 다면적인 모습,

사회문제적 요소들을 그리고자 했던 위대한 작가의

고뇌와 사유를 실감하게 한다.


안나의 죽음후,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를 전쟁터로 내몰리고

그녀가 남긴 마지막 형벌처럼 느껴졌다.


누구의 잘못 일까.

작품은 쉽게 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처음부터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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