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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슨생 Sep 14. 2023

수업시간에도 편안히 잘 수 있는 권리(1)

 1학년 첫 수업에 들어가면 나의 소개를 한 이후 항상 하는 멘트가 있다. “제가 진행하는 수업이 너무 노잼이라 잠이 올 때엔 편안하게 주무시면 됩니다. 다만 님들의 자세를 고려하여 허리를 지나치게 숙이지는 마시고 교실 양쪽 측면에서 쿠션을 이용하여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세만 잘 유지하여 주시면 됩니다.” 학생들은 키득거리며 ‘저 자식 지금 농담하나?’라는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난 진심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재미없게 수업을 진행하는데도 그걸 억지로 듣는 학생을 보면 너무 고통스럽다.

 교사들끼리 간혹 만나서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에 관련된 말을 나눌 땐 난 위에서 말한 나의 사례를 그대로 말해준다. 사실이니까. 그러면 일부 교사들은 “아니 그건 교사 본인이 교사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인 것 아닌가요?”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면 난 “교사가 가져야 할 ‘책임’ 의식이란 무엇일까요?”라고 반문하며 다소 두루뭉술한 주제로 논점을 흐리(?)는 시도를 하다가 결국 책임의 의미에 대해 다 같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자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곤 한다.

 그런데 나의 사례에 대해 어떤 교사 친구(이하 A)는 “교사가 수업을 하려 하는데 학생이 대놓고 자는 것은 교사에 대한 예의가 결여된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얘기를 들은 직후엔 그 친구가 생각보다 꼰대화 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게 솔직한 심정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A가 했던 말을 좀 더 포괄적으로 정리하면 핵심은 바로 ‘학생은 수업 시간에 교사의 말을 집중하여 듣고 있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일 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교사들(또는 본인이 교사라고 가정한다면)에게 묻고 싶다. 그대가 진행하는 수업 시간에 그대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잠을 자는 학생을 본다면 언짢은 기분이 드시는가? 언짢다면 왜 그런가?

이들이 자는걸 보면서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일전에 누군가는 수업 시간에 학생이 잠을 자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주장의 근거로 다음처럼 답했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교사의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학생이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교사는 당연히 학생을 깨우거나 학생으로 하여금 수업에 집중할 것을 요구해야 하겠죠.”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그대에게 인생의 조언을 한답시고 가는 발걸음을 붙잡고 일장 연설을 시작하는데 그대가 바쁜 길 먼저 가겠다고 할 때 그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내려치며 “이놈! 내가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인데 어딜 가려하느냐?”라고 호통치면 그대는 그저 예! 하며 자리에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가? 우리 솔직해지자. ‘학교 수업 시간에 학생은 교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어야만 한다.’는 조항은 우리 헌법과 교육기본법 그 어디에도 없다. 그냥 누군가가 당신 말을 무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화가 난 것이 아닌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나와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그 학교에서는 앞으로 학생이 무단으로 결석, 지각 및 조퇴를 하는 횟수가 늘어나면 그 학생에게 학교 내 봉사 이상의 징계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이건 수업 시간에 자는 문제와는 좀 다른 성격인 것 같지만 학생에 대하여 제재를 가해야겠다는 그 교사(누군지 모르겠지만)의 기본 심정은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에게 호통을 치는 교사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본다. ‘감히 나의 허락 없이 함부로 학교를 불성실하게 다니다니. 나를 무시한 대가로 따끔한 맛을 봐라!’

 대한민국 헌법 제12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의 자유를 함부로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 역시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적용 대상임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교육감 전형으로 고등학교를 배정받은 학생들의 대부분은 타의에 의해 특정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2학년 이후의 일부 선택교과를 제외하고는 특정 교과의 특정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도 그들에게는 없다. 그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미도 없는 교사의 말을 억지로 듣게 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아직도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자꾸 자거나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면 생활기록부에 좋지 않은 멘트를 남기겠다.”느니, “아침에 계속 지각하면 너를 생활지도부에 넘겨서 강한 징계를 받게 하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그저 당신의 학창 시절 폭력 교사로부터 숱하게 당한 경험을 관성적으로 따라 하는 것은 아닌가? 학생이 그대의 말을 잘 들으며 그대로 따라 하길 바라는 것은 학생을 마치 반려동물과 같다고 착각했기 때문은 아닌가?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10여 년 전에는 수업 시간에 졸거나 학교에 지각하는 학생들에게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폭력교사였다. 수업 때 내가 수업을 더 알차게 설계하는 것보다 수업 시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학생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훨씬 쉬웠다. 지각이나 결석을 하는 학생이 무슨 사연 때문에 학교에 늦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보고 공감해 주는 것보다 그들의 엉덩이에 야구방망이찜질을 시전 하여 다시는 비슷한 행동을 할 엄두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러다 어떤 철학자를 만났고, 그를 계기로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으며 다른 앎이 들어오자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2부에서 계속)

그 철학자의 저서. 더 이상 이 철학자에게 '매달리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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