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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슨생 Nov 24. 2023

내가 선택한 괴로움

아무 말 안 하기

오랜만에 쓰는 글인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낙서처럼 끄적거렸습니다.

읽기엔 불편하실 터이니 브런치 구독자분들은 굳이 끝까지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 출정식이라는 이름으로 떠들썩한 이벤트가 실시되었다. 수험생도 원하지 않았고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여야 하는 일부 교사들의 업무 과중 문제가 있어서 출정식 이벤트를 취소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의식(儀式) 결정권자들(?)에 의해 끝내 강행되며 1, 2학년 학생들이 모두 3학년 하굣길에 동원되는 바람에 애꿎은 수업 시간만 잡아먹었다. 그 때문에 기말고사 직전, 수업 진도를 다 나가지 못한 교사들은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수능 출정식 직후에는 뭔가 이루었다는 보람을 표현하던 3학년 담임교사들도 수능 시험 가채점 결과를 대하고는 출정식과 실제 결과와의 무관련성을 새삼 확인했으리라.

얼마 전 학교에서 떠들썩한 일이 터져 언론에 오르내린 이후에도 여전히 학교 관리자는 학생들을 더욱 단속해야 한다는 시각을 버리지 못한 채 교복 등교, 교칙 준수만 부르짖는다. 가진 것이 망치밖에 없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만 보인다는 매슬로우의 말처럼 학교 의사 결정권자들이 그저 타성에 젖은 짓거리만 하고 있음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며 변명하고들 있지만 실상은 두려워서 아무 말 못 하고 있음을 모두들 알고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망하는 법. 교장만 되면 아무도 견제를 하지 않으니 내가 경험한 교장들은 대부분 임기 말에 좋지 못한 평판을 들으며 퇴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장실에서는 아무 말 못 하면서 교무실에 유독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 교사들이 부쩍 늘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자신의 현재 업무를 떠벌이는 것까지는 좀 참아줄 만하다. (진짜 바쁘면 정말 아무 말도 안 나오는데 한가하면서 바쁜척하려니 힘들겠지.) 하지만 애꿎은 학생들 험담을 해대며 누구는 죽일 놈이고 누구는 살릴 놈이라는 판관놀이를 하는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정말이지 곁에서 듣기 너무 민망하다. 자기가 진행하는 수업 시간에 자기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을 교무실에 끌고 와서는 학생의 담임교사에게 화풀이를 해대며 학생을 조리돌림하듯 비방하는 교사도 아직 있다. 씁쓸하다. 손가락 한 개로 타인을 삿대질하는 순간 나머지 손가락 세 개는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왜들 모르는지.

특정 의식에 대한 집착이 강한 집단에서는 개인의 자유나 인권이 보장될 확률은 극히 낮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의 출근 시간은 아침 8시 10분. 그런데 수업이 종료되는 시간은 16시 30분이다. 담임교사의 경우 종례를 하게 되면, 실제로 퇴근하는 시간은 17시에 가까워진다. 하루 8시간 근무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수년간 지속되었음에도 회의 시간에 그 누구도 선 듯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기본적인 노동권 보장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없는 폐쇄적인 문화 속에서 구성원들의 피로도는 늘어나고 억압된 감정은 회귀되어 감정의 화살이 애꿎은 학생에게 향하다 보니 결국 학교 지붕 아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괴롭다.

나는 수업 과목이 과학이다 보니 동아리 역시 수년째 과학 실험 관련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스펙을 쌓기에 적절한 동아리라는 인상 때문인지 항상 많은 학생들을 데리고 거의 매주 실험을 하며 학년 말에는 그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정리를 해대느라 진땀을 뺀다. 물론 즐겁게 동아리 활동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주중에 수업도 많고 다른 과학 업무와 산더미처럼 쌓인 수행평가 채점 과제들이 겹치는 상황에서 동아리 준비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모든 것을 던지고 도망가고 싶다는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학생에게 입시 면담을 하면서 “네가 이 대학에 가려면 내신 성적뿐만 아니라 스펙도 필요하니 자율활동으로는 이런 것을 하고 동아리는 과학 동아리를 들도록 해.”라고 강요한 몇몇 교사들. 부족한 역량을 가진 나에게 무거운 돌을 몇 개 더 얹힌 고마운(?)분들 이리라. 자기들이 입시 면담이라 명목으로 하는 말의 대부분은 사실 그 학생의 의사와는 무관한 교사 자신의 욕망 투사 행위에 지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당신들이 하는 것은 그저 가스라이팅에 지나지 않음을 말하고 싶지만 일하기 싫어 변명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 아무 말 못 한다. 나도 참 한심하다.

 그렇다고 그만두지도 못한다. 그러니 그냥 이 피로사회를 견딜 수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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