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남들이 다 좋다 하면 오히려 반감이 들어 읽지 않았다. 그러다 유시민의 알릴레오 북스 공개 방송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다룬 편을 보았는데 게스트로 나온 정지아 작가의 개그 코드 가 딱 내가 지향하는 바가 아닌가! 더 스포일러 당하기 전에 동영상 시청을 잠시 중지하고 얼 른 읽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읽었다.
키득거리며 읽다가 잠시 덮고, 소설 스토리를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다가 다시 끝까지 다 읽고는 한 참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읽은 후기를 두서없이 나열해 보자면.
1. 한 10년 전에 잠시 유행했던 메가쇼킹 작가의 '애욕전선 이상 없다'라는 만화가 있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온갖 섹드립이 난무하는 3류(?) 카툰이었는데 특정 상황에 대한 표현이 워낙에 참신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내용에 섹드립은 없지만(아, 딱 하나 있긴 하네ㅋ) 센스 있는 상황 표현은 메가쇼킹 작가의 멘트가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읽는 내내 지루 할 틈이 없었고.
2.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고 했고 나 역시 그러했다. 아버지들은 자식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자식들 역시 아버지에게 많은 기대를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가졌던 기대가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일반적으론 그때 각자가 그 현실과의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서로의 세계를 얼마나 인정할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것 같다. 아직 난 어렵다.
3. 해방일지'라는 표현은 낯설지 않다(참고로 제목엔 저작권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가 해방되는 과정이 표현된 소설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작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 소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모든 해방 행위의 출발은 피아(彼我) 간에 놓인 경계를 허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리라. 역시 어려운 과제이다. 난.
(아래에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잠시 중지했던 알릴레오 '아버지의 해방일지'편을 끝까지 시청했다. 아직 따끈따끈하게 내 단기기억에 머문 스토리들은 알릴레오 사회자인 유시민작가의 후기, 게스트 정지아 작가의 맛깔난 주석들이 함께 잘 버무려져 나의 뇌 속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첫 문장에서부터 전봇대에 부딪혀 돌아가신다는 황당한 설정은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아버지의 캐릭터와 아버지 인생 전체를 대변하기 위한 콘셉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건 진짜 다큐면 어쩌지? 싶었던 장면은 의외로 가공의 인물을 끌어와서 만든 픽션이라 했다. 다행이다. 그래. 결혼식 전날 식을 파도 낼 수 있는 사람은 소설에서만 존재한다.
(픽션이든 팩트이든) 너무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작은 아버지'에게 '노랑머리 소녀'와 함께 소주 한 병 사들고 찾아가 함께 잔 기울이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