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받고 억지로 좋아한 척한 일
세 시간 연달아 진행하는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 출입문으로 들어서며 깊은 호흡을 내쉬었다. 이젠 좀 쉬어야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머릿속으로 확인하는 찰나, 먼발치에서부터 내 자리에서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울린다. 네 발 달린 바퀴 의자에 털썩 앉으며 스마트폰을 들고는 카카오톡 앱을 실행하였다. 수신된 메시지를 보기 위해 곧바로 채팅창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엉겁결에 친구 목록을 터치하였다.
‘아. 오늘 J선생 생일이네.’
카카오톡 친구 배너에서 「생일인 친구」 목록에 J선생 카카오톡 아이디가 보였다. 아이디 오른편의 선물하기를 터치하자 다음 화면으로 넘어간다. “이런 선물 어때요?”라는 문구가 나온다. 스크롤을 내리는데 J선생에게 마땅히 어울릴 법한 선물이 딱히 보이질 않는다.
‘에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내 생일에 기프티콘을 줘 가지고 이리 귀찮게 하나.’
올해 3월, 내 생일에 그리 친하지도 않은 J선생이 선물을 주는 바람에 안 해도 될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까랑 다른 느낌의 심호흡이 천천히 새어 나왔다.
J선생은 그 옛날 노나라 임금과 바닷새의 이야기를 알까?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 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 『장자』, 「지락 편」 중에서
바닷새를 사랑한 노나라 임금은 자기가 최선이라 생각한 방법대로 바닷새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바닷새가 어디 노나라 임금더러 그렇게 해 달라고 요구한 적 이 있었던 가? 그저 자유롭게 살기만 바랬을 뿐. 노나라 임금이 보인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사랑의 방식은 결국 노나라 임금과 파랑새 모두를 불행에 빠뜨린 셈이다.
비록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J선생은 선의의 마음으로 나에게 기프티콘을 날렸는데 노나라 임금의 고사를 들먹이면서까지 그에게 무안을 주는 건 야박하다 할 수도 있겠다. 쩝.
과거에 소개팅을 많이 했던 시절의 나야말로 노나라 임금처럼 ‘나 좋자고 하는 사랑’에만 심취한 적이 많았다. 연예인급의 외모를 가진 여성분이라도 나오면 처음 만나자마자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이 여자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위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선물 공세와 좋아한다는 고백을 남발하였다. 그랬는데도 그녀들이 떠났을 때는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들을 이상하게 취급하며 욕도 많이 뱉었다. 내가 좋아하면 그녀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망상이 대체 어디서부터 온 건지. 참 못나기도 했다.
주변을 돌아보면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에티켓은 사람들이 잘들 지키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나만큼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우리 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은 올해도 학생들 입시 준비로 3월부터 수능 직전인 지금까지 동분서주하며 항상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올해도 수능 이후 학생들의 대입을 위해 면접 대비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10월 초, 3학년 부장 선생님은 나에게 찾아와서는 학생들의 대입 면접 지도를 부탁하는 말을 하였다.
“한 선생님. 올해 면접 지도위원으로 선정되셨습니다. 3학년 학생들 면접 준비 시기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활동 부탁드립니다.”
매년 의례적으로 하는 활동이었기에 나는 3학년 부장 선생님의 제안을 승낙하였다. 하지만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 하나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교사가 이렇게 하는 것을 학생들도 원하는가?’
입시 철이 다가와서 이름 있는 대학교에 이름 있는(?) 학생들이 입시 원서를 넣으면 입시지도 담당 교사들은 그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면밀히 살펴본 이후, 심층 면접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질문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의 면접 활동 시간에 그 학생에게 자신의 생활기록부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고, 학생이 답변하면 이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며 대학 면접시험을 위해 더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몇 년간 이 일을 반복하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그 학생들에게 “내가 이런 피드백 주는 것에 동의하나요?”라고 물어보지 않았다.
정작 학생 본인은 학교 선생님들의 관심보다는 사교육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또는 자기 스스로 힘으로 면접 준비를 하고 싶은 의지가 뚜렷했을 수 있지 않을까? 뜻밖에도 굳이 학교 선생님들이 직접 면접 대비 지도를 해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하기 싫다 하기 미안하거나 안 한다고 하면 어떤 불이익이 오진 않을까 두려워 마지못해 따라오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의 추측 중에서 적어도 「스스로 힘으로 면접 준비」하기란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면접 대비 질문들을 만들기 위해 상위권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생활기록부 내용 중에는 고교 수준을 초월하는 지식이 포함되어 학생 스스로 힘으로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 많다는 것이다.
사건(?)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학생은 생활 기록부 자율활동 내용에 뭔가를 채워 넣어야 했을 것이고 본인의 목표로 설정한 학과와 관련되는 분야 주제를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것이다. 약대로 진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약학대학 입학사정관들의 눈에 들 수 있는 약물과 화학 물질들을 검색했는데 모조리 어려운 말들이다. 하지만 일단은 그대로 한글 파일에 복사 붙이기 하고 마지막에만 살짝 자신의 느낌을 적어 보고서를 완성한다. 그 보고서를 받은 학생의 담임 선생님은 내용 그대로를 타이핑하여 생활기록부에 입력한다. 학생이 진짜로 이를 이해하고 조사했는지, 학생이 기재한 내용이 과학적으로 정확한 사실인지를 검증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사실 그럴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위의 그림에 나온 기록을 보면 화학 물질명에 대한 오타는 차치하고라도 화학 물질 특징을 설명하는 표현 방법부터 올바르지 못하다. 부족하나마 내가 알고 있는 유기화학 지식에 근거하여 형광펜으로 칠한 부분을 수정하여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페닐에틸아민 벤젠고리에 치환기로 히드록시기가 결합할 때, 메틸기가 결합할 때, 그리고 히드록시기와 메틸기가 동시에 결합할 때 페닐에틸아민 질소의 부분 전하량은 어떻게 변하는지”
유기화학을 접한 적 없는 사람이 이 부분을 읽는다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물며 고교 수준의 화학 지식만 갖고 있는 학생 중 몇이나 이 부분을 혼자 힘으로 이해할 수 있으랴. 평범한 고교 학생이 이 정도 난해한 문장에 대해 면접 질문까지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해마다 나 같은 사람이 어설프게나마 코칭을 해야 할 수밖에. 아이고 내 팔자야.
생활기록부를 기재하는 담임교사들이 화학 전공자가 아니면 이게 외계어인지 한국어인지 알 수 없을법한 말들을 이렇게 무턱대고 적어 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학생의 대학 입학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초・중・고 사교육비 지출은 역대 최대인 27조 1천억 원을 기록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 국민 시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규모의 대한민국 부모들의 사교육 투자는 전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쟁적 입시 문화에 기인한 것이다. 지금처럼 청년들이 안정된 일자리나 좋은 직업을 얻을 기회가 희박해질수록,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의대를 비롯한 유명 대학 상위권 학과에 입학해야만 미래가 보장된다는 믿음이 강해진다. 학력주의와 대학 서열화가 완화되지 않는 한 그 믿음은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러니 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겉보기 좋아 보이는 온갖 것들을 기재하려 하는 집착이 생기는 것이다.
조종례 시간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볼모로 현재를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교사, 자기 뜻에 잘 따르지 않는 학생에게는 심지어 “너 그러면 생활기록부에 나쁘게 기록될 줄 알아.”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교사. 모두 입시 지옥을 지키는 학교 감옥에 오래 머물다가 병이 들었는데, 아픔조차 느끼질 못하는 듯 보인다. 내가 너무 아프다.
학원은 내신 및 수능 대비를 위한 기술 습득 기관이다. 하지만 공교육 기관인 학교는 그 설립 취지가 사교육 기관인 학원과 다르다. 교육법 제2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교육 이념은 다음과 같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입시 경쟁은 사실상 사회적 지위 확보 경쟁이다. 그러므로 이는 공교육의 설립 취지와 원칙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인재를 양성해야 할 학교에서 이뤄지는 행위가 입시에만 종속되면 당장에는 몰라도 결국은 학교의 특성을 고려할 때, 모든 학생의 입시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 그리되면 입시 조련사 역할을 훨씬 더 잘하는 사교육 강사들의 인기는 치솟을 것이며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학교 정신은 사교육이라는 거대한 포식자에 의해 잠식당하고 마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내신과 생활기록부 및 수능 성적을 둘러싼 과도한 경쟁은 우물 안 개구리들 간의 죽고 살기 전쟁이다. 기형적 입시 경쟁 지옥에 빠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타인이 강요하는 욕망이 자신의 욕망이라 믿는 학생들. 그리고 그들과 같은 과정을 겪고 지금의 학부모와 선생이 된 사람들. 이들이 갇혀 있는 우물 안에서는 그 누가 ‘널 위한 선물이야’라고 준비한들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알지 못하기에 선물을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우물 안 개구리들이 자기들끼리의 전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느라 우물 밖의 천재지변을 신경 쓰지 않거나 우물 안에 독이 들어오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면 모두가 죽는다. 하지만 학교 사회 구성원들이 죽을지 살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우울증만 깊어 가는 것은 비단 학생, 부모, 교사들만 그리고 입시 기관 만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대학의 서열화 그 상위에는 노동시장의 불안, 그리고 제한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적 보상과 차별이 존재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성적 차별이 사회적 보상 격차로 연결되는 고리를 느슨하게 하는 길밖에 없다. 결국은 정치인데,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 수준과 정국 상황을 고려해 보면...
아이고. 앞이 깜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