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함의 선명함

by 성심

오전 12:45

많은 사람들이 잠들 시간.

시계는 지금부터 새로운 하루를 바삐 시작한다.

그는 가느다란 세 발로

조심조심 한 칸 한 칸 걸음을 옮긴다.

그의 발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가만히 누워 다시 잠을 청하지만

이미 깬 잠에 발소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째깍. 째깍.

타닥. 타다닥. 타다닥.

지팡이에 나를 의지하고

그의 발걸음 소리를 좇아 한 걸음씩 내딛는다.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

헤매듯 도착한 곳엔

누군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같았다.

기척이 느껴져 조심스레 만져 보았다.

분명히 사람인 듯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를 걸치고 있는 듯

손을 대는 곳마다 체온이 느껴졌다.


‘이 사람은 누굴까?‘

‘사람은 맞는 걸까?’


상상의 나래가 별을 품을 듯 커짐에

초점 잃은 내 두 눈엔 안개 같은 두려움이

점점 짙어졌다.

두려움이 가시기도 전에

사람 같은 무언가가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그 말 한마디에 두려움은 걷히고

순식간에 내 두 눈엔

무한한 광채가 쏟아지고 사라졌다.


빛을 내는 내 두 눈에 보이는 것은

침묵 속에서

묵묵히 발소리를 내는 시계뿐이었다.


‘주여. 주님 덕에 이제야 세상이 선명하온데,

어찌하여 보이지 않을 때보다 더욱 흐릿하십니까.‘


어쩌면 하느님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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