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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Aug 13. 2021

엄지공주

우리 집은 어디 있지?

 엄지공주는 연잎사이로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눈을 떴어요. 온몸이 찌뿌듯했어요.

그럴 만한 것이 2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났거든요. 엄지공주는 못된 마녀의 마법에 걸려 오랫동안 잠을 자야만 했어요.

 “집으로 돌아가야지.”

 엄지공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었어요. 세상여행은 재미있었지만 결국 나쁜 마녀를 만나 긴 잠을 자고 말았어요.

 “빨리 돌아가서 내가 겪었던 여행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엄지공주는 연 꽃잎을 한 장씩 걷어냈어요. 뜨거운 햇살이 차례차례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엄지공주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어요. 

 연 꽃 밖은 2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어요. 강 주변에 있던 산과 들은 온데간데없고 커다란 회색빛의 건물만 가득했어요. 

 “윽, 이게 무슨 냄새야!”

강물에선 이상한 냄새도 났어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엄지공주는 연꽃잎을 최대한 넓혔어요. 그때였어요. 강물 속에서 커다란 물고기가 순식간에 떠올라 입을 크게 벌렸어요!

 “악!”

 엄지공주가 비명을 질렀어요. 그러가 그 물고기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어요.

 “뭐야? 먹이가 아니잖아.”

 그 물고기는 쩝쩝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어요.

 “처음 보는 물고기네.”

 엄지공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고기를 바라보았어요. 물고기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어요.

 “난 베스야. 여기 산지 20년이 되가는데 그런 소리를 하다니…….”

 “그렇구나. 미안, 혹시 연꽃 마을로 가는 길을 아니? 오랜만에 잠에서 깨었더니 세상이 많이 변했어.”

 베스는 타원형의 몸을 좌우로 흔들었어요.

 “그런 곳이 있었나?”

 “그럼 혹시 메기나 두꺼비 같은 친구는 없니? 자라도 괜찮아. 그 친구들은 연꽃마을에 대해 알거야. 아니, 두꺼비는 빼고. 두꺼비한테 안 좋은 추억이 있거든.”

 “그 친구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야. 강이 더러워서 더 이상 살수가 없다고 했거든.”

 엄지공주의 표정이 어두워졌어요.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여행을 올 수 있었거든요.

 “그럼 난 간다.”

 베스가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강 밑으로 헤엄쳤어요. 엄지공주는 다급하게 소리쳤어요.

 “연꽃을 저을 나뭇가지라도 구해다줄래?”

 잠시 뒤 연꽃 옆으로 길고 가는 무언가를 입에 문 베스가 떠올랐어요.

 “빨대야, 이거라면 연꽃을 저을 수 있을 거야.”

 “고마워.”

 “뭘, 그런 거라면 강바닥에 널렸으니까.”

 베스는 다시 강 밑으로 헤엄쳐 갔어요. 

 엄지공주는 집으로 돌아갈 궁리를 했어요. 그러다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여행 왔던 기억이 났어요.

 엄지공주는 부지런히 빨대 노를 저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어요. 팔이 아팠어요. 예쁘고 고운 옷에는 강물이 튀었지요. 

 ‘날아가는 제비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이따금 낯선 물고기들과 새들을 만났지만 다들 제갈 길만 갈뿐 전혀 도와주지 않았어요.

 한번은 엄지공주가 지나가는 새에게 하소연을 했어요.

 “왜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죠?”

 그러자 그 새는 엄지공주 머리 위를 한 바퀴 돌았어요.

 “이봐, 내가 너를 도와준들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겠어. 어설프게 도와주려다 너를 잡아먹는다는 오해만 받을걸.”

 엄지공주는 깊은 한숨을 쉬었어요. 

 “세상만 변하게 아니야. 마음들도 변했구나.”

 그때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어요.

 “도와주세요. 흑흑.”

 마른 풀잎사이로 작은 새 한 마리가 보였어요. 엄지공주는 그 새에게 다가갔어요. 그런데  새 몸에는 무언가가 칭칭 감겨 있었어요. 

 “어머! 어쩌다 이렇게 되었니?”

 작은 새는 불쌍한 눈으로 말했어요.

 “먹이를 구하다 처음 보는 물건을 만졌어요. 그런데 순식간에 제 몸을 칭칭 감았어요.”

 “이런 게 왜 강가에 있지?”

 엄지공주는 새의 몸을 감고 있는 마스크를 천천히 풀어 주었어요. 마스크가 풀리자 새는 날개를 파닥이며 좋아했어요.

 “처음 보는 새 구나? 어쩌다 이곳까지 왔니?”

 “이곳은 처음이에요. 따뜻한 곳을 찾아 날아왔거든요. 다른 새들이 그러는데 날씨가 많이 변해서 새로운 곳으로 갈 때가 많데요. 그래서 가족도 옛 집도 잃어 버렸어요.”

 슬퍼하는 새를 엄지공주가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어요.

 “나도 그래, 그래서 지금 집을 찾아가는 중이야. 너도 힘을 내렴.”

 작은 새는 힘차게 날개를 파닥였어요.

 “저를 도와주셨으니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작은 새는 엄지공주가 탄 연꽃을 강 위까지 끌어 주었어요. 그 덕에 엄지공주는 시끌벅적한 회색 도시를 벗어날 수 있었지요. 그곳에서 엄지공주와 작은 새는 헤어 졌어요. 

 얼마 안 가 낯익은 풍경이 보였어요. 커다랗게 솟은 세 개의 산봉우리, 바로 삼봉 자락이었어요. 그곳은 20년 전 모습과 비슷해 보였어요. 엄지공주의 얼굴엔 미소가 피었어요.

 “여긴 연꽃 마을로 가는 입구야!”

 엄지공주는 있는 힘을 다해 빨대를 저었어요. 저 멀리서 연꽃마을의 모습이 보였어요.

 “조금만 가면 돼.”

 그런데, 연꽃마을로 다가 갈수록 새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곳은 온통 플라스틱으로 덮여 있었어요. 집도 길도 나무도, 모든 것들이 플라스틱 이었지요. 커다란 공장에선 계속해서 플라스틱을 만들어 내고 있었어요. 굴뚝에선 검은 연기도 피어올랐어요. 

 연꽃마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연꽃이 가득한 넓은 연못, 연못을 둘러싼 푸른 언덕과 파란 하늘,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던 친구들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갔어요.

 “콜록 콜록.”

 엄지공주는 기침이 나왔어요. 매연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엄지공주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우리 집, 우리 집은 어디 있지?”

 한참을 운 엄지공주는 다시 힘을 내기로 했어요. 다리에 힘을 주어 연꽃에서 폴짝 뛰어 내렸어요. 플라스틱으로 된 바닥은 차갑고 딱딱했어요. 엄지공주는 힘차게 걸음을 옮겼어요.

 “우리 집을 찾고 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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