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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Dec 12. 2021

매일의 동화 1

반가워 엄마!

엄마가 사고난지 6개월이 지났다. 병원에만 있던 엄마는 긴 치료를 끝내고 내일 집으로 돌아온다.

 아빠는 엄마가 돌아오기 일주일 전부터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행여나 엄마가 다칠까 집안에 날카로운 모서리 부분은 죄다 보호대를 붙여놓았다. 내가 어릴 때 보았던 것들이다. 그것도 모자라 아빠는 바닥에 두꺼운 매트를 곳곳에 깔아 놓았다. 엄마가 좋아했던 밝은 나무색의 장판은 알록달록 매트들로 가득 찼다. 

 “엄마는 이런 색 안 좋아해!”

 아빠가 막 안방 바닥을 매트로 깔려고 할 때 내가 말했다. 엄마는 정말 알록달록한 색깔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채색이나 하얀색을 좋아했었다.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트를 마저 깔았다.

 “엄마한테 밝은 색이 좋데.”

 커다란 침대가 있던 자리까지 매트로 꽉 채워졌다. 눈이 어지러웠다.

 “후, 또 뭘 해야 하지? 6개월 만에 집에 오는 건데 꽃이라도 준비해 놓을까?”

 꽃? 할 말은 많았지만 꾹 참았다. 대신 내 입이 쀼루퉁하게 나와 버렸다.

 “여진이 너, 정말 이러기야? 도와주지 않을 거면 화나 내지 마.”

 아빠도 기분이 상했나 보다.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러게 아직 낫지도 않은 엄마를 왜 데려온다고 해!”

 겨우 겨우 참고 있었던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나도 놀라고 아빠도 놀랐다. 아빠의 눈이 떨렸다. 얼굴이 붉어지고 입이 씰룩거렸다.

 “집에 오면 금방 좋아질 거야.” 

 그, 좋아진다는 소리! 이젠 믿지 못하겠다.

 6개월 전만 해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그런데 그날,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잊히지도 않는 그날, 엄마는 슈퍼에 저녁거리를 사러 갔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빠르게 달려오던 승합차에 부딪혀 도로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머리에서 피가 아주 많이 흘렀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거기에 나는 없었다. 나는 막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니 30번에 있는 소나티네를 연습하고 있었다.


 엄마를 보게 된 건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엄마를 보러 가기 전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았다. 

 “여진아, 엄마 보고 놀라지 마. 앞으로 더 좋아질 거니까.”

 아빠가 하는 소리를 허투루 들었다.

 “우리 엄만데 뭘 놀래?”

 하지만 나는 엄청 놀라고 말았다. 내가 아는 엄마는 병원에 없었다.

 엄마의 숱 많고 풍성한 머리카락은 바짝 깎여진 채 찌그러진 머리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목에는 이상한 구멍이 뚫려있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엄마 몸에는 여러 가지 줄이 꽂혀 있었는데 목에 뚫린 구멍에 있는 산소 줄, 팔에 꽂혀 있는 기다란 링거줄, 심장에 연결된 빨간색과 파란색의 줄, 음식을 위까지 전달해 준다는 콧줄이었다. 그 줄들은 마치 거대한 메두사의 머리처럼 여기저기 뻗쳐있었다.

 나는 메두사를 보고 돌이 된 사람처럼 굳어 버렸다. 내 마음도 같이.

 “여진이 왔다.”

 외할머니가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눈동자만 허공을 향해 깜박거릴 뿐이었다. 

 “놀랐지?”

 아빠는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빠, 엄마 아직도 많이 아픈 거야?”

 “응, 아직 치료를 더 받아야 해. 앞으로 더 좋아질 거야.”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빠 말을 믿었다. 엄마가 금방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보는 사람마다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는 좀 어떠시니? 많이 좋아지셨니?”

 “…….”

 “하필 뇌를 다쳐서, 어린 네가 고생이구나.”

 그만 좀 물어봤으면 좋겠는데 항상 나를 보면 인사처럼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눈으로 이런 말을 했다.

 “안됐네.”

 지나가는 아줌마들만 봐도 울컥했다. 우리 엄마도 저렇게 건강했는데 왜 우리 엄마만 병원에 누워 있는 거지?

 외할머니가 있었지만 집은 항상 텅 빈 것 같았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아 놀이터 그네에 하염없이 앉아 있기도 했다.


 엄마는 몸에 연결된 줄을 다 떼어 냈을 때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뇌에 반응이 있어 재활치료도 하게 되었다.

 “이제 재활치료 들어가면 금방 움직이고 좋아질 거야.”

 아빠가 기쁘게 말했다. 

 “여진아 엄마가 손으로 침대 프레임을 잡았단다. 일어나고 싶었나 봐.”

 “오늘은 휠체어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봤다고 하는구나.”

 “재활치료사가 그러는데 엄마 회복이 빠른 편 이래.”

 아빠는 매일 엄마의 변화를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개미만큼 좋아지던 게 6개월이 흘렀다. 봄에 사고가 났는데 어느덧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것 봐, 엄마 좋아진다고 했지?”

 아빠는 엄마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나를 보는 눈만 봐도 알 수 있다. 엄마는 나를 다른 사람 보듯 했다. 나를 부르던 다정한 목소리는 들을 수도 없었다. 항상 길을 걸어갈 때 잡아주었던 손도 비쩍 말라있었다. 대신 엄마의 손에는 하얀 손수건이 들려있었다. 간병인 아줌마가 음식을 흘렸을 때 닦아주는 손수건이었는데 갓난아기들이 나 쓰는 것이었다. 

 “여진 엄마, 여진이 알아보지?”

 엄마는 두 눈을 깜박거렸다.

 “응, 여진이 알아본다고. 그래, 잘했어.”

 아빠는 바보다. 엄마는 하나도 나를 알아보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자꾸 알아본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낯선 환자일 뿐이었다.

 나는 엄마와 눈이 마주칠까 봐 재빨리 병실을 나와 버렸다.

 아빠가 뒤쫓아 나왔다.

 “인사라도 하고 오지. 엄마 서운하게.”

 “…….”

 “어때? 엄마 많이 좋아진 것 같지? 집으로 오면 더 좋아질 거야.”

 엄마가 돌아온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온다. 

솔직히 난,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누군가 나쁜 애라고 나를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아빠는 밤늦도록 엄마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집 현관에 커다란 휠체어가 자리를 잡았다. 엄마가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동네 사람 누구든 힐끗거리며 수군댈게 뻔했다. 내 친구들도 수군대겠지.

 “여진이 엄마래.”

 “아휴, 불쌍해서 어째.”

 늦은 밤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던 외할머니가 말했다.

 “병원에 더 있을 걸 그랬나?”

 “집에 오면 더 좋아질 거예요. 재활치료받으러 매일 병원 갈 거니까 걱정 마세요. 여진이도 엄마가 필요하고.”

 “에휴, 그것이 엄마 노릇이나 할는지…….”

 할머니 말이 맞다. 나는 엄마가 필요하지 않다. 더군다나 이상하게 변해버린 엄마는 더욱 필요하지 않다. 나는 과거의 내 엄마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말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엄마를 싫어하게 된 내 마지막 마음을 들키면 나중에 지옥에 떨어질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가 내일이면 오는데, 막을 수도 없고 환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가 사고 났을 때보다 더 암울했다.

 드디어 오늘이면 엄마가 온다. 오지 말아야 할 날이 온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항상 집에 들렀다 피아노 학원에 갔지만 오늘은 학교 도서관으로 갔다. 

 평소에는 쳐다보지 않았던 두꺼운 책을 꺼내 한참을 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어떤 말을 할지 뻔히 알아서 받기가 두려웠다. 

 얼마나 흘렀을까? 도서관 선생님이 문을 닫을 시간이라고 했다. 결국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떠다녔다. 바람도 시원하니 아주 좋은 날씨였다.

 이런 날 엄마는 꼭 아빠와 나를 끌고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나갈 땐 귀찮았는데 막상 공원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돗자리 위에 누워 엄마가 아침부터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면서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는 건 최고의 행복이었다. 

 “사람은 적당히 바람도 쐬고 햇빛도 받아야 해.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지.”

 엄마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여진아!”

 애써 있고 있었던 목소리였다. 항상 밝고 부드러운 목소리. 갑자기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엄마의 그런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엄마가 예전처럼 돌아올 수 있을까? 깜깜한 어둠이 앞을 가로막는 것 같았다. 

 어둠, 나는 원래 어둠이 싫었다. 그래서 작년까지 엄마와 같이 잠을 잤다.

 “엄마, 무서우니까 나 잘 때까지 잠들면 안 돼.”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 이마를 쓰다듬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휴, 다 큰애가 엄마랑 자면 어떻게 하니? 친구들이 놀린다.”

 “치, 놀려도 돼.”

 엄마의 온기에 스르르 눈이 감길 때쯤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진아 잘 자. 엄마는 항상 널 사랑해.”

 만약 내가 다쳐서 엄마처럼 변했으면 어땠을까? 엄마는 분명…….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쳐도 한번 터져 나온 울음은 쉽게 그치질 못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파트 단지 뒷길로 숨어버렸다. 

 한참을 울고 나니 흐릿하게 길이 보였다.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엄마는 이 길에서 나를 기다리다 놀래어 주곤 했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보고 싶은 엄마가, 엄마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엄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내가 기억하며 된다.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알아보면 된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니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빠가 현관에서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여진아, 엄마 왔어!”

 엄마는 할머니 손을 잡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집에서 자주 입던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머리엔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여진이 왔다. 네 딸 왔어.”

 외할머니가 엄마를 살짝 흔들었다.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았지만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았다. 이모네 아기가 눈을 뜨고 나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났다. 엄마의 눈이 아기의 눈처럼 천진난만해 보였다. 그 눈 속에 내가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손 줘봐.”

 엄마의 오른손을 잡아 악수를 했다.

 “만나서 반가워. 나 여진이야. 우리 잘 지내자.”

 내가 손을 잡고 흔들자 엄마가 살짝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엄마는 다시 태어나 집으로 왔다. 엄마! 만나서 반가워. 우리 잘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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