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십일센티 Dec 12. 2021

매일의 동화 2

진서대 서진

 진서 대 서진. 진서를 잡아라!

 ‘올 바른 학교’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장난꾸러기 진서에 대한 소문이었다.

 이름: 진서(예명,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모름.)

 나이: 한 4학년쯤?

 연령: 아마도 남자아이

 특징: 아무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간혹 봤다는 친구들도 있지만 정확지 않다.

 특기: 특별한 장난을 잘 친다. 

 진서의 장난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은 그 장난을 상당히 좋아했다.

 한 번은 도서관의 책이 전부 거꾸로 꽂힌 적이 있었다. 무려 수백 권이나 되는 책이 제목도 보이지 않고 거꾸로 되어 있었다. 도서관 창문에는 커다랗게 'JS'라고 적혀있었다. 진서가 장난을 치고 난 뒤 남기는 흔적들이었다.

 선생님들은 물론 도서관 사서까지 혀를 내둘렀다. 덕분에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적어도 5권 이상의 책을 돌려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누구도 책을 돌려놓으며 화를 내지 않았다. 가끔 웃음을 참는 아이들도 있었다.

 또 한 번은 학교에 있는 모든 글자에 받침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학교 입구에는 최근에 걸린 현수막이 있었는데 전국 영어경시대회에서 1등 한 6학년 학생을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추! 저구 영어겨시대회 1드! 6하녀 4바 장미서’ 

 게시판에 선생님들을 소개한 글자에도 받침이 온통 빠져 있었다.

 ‘아이드으 지시으로 사라하느 서새니’

 이번에도 아이들은 각 학년, 각 반별로 받침 없는 글자 10개씩 찾아 고쳐야만 했다. 두꺼운 매직으로 받침을 채우면서 화를 내거나 지루해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이상한 문장을 고칠 때는 낄낄 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정말로 큰 장난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교장실에서 일어났다.

 교장실에는 아주 크고 정말 빠르고 뭐든지 바로 검색이 가능한 최신 컴퓨터가 있었다. 학교에서 아니 전 학교를 통틀어 가장 좋은 컴퓨터였다. 

 교장선생님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아무렇지 않게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컴퓨터가 켜지자마자 배경화면에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컴퓨터는 크기만 하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바보 컴퓨터. JS’

 글자와 함께 바람에 날려 이상하게 보이는 교장선생님의 사진이 있었다. 

 이건 참 올바르지 못한 장난이었다. 

 그날, 반에서 장난 좀 치는 개구쟁이들은 모두 교장실로 한번씩 불려 갔다. 하지만 결국 진서를 잡아내지 못했다.

 교무실에선 대대적인 긴급회의가 열렸다. 아마도 ‘올 바른 학교’가 생겨난 후로 가장 심각하게 회의가 열렸을 것이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 학교 학생들 중에 한명일 거예요. 일일이 아이들 모두를 심문조사를 하죠.”

 “학교 곳곳에 CCTV를 더 설치한 다음에…….”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자체적으로 해결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밖으로 소문이 돌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학교의 이미지에도 맞지 않았다.

 결국 교장선생님은 학교 게시판에 커다란 공고문을 붙이게 했다.

 ‘최근 학교에 큰 물의를 일으키는 진서(JS)의 정체를 알아오는 학생에게 큰 상을 내리겠음.

부상으로 50만 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이 제공됨.’

 학교의 아이들 모두가 그 공고를 보게 되었다. 몇몇 아이들은 피식 웃으며 그 공고를 지나쳤고 몇몇 아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진서의 정체에 대해 속닥였다. 문화상품권 50만 원이면 어마어마한 상품이었다. 서점이며 문구점, 또는 인터넷 쇼핑에서도 그리고 게임에서도 쓸 수 있는 문화상품권은 현금 50만 원보다 아이들에게 더 값어치가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의 아이들은 한 번쯤은 꿈꿔 봤을 탐정이 되어 보기로 했다. 

 그중에 서진이가 있었다.

 김서진, 학교에서 손에 꼽히는 모범생이다. 학급장도 여러 번 해보았고 걸음마를 때면서 한글도 같이 떼었다는 소문이 도는 영재였다. 공부는 물론 운동, 음악 못하는 게 없는 아이였다. 대부분의 선생님과 친구들은 서진이 에게 호의적이거나 친절했고 서진이 역시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을 했다. 가끔 그런 완벽한 서진이를 질투하는 친구가 있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서진이는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특히 탐정이 나오는 추리 책을 좋아했다.

 진서를 찾는 공고가 붙었을 때 서진이는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었다. 서진이는 탐정이 되기로 했다. 진서를 잡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굳게 믿었다.

 “훗, 이제야 내 실력을 보여줄 때가 왔군.”

 그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김서진이 진서를 잡겠데!”

 아이들 모두 김서진과 진서의 대결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서진이 파와 진서파로 나뉘었다. 

 참, 진서는 지독한 장난꾸러기고 아무도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진서의 장난은 아주 유쾌하고 아이들이 상상으로만 했던 일들을 실현시켜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고문이 붙었을 때 진서를 잡지 말자는 의견도 암암리에 오갔다. 

 서진이는 사건 현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탐정 수첩엔 예쁜 가면을 쓴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제일 먼저 큰 사건이 일어났던 곳 중 하나인 도서관에 갔다. 사서 선생님을 만나 탐문조사도 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까?”

서진이는 제법 탐 정답게 질문을 했다.

 “평소와 다를 게 뭐가 있겠어. 그냥 똑같았지.”

 사서 선생님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했다.

 “수상한 아이나 특별한 아이들은 없었습니까?”

 “글쎄, 늘 보던 아이들이었어. 서진이 너도 그날 왔었지?”

 “네, 책을 반납하는 날이었거든요.”

 서진이도 그날을 떠올렸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심심한 날이었다. 서진이는 사서 선생님과 대화를 마치고 도서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 후였지만 책꽂이를 꼼꼼히 살폈다. 막 마지막 책이 꽂혀 있는 곳까지 갔을 때 서진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거야!”

 서진이는 오른손으로 총 모양으로 만들어 허공을 향해 쏘았다. 서진이가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서진이는 새롭게 발견한 사실을 수첩에 적었다.

 ‘진서의 키는 140을 넘지 않는다. 모든 책이 거꾸로 꽂혀 있던 흔적이 있지만 맨 위 칸의 책은 거꾸로 꽂혀있지 않았다. 그건 맨 위 칸에 손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진이가 새롭게 안 사실은 순식간에 온 학교에 퍼졌다. 아이들은 140이 안 되는 진서를 상상했다. 그리고 140 이상이 되는 아이들은 안심을 했다.

 사실 아이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의심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진서를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진서로 오해받는 것은 싫었다.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도 140 이하의 아이들을 예의주시 했다.

 서진이는 두 번째 큰 사건이 일어났던 정문으로 갔다. 시간이 지나 현수막은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었다.

 서진이는 현수막 글자들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읽어보고 거꾸로도 읽어보고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관리실 아저씨를 만났다.

 “이 현수막을 달던 날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습니까?”

 아저씨는 굵은 목소리로 무뚝뚝하게 대답을 했다.

 “다른 점이 뭐 있을 것도 없지. 잠깐만 기다려라.”

 그러더니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이거 그때 찍은 사진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찍어놓았지.”

 서진이는 아저씨가 내민 핸드폰 사진을 살펴보았다. 사건이 있던 날 현수막을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서진이는 그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갑자기 서진이의 눈이 반짝이더니 허공에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그래, 이거야!”

 서진이는 새롭게 발견한 사실을 수첩에 적었다.

 ‘진서는 여자다. 모든 받침을 없앴지만 여자라는 글자의 받침만 남겨두었다.’

 새로운 사실은 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진서가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여자아이들은 부정했지만 은근히 기분이 좋았고 남자아이들은 안심했지만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은 140이 안 되는 여자아이들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서진이는 그 외에 틈만 나면 여러 단서들을 찾았다.

 ‘진서의 키는 140이 넘지 않는다.’

 ‘진서는 여자 아이다.’

 ‘진서는 미소 아파트에 산다.’

  미소 아파트에 진서의 장난으로 보이는 흔적들이 있었다. 경비실에 쌓여있는 택배에 반송 스티커를 죄다 붙여놓는 사건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미소 아파트에 사는 140이 넘지 않는 여자아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아이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불안해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소문을 들은 교장선생님은 서진이의 추리를 칭찬했다.

 “나중에 훌륭한 인재가 될 아이예요. 모두 서진이 학생에게 적극 협조하도록 해요.”

 그리고 하루빨리 진서가 잡히기만을 바랐다.

 진서를 찾는 공고문에 커다랗고 두꺼운 글씨의 빨간 메시지가 생겼다.

 ‘김서진, 네가 나를 잡겠다고? 훗, 해볼 테면 해보시지! 너의 그 조사들은 모두 엉터리야!’

 아이들과 선생님은 그 메시지의 의미를 생각했다. 아이들의 편이 갈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아이들과 서진이가 조사한 사실을 믿는 아이들로 말이다.

 모두가 우왕좌왕했지만 서진이만은 침착했다. 

 “그렇다고 내가 눈 하나 깜박할 줄 알아? 너를 꼭 잡아내고 말겠어.”

 서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큰 사건을 일으켰던 교장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흔쾌히 서진이를 맞이했다. 교장실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고 더군다나 환영을 받은 건 아마 서진이가 처음일 것이다.

 서진이는 교장선생님의 최신 컴퓨터를 켜보았다. 커다란 화면엔 이런 문구가 떴다.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서진이는 교장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교장선생님, 비밀번호는 어떤 것을 사용하셨나요? 영문과 숫자가 섞여있는 조화였나요?”

 교장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누가 감히 내 컴퓨터를 켜리라고 생각했겠어? 학교 이름이 들어간 아주 쉬운 것이었단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아주 어려운 비밀번호를 걸어놓았지.”

 “그럼 잠금 화면 좀 풀어주시겠어요. 확인할 게 있어서요.”

 교장선생님 아주 긴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영문과 숫자 특수문자가 섞인 무려 14자가 되는 비밀번호였다.

 비밀번호가 풀리자 커다란 화면엔 교장선생님의 사진이 떡하니 배경화면으로 되어 있었다.

 자신의 교장실에서 찍은 위풍당당한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언제부터 배경화면이었나요?”

 “이 컴퓨터를 처음 산 날부터. 중간에 그 진서라는 녀석이 장난을 쳤을 때 빼고는 쭉 이 화면이었지.”

 “음, 그렇군요.”

 서진이는 자신의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서진 학생에게는 언제든지 협조하지. 꼭 진서를 잡길 바라마.”

 교장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진이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그동안 적어놓았던 수첩을 쭉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음, 이제 알 것 같아.”


 그다음 날 다시 사건이 터져버렸다.

 교장선생님의 컴퓨터 배경화면이 하루 사이에 또 바뀌어 버린 것이다. 교장선생님의 위풍당당한 사진은 온데간데없고 공고문을 찍은 사진과 함께 이런 글자가 쓰여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정말 아무것도 몰라! JS’

 교장실은 다시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또 대대적인 교직원 회의가 열렸다. 교장선생님은 선생님들을 나무랐다.

 “어떻게 또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아주 실망입니다. 실망! 이번 주 안으로 진서를 잡지 못하게 되면 다들 각오하세요.”

  교장선생님은 ‘실망’이라는 말을 강조하였다. 선생님들은 다시 저마다의 의견을 내어 놓았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 학교 학생들 중에 한명일 거예요. 일일이 아이들 모두를 심문조사를 하죠.”

 “학교 곳곳에 CCTV를 더 설치한 다음에…….”

 그때 교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스르륵 문이 열리면서 서진이가 나타났다. 서진이는 바르게 인사를 한 후 입을 열었다.

 “교장선생님, 전 진서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선생님들 모두 서진이를 바라봤다. 교장선생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 나는 김서진 학생이 해낼 줄 알았어요. 그래, 그게 누구지?”

 “그건 지금 말씀드릴 수 없어요. 대신 내일 강당에 전교생이 모이게 해 주세요. 그때 발표할게요. 그래야 진서를 잡을 수 있거든요.”

 교장선생님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건 어렵지 않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 1교시부터 ‘올 바른 학교’ 커다란 강당에 전교생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아이들은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야, 들었어? 김서진이 진서가 누군지 알아냈데.”

 “뭐? 진짜?”

 “에이, 설마.”

 “진짜야, 그래서 이렇게 다 모이게 했다는데. 이곳에서 범인을 밝히기로 했데.”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들려왔다.

 “자, 다들 조용!”

 교감선생님이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하지만 소리가 조금 작아졌을 뿐 여전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교장선생님이 마이크를 직접 잡았다.

 “최근 학교에 물의를 일으킨 진서의 정체를 드디어 밝히게 되었습니다. 김서진 학생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강당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들 서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진이는 조용히 앞으로 나가 교장선생님의 옆에 섰다. 강당의 모든 아이들이 숨죽이며 서진이를 바라보았다. 교장선생님은 마이크를 최대한 끌어당겨 조용히 물었다.

 “김서진 학생, 확실히 범인, 아니 진서의 정체를 밝혀낸 게 맞나요?”

 “네, 진서의 정체를 알아냈어요.”

 서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아이들 모두 눈을 반짝이며 서진이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진서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다. 

 “그래, 누군지 알려주렴. 약속대로 50만 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준비했다.”

 교장선생님은 문화상품권이 든 봉투를 들어 보였다. 봉투는 제법 두툼했다. 서진이는 봉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마이크에 대고 말을 했다.

 “교장선생님, 제가 진서를 밝히면 진서를 어떻게 하실 건가요?”

 교장선생님은 당황했다. 진서의 정체를 밝히려고만 했지 어떻게 해야 할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그건 회의를 통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거다.”

 “설마 경찰에 신고하거나 퇴학시키지는 않을 거지요?”

 서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들 모두 교장선생님을 쳐다보았다. 교장선생님은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대답했다.

 “뭐 그 정도 까지는…….” 

 “확실하게 대답해 주셔야 진서가 누군지 밝힐 거예요.”

 “약속 하마. 절대로 경찰에 신고하거나 퇴학을 시키지 않는다고.”

 그제야 서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꺼내었다.

 “이제 진서가 누군지 알려드리겠습니다. 키가 140이 안되고 여자아이이며 미소 아파트에 살고 교장선생님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그 진서는 바로.”

 모두들 침을 꿀꺽 삼키며 서진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누구지?”

 교장선생님이 재촉했다.

 “그건 바로, 저 김서진입니다!”

 강당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가 얼음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때 정적을 깨고 한 남자아이가 말했다.

 “에이, 설마. 김서진! 장난치지 마!”

 하지만 서진이는 눈을 똑바로 뜨고 또박또박 말을 했다.

 “내가 맞아. 나야말로 키가 140이 안되고 여자아이이며 미소 아파트에 살고 교장실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유일하게 알고 있거든.”

 모두가 허탈해했고 믿을 수 없어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넋이 나간 건 교장선생님이었다.

 “진서가 정말 김서진 너였니?”

 "네, 바로 저예요. 그 유명한 장난꾸러기가 바로 저였다고요.”

 “이건 말도 안 돼!”

 교장선생님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고개를 절래 저었다. 하지만 서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교장선생님, 약속대로 제가 진서를 잡았으니 문화상품권을 주세요!”

 교장선생님은 손에 든 문화상품권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이건 줄 수 없겠구나.”

 “왜죠? 약속대로 진서를 밝혀냈잖아요?”

 서진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네가 진서가 아닐 때를 말하는 거였다.”

 교장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공고문에 전혀 그런 말은 적혀있지 않았어요. 누구든 잡으면 이라는 말이 있었지요.”

 선생님들의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서진이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 틈을 타 아이들이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서진이의 말에 일리가 있어. 그러니까 문화상품권을 주는 게 맞아.”

 “김서진이 진서, 그러니까 범인이니까 주면 안 되지.”

 수군거림은 곧 술렁임으로 바뀌었다. 서로의 말이 맞다며 노려보기도 했다.

 “그만, 모두 조용히 하세요.”

 교장선생님이 큰 목소리를 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교장선생님은 다시 서진이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화가 가득했다.

 “김서진, 교장선생님은 너에게 이 상품권을 주고 싶지가 않구나.”

 “아니요, 주셔야만 해요.”

 서진이는 교장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강당의 모든 시선이 서진이와 교장선생님에게 쏠렸다.

 과연 서진이가 문화상품권을 받았을까? 안 받았을까? 

작가의 이전글 매일의 동화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