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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Dec 14. 2021

매일의 동화3

골드 프리패스 카드

골드 프리패스 카드

 그건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어요. 아빠는 늦고 엄마는 바쁘고 숙제도 다하고 할 게 없었어요. 텔레비전을 켜고 싶었지만 그랬다면 엄마는 분명 텔레비전을 끄게 하고 책을 읽게 했을 거예요. 장담해요. 엄마는 내가 책 읽는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책 읽는 척 하는걸 좋아해요.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엄마는 마음이 편안해 진데요. 그래서 한없이 너그러워져요.

 그래서 그날도 책을 펴놓고 몰래 폰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요즘 유행하는 ‘히어로 스쿨’이라는 게임인데 전투 게임이에요. 캐릭터를 모으고 무기도 모으고 그렇게 모은 걸로 싸움에 참여할 수 있어요. 팀전도 하고 개인전도 하는데 승리할 때마다 점수나 보석들을 모아서 내 캐릭터를 꾸밀 수 있어요. 내 아이디는 ‘동희히어로’ 에요.

 ‘동희히어로’는 ‘아론스타’와 싸우고 있었지요. ‘아론스타’는 실제론 나보단 약한데 게임 상에선 엄청나게 힘이세요. 캐릭터도 무기도 엄청 좋은 것만 있거든요. 

 ‘동희히어로’는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또 지고 말았어요.

「아론파이어- 널 절대로 나 못 이겨. 큭큭큭」

 잘난 척을 하는 아론파이어 때문에 화가 났어요. 그래서 인사도 하지 않고 게임을 나와 버렸지요. 그런데 문자가 온 거에요. 편지모양의 문자가 요란한 진동소리를 내며 열어달라고 난리를 쳤어요. 

 편지봉투를 누르자 금색의 네모난 카드가 화면가득 나타났어요.

「'골드프리패스 카드!」

 반짝 반짝 황금빛으로 빛나는 카드 밑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어요.

 ‘게임, 동영상, 쇼핑 어디서든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 지금 바로 신청해 주세요.’

 카드? 엄마는 매번 돈이 없다면 서도 카드를 가지고 무엇이든 샀어요. 한번은 나도 카드를 갖고 싶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단번에 거절했지요.

 “애들은 카드 쓰는 거 아니야!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건데?”

 무섭긴요! 내 눈엔 계속해서 돈이 쏟아져 나오는 요술 항아리 같아 보였는걸요.

 나는 잠시 망설ㄹ이다 ‘만들기’ 버튼을 손으로 꾹 눌렀어요.

 그러자 하얀 화면 가득 검정글씨가 빼곡히 떴어요. 글씨가 작고 많은 건 딱 질색이에요. 더군다나 어려운 말이 많다면 더 읽기가 싫어져요.

‘이 카드는 골드 프리패스 카드로 ........ 발급이 가능합니다. 동의합니까?’ 

다른 말들은 어려웠지만 ‘동의합니까?’는 쉽게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동의합니까? 옆 ‘네’글자의 네모 칸만 쭉 체크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네, 네, 네, 하고 났더니 어느 순간 화면에 이런 문구가 뜨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골드 프리패스 카드가 발급 되었습니다.’

 우와! 나한테도 카드가 생겼어요. 나는 엄마가 들리지 않도록 기쁨의 환호를 질렀어요. 내가 대단한 어른이 된 것 같았지요. 

 카드를 만들고 제일먼저 산건 ‘히어로 스쿨’의 전설 캐릭터였어요. 그 다음엔 전설캐릭터에 어울릴만한 최강 무기 아이템도 샀지요. 비쌌지만 비밀번호 4자리만 누르면 골드 프리패스카드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었어요.

 전설캐릭터에 최강 무기 아이템은요 무적이에요. 덕분에 나는 게임에서 여러 번 승리했고 단번에 마스터 단계로 넘어갔어요. 마스터 단계는 신 바로 아래에요. 그건 6학년 형들도 못하는 거였지요.

 친구들은 ‘동동 히어로‘를 부러워했어요. 그게 다 골드카드 때문이에요. 

 검은 양복에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아저씨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동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가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동희의 마음을 크게 알아주는 것 같지 않았다. 동희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초초해 지기 시작했다. 

 “네, 김동희군의 사정을 잘 들었습니다.”

 아저씨가 말을 할 때마다 왼쪽가슴에 붙어 있는 금색뱃지가 조금씩 흔들렸다.

 ‘골드카드 팀장 노직정’

 “그래서 결제하신 999,999원은 언제쯤 갚을 예정인가요?”

 “네? 999,999원이요? 제가 그렇게 많이 썼어요?”

 동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맞습니다. 여기서 9,9999원은 연체된 금액의 이자입니다.”

 연체된 금액의 이자라는 어려운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돈을 갚지 않아서 붙은 벌금 같은 것 같았다. 

 동희는 살면서 999,999원을 실제로 본적이 없다. 가장 큰 돈은 명절날 받아본 50,000원이 전부였다. 동희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갚을 수 있는 돈은 3,7000원이 전부였다.

 동희는 절망스러웠다. 아저씨와 마주 앉은 편의점 테이블이 아득해 보였다.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그렇게 많은 돈은 없어요.”

 아저씨는 대답대신 검정색의 네모난 가방을 열어 하얀 종이를 꺼낸 뒤 동희 앞에 내밀었다. 그 종이를 모자 동희의 머리가 빙글 빙글 돌았다. 국어시험지 보다, 아니 수학 시험지 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자 읽어보세요. 돈을 못 갚으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약관입니다.”

 동희는 애써 집중하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어려운 말 속에 벌금형, 법정 구속 등이 눈에 들어왔다. 형사가 나오는 드라마를 볼 때 들었던 단어들이었다.

 참았던 눈물이 동희의 볼을 타고 내려왔다.

 “아저씨 잘못했어요. 제발 감옥에만 보내지 말아주세요. 흑흑흑.”

 동희는 울면서 감옥에 가는 상상을 했다. 엄마와 아빠는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서 매일 경찰서를 찾아오고 뉴스에 나오는 동희 얼굴에 친구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동희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편의점 누나가 동희와 아저씨를 힐끗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저씨는 주변을 살피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옥에 보내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돈을 갚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려드리지요.”

 동희는 눈물을 닦고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친구 6명에게 골드프리패스카드를 소개해주면 빌린 금액의 반을 감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금액은 매달 나누어 갚으면 됩니다.”

 “정말이요?”

동희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저씨가 말한 방법이 어려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대신 친구들이 꼭 카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건 할 수 있어요.”

 동희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아저씨는 자리에 일어나면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네.”

 “그럼 동희 군이 잘 해내리라 믿겠습니다.”

 아저씨는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하얀색 종이서류들을 챙겨 가방에 넣고는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동희는 마음이 급해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 카드를 소개할만한 친구를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걸어 잠그고 은성이 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골드프리패스카드라고 알아?”

 “골드프리패스카드 그게 뭔데?”

 “아직도 몰라? 그것만 있으면 게임 아이템은 그냥 다 살 수 있어.”

 “정말?”

 “너도 만들래?”

 은성이는 잠시 주춤했다.

 “우리 같은 애들도 카드를 만들 수 있어?”

 “물론이지? 생각보다 쉬어.”

 동희가 자신 있게 말하자 은성이는 카드를 만들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쉽잖아. 금방 할 수 있겠어.’

 동희는 곧바로 아론이 에게 전화를 걸었다. 골드카드에 대해서 막 설명하려는데 아론이가 크게 웃었다.

 “나 그 카드 알아.”

 “뭐?”

 “골드카드. 나도 만들었거든. 내가 너한테 그 문자 보낸 거야. 너도 카드 만들라고.”

 동희는 놀라서 전화기를 떨어트릴 뻔했다.

 “그 문자 네가 보낸 거였어? 그걸 왜 나한테 보내?”

 동희가 크게 소리를 치며 화를 냈다. 

 “너도 그 카드 잘 썼잖아. 게임 아이템 그걸로 산거 아니야?”

 “그런 그렇지만…….”

 동희의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너도 나한테 그 카드 만들라고 전화한 거잖아.”

 아론이는 오히려 큰 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망치로 머리를 쌔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동희는 한동안 스마트폰을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동희, 넌 가만히 있어.”

 편의점 테이블, 골드카드 팀장 뱃지를 단 아저씨 앞에 앉은 동희 엄마가 마주 앉았다. 엄마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아저씨는 동희 앞에 내밀었던 종이를 다시 엄마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동희군의…….”

 동희 엄마가 아저씨의 말을 잘랐다.

 “네, 일단 이건 됐습니다. 동희의 사정을 저도 다 알고 왔습니다. 그리고 골드카드회사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아봤고요.”

 엄마는 가지고온 가방에서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이건 골드카드 회사가 미성년자에게 카드를 만들어 준 것이 법적으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온 자료입니다. 한번 읽어보시죠?”

 동희 엄마의 말에 로봇 같은 아저씨의 표정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네, 그렇군요.”

 아저씨는 동희 엄마가 가지고온 종이를 한참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읽은 아저씨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그리고 편의점 밖으로 나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들어왔다. 아저씨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책상위에 있던 하얀색 종이들을 가방에 다시 넣었다.

 “동희 어머님, 저희의 잘못도 일부분 인정합니다. 하지만 동희군이 사용한 금액이 있으니 저희와 조율을 하는 게 어떠실까요? 게임 회사 측에 연락해 일부분 환불을 요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동희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의 책임도 있으니 사용한 금액에 대해서는 갚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따로 아이를 만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동희는 엄마의 모습이 그 어떤 경찰보다도 멋있어 보였다. 아저씨는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아휴.”

 크고 긴 한숨이 동희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동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어떤 벌을 내려도 달게 받으리라 생각했다.

 “고개 들어!”

 동희가 고개를 들자 엄마가 동희를 노려보았다. 그 눈에선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일어나, 집에 가자!”

동희는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찌릿했지만 참을 만 했다. 엄마는 동희의 손을 잡아주었다. 엄마의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축축하고 따뜻한 엄마의 손을 잡으니 마음이 놓였다.

“그럼, 내 아이템은 다 사라지는 거야?”

“뭐?”

동희 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 졌다. 눈에서 빨간 레이저가 나올 것만 같았다.

‘아, 그 말은 하지말걸…….’

동희는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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