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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Dec 16. 2021

매일의 동화 4

사라져 버렸네!

사라져 버렸네

 “으이그, 또 사라졌잖아. 쯧쯧쯧.”

 엄마는 저녁 식탁에 앉은 내 얼굴을 보며 혀를 끌끌 찾다. 

 나는 급하게 손을 들어 얼굴을 더듬었다. 눈, 코, 입, 입? 엄마 말이 맞았다. 입이 만져지지 않았다. 당황한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엄마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식탁 위엔 내가 좋아하는 비엔나소시지가 통통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입에 넣으면 톡 터지면서 입 안 가득 고소한 육즙을 맛보게 해 줄 텐데……. 입이 사라졌으니 당장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를 내며 빨리 소시지를 넣어달라고 난리가 났다.

 “빨리 입부터 찾아와. 아빠 알면 또 난리가 난다.”

 시계를 보니 아빠가 퇴근할 시간이 다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눈을 잃어버렸을 때 아빠가 엄청 화를 냈던 기억이 났다.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눈을 잃어버린 날, 평소엔 너무나도 다정했던 아빠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화를 냈었다.

“김다미, 너! 이럴 줄 알았어. 일주일 동안 스마트폰 금지야!”

아빠가 무섭기도 했지만 일주일 동안 스마트폰을 못하니 답답하고 좀이 쑤셨다. 내가 우울해 하자 아빠는 5일 만에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앞으로 또 한 번 얼굴 잃어버리면 스마트폰을 아예 없애는 수가 있어. 아빠가 말했지? 아빠 아는 사람은 온몸이 사라진 적도 있다고. 그만큼 무서운 거야.” 

 “네, 약속할게요.”

 나는 기뻐하며 스마트폰을 다시 손에 쥐었다.

 그런데 이틀 만에 또 입이 사라진 것이다. 이번엔 아빠가 정말로 스마트폰을 버릴지도 모른다. 아빠의 화난 얼굴이 떠오르자 불안해졌다.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고 코에선 뜨거운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엄마! 나 어떡하지?’

 내 말은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입 안에서만 맴도는 말이 엄마한테 들릴 리가 없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시계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다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휴, 다미 너 이번만 엄마가 도와주는 거다. 알았지?”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엄마는 앞치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어디예요?”

 나는 거북이처럼 고개를 쑥 내밀어 엄마의 전화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빠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어렴풋이 들렸다.

 “아, 거의 다 왔다고요.”

 엄마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사거리 빵집에서 식빵 좀 사다 줄 수 있어요. 다미가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하네요. 호호호, 고마워요.”

 엄마는 전화를 끊으며 나를 재촉했다.

 “빨리 찾아! 알았지?”

 ‘엄마, 하늘땅, 우주만큼 고마워!’

 사거리 빵집이라면 갔다 오는데 족히 10분은 걸린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스마트폰 화면의 비밀번호를 빠르게 눌렀는데 긴장해서인지 두 번이나 틀렸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찬찬히 번호를 누르자 BOS오빠들의 사진이 화면에 보였다. 

 “김다미, 빨리 찾아!”

 밖에선 엄마가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앞 베란다에 나가 아빠가 오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찾고 있다고!’

 크게 소리쳤지만 여전히 입 안에서만 맴 돌뿐이었다.

 ‘아, 답답해서라도 빨리 입을 찾아야겠어.’

 스마트폰엔 화면엔 많은 앱들이 깔려있었다. 그중 오른쪽 맨 위에 있는 대화방을 열었다. 대화방에는 주아와 예원 이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미-얘들아, 나 물어볼 게 있는데…….

  주아-다미 너 밥 먹는다며? 벌써 다 먹은 거야?

  다미-아니, 아직 못 먹었어. 혹시 니들 내 입 못 봤니?

  주아-???

  예원-ㅋㅋㅋ

  다미-못 봤냐고?

  예원-김다미 오늘 아빠한테 엄청 혼나겠네.ㅋㅋㅋ

  다미-강예원 너무한다. 

       ‘흥, 강예원 두고 봐.’

  주아-못 봤어. 그나저나 우리 내일…….」

 나는 재빨리 대화방을 나왔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대화방에서 수다를 떨었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대화방 옆에 있는 동영상 앱을 열었다. 아까 낮에 영상을 보면서 댓글을 쓴 게 생각이 났다. 이미 1000번도 넘게 본 BOS오빠들의 뮤직비디오가 재생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내 입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 아빠 보인다!”

 엄마가 베란다에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스마트폰 화면에 아빠의 화난 얼굴이 가득 채워졌다. 그때였다. 달리기 모양을 하고 있는 게임 앱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여긴가?’

 오늘 처음 설치한 게임이었다. 캐릭터를 만든 뒤 스파이 놀이를 하는 게임이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만큼 재미있었다. 게임 창을 열자, 그곳에 내 입이 있었다.

 ‘여기 있었네.’ 

 내 입은 내 캐릭터에 붙어 팀원들과 함께 스파이를 추리하고 있었다.

「파란 옷 입은 애가 범인이야! 백 프로 확신해!」

 재빨리 입을 꺼내어 코 아래에 붙였다.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빠르게 뛰던 심장도 거짓말처럼 차분해지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김다미! 찾았어?”

 엄마가 급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응!”

 내가 입을 쭉 내밀자 엄마가 내 입을 잡아당겼다.

 “아유, 십년감수했네. 다미 너, 앞으로 조심해. 다음엔 절대 안도와 줄 거야.”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빠가 들어왔다.

 “다녀오셨어요?”

 나와 엄마는 웃으며 아빠에게 갔다. 아빠의 손에는 식빵 봉투가 들려있었다.

 “자, 식빵!”

 엄마가 식빵을 받아 드는데 아빠가 얼굴을 찡그렸다.

 “당신! 귀 어디 갔어?”

 아빠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정말로 엄마의 귀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깜짝 놀라 식빵을 떨어트렸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엄마의 얼굴이 귀가 비어있는 곳까지 붉어졌다. 엄마는 재빨리 앞치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터치하더니 귀를 찾아 달았다. 엄마의 스마트폰에선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왔다.

 “흠, 흠흠.”

 아빠는 날카로운 한숨소리를 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때문에 귀가 사라진 것도 몰랐나 봐.’

 미안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를 보며 혀를 차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으려는데 아빠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올게.”

 아빠가 급하게 전화를 받고 오더니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 심각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엔 알록달록한 색깔의 그래프들과 차트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아빠는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한 손에는 젓가락을 들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통화를 계속했다.

 “여보! 식탁에선 밥만 먹어야죠!”

 엄마가 나무라자 아빠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는 탱글탱글 비엔나소시지를 입 안 가득 넣었다. 소시지들이 툭툭 터지면서 짭짜름하고 고소한 맛이 났다. 그런데 아빠의 젓가락이 자꾸만 소시지를 떨어트렸다.

 “아빠, 왜 그래요?”

 나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아빠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앗! 아빠!”

 “여보!”

 엄마와 나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이런.”

 아빠가 멋쩍게 웃었다. 엄마는 재빨리 아빠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어내었다. 하지만 늦어버렸다. 아빠의 자리가 순식간에 비었고 새까만 스마트폰만 덩그러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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