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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Dec 18. 2021

매일의 동화 5

웃음 도둑

“웃음을 잃어버렸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웃음을 잃어버리다니!”

선생님은 놀란 눈을 하고 진서를 바라보았어요.

“모르겠어요. 재미있는 걸 봐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게임에서 이겨도 웃음이 나오질 않아요.”

진서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어요.

“그래, 속상하겠구나. 선생님이 방법을 찾아볼게.”

선생님은 속상해하는 진서를 달래주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윤채와 성민이가 선생님에게 찾아왔어요. 

“선생님, 저희도 웃음을 잃어버렸어요.”

“뭐? 너희도?”

“네, 웃음이 나오지 않아요.”

윤채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어요.

“언제부터 그랬니?”

“엊그제부터 웃음이 나오질 않았어요.”

성민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어요.

“이거 정말 심각한 일이구나.”

선생님의 표정은 굳어졌어요.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모두 앉혀놓고 질문을 했어요.

“우리 반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어요. 혹시 최근에 웃음을 잃어버린 친구가 있나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조용히 손을 들었어요. 세어보니 모두 5명이나 되었어요.

“우리 반에 웃음 도둑이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그 범인을 꼭 잡고 싶어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단 한 명만 빼고요. 원기는 심각한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어요.

“원기는 기분이 좋아 보이네.”

선생님은 원기를 바라보았어요.

“선생님, 저는 자꾸 웃음이 나와요.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까르르.”

아이들이 일제히 원기를 쳐다보았어요. 선생님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어요.

선생님은 웃음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한 명씩 불렀어요. 그리고 웃음을 잃어버리기 전까지의 사건을 차곡차곡 기록했지요.

‘김진서-짝꿍이 바뀐 뒤로 웃음을 잃어버림 ’

‘이윤채-체육대회에 커플댄스 연습 중 웃음을 잃어버림’

‘박성민-급식실에서 밥을 먹는 중 웃음을 잃어버림’

‘전인준-방과 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 웃음을 잃어버림’

‘양윤희-복도에서 길을 가다 친구와 부딪힌 후 웃음을 잃어버림’

선생님은 사건 기록 지를 읽어보고 또 읽어보았어요.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그건 바로…….

“선생님, 왜요?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까르르.”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원기를 불렀어요.

“원기는 계속 웃음이 나오나 보구나.”

“저도 그러기 싫은데 자꾸 웃음이 나와요. 어떻게 하죠?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까르르.”

원기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웃었어요.

“그건 바로, 네가 웃음 도둑이기 때문이야!”

“네! 제가 웃음 도둑이라고요!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까르르.”

원기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여전히 웃음이 삐져나왔지요.

“그래, 네가 친구들의 웃음을 훔쳤기 때문에 자꾸 네 입에서 웃음이 삐져나오는 거야.”

선생님은 차분히 원기에게 설명을 했어요.

“전, 친구들의 웃음을 훔친 적이 없어요. 정말이에요.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까르르.”

“글쎄? 원기가 잘 생각해 볼래?”

선생님은 원기에게 아이들의 사건을 적은 기록 지를 보여주었어요.

원기는 차례차례 친구들과의 일을 떠올리기 시작했어요.

‘김진서-짝꿍이 바뀐 뒤로 웃음을 잃어버림 ’

원기는 진서와 처음 짝꿍이 되었어요. 진서의 목에는 손바닥만 한 큰 점이 있었죠. 원기는 그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어요.

“야, 김진서, 너 목에 엄청 큰 점이 있다. 젖소 같아!”

그러자 진서의 얼굴이 어두워졌어요.

“진짜 젖소 같아. 음매 하고 울어봐! 하하하.”

진서는 대답을 하지 않고 말없이 책상만 정리했지요.

‘이윤채-체육대회에 커플댄스 연습 중 웃음을 잃어버림’

윤채와는 커플댄스의 짝꿍이 되었어요. 귀엽고 착한 윤채가 원기는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자꾸 박자가 엇나갔어요. 

“이윤채! 왜 이렇게 박자를 못 맞추냐. 완전 몸치네! 하하하 호호호.”

윤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어요. 윤채는 그 뒤로도 계속 박자를 맞추지 못했어요.

‘박성민-급식 실에서 밥을 먹는 중 웃음을 잃어버림’

급식 실에서 성민이가 원기의 맞은편에 앉았어요. 그날은 탕수육이 나왔는데 볼이 통통한 성민이가 탕수육을 아주 먹음직스럽게 먹었어요.

“성민이 먹는 것 좀 봐. 돼지 같아!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성민이는 반찬을 집어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았어요. 원기는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어요. 

‘전인준-방과 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 웃음을 잃어버림’

방과 후에 남자아이들끼리 모여서 축구를 했어요. 1대 1로 비기고 있는 중요한 상황에 골키퍼인 인준이가 공을 막아내지 못했어요.

“야! 전인준 그것도 못 막냐! 내가 눈감고 막아도 너보다 낫겠다! 너 때문에 우리 팀이 졌잖아!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인준이는 슬그머니 운동장을 빠져나갔어요. 원기는 점점 더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양윤희-복도에서 길을 가다 친구와 부딪힌 후 웃음을 잃어버림’

복도를 지나가다 윤희와 부딪혔어요. 친구와 재잘대던 윤희가 한눈을 팔았기 때문이에요.

“양윤희!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녀. 눈이 뒤에 달렸나. 정신 좀 차리지 그래!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까르르.

윤희는 친구와 재잘대던 것을 멈추고 교실로 들어갔어요.

“선생님, 전 정말로 친구들의 웃음을 훔치려 했던 건 아니에요.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까르르. 그리고 자꾸 웃음이 나와서 저도 너무 힘들어요.”

원기는 입은 웃고 있지만 얼굴은 울상을 짓고 있었어요.

“그래, 그럼 이제 친구들에게 웃음을 돌려주면 되겠구나.”

선생님은 원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어요.

“어떻게 돌려줘야 하나요.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까르르.”

“그건 아주 쉽지. 웃음을 잃어버린 친구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먼저 해보렴.”

“하지만 친구들이 제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까르르.”

선생님은 원기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어요.

“원기는 웃음을 잘 돌려줄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은 원기의 손에 사탕을 한 개 쥐어주었어요. 사탕에는 작은 글씨로 ‘용기와 친절’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어요.

교실로 돌아가는 원기의 발걸음이 무거웠어요. 친구들에게 웃음을 돌려줄 자신이 없었거든요. 자신이 웃음 도둑인걸 안다면 모두가 미워할 것 같았어요.

자리에 앉아 짝꿍인 진서를 바라보았어요. 진서는 슬그머니 손으로 목에 난 점을 가렸어요. 원기는 선생님이 준 사탕을 입에 물었어요.

“미안해, 진서야.”

“뭐?”

진서가 놀란 눈으로 원기를 바라보았어요. 

“네 점을 가지고 놀린 거.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장난친 건데 너한테 상처가 될 줄은 몰랐어. 내가 너의 웃음 도둑이었어.”

정말로 ‘미안해’라는 말을 먼저 하니 나머지 말들이 술술 나오고 웃음도 안 삐져나왔어요.

“괜찮아. 하하하.”

“정말? 용서해 줘서 고마워. 호호호 큭큭큭 푸하하 까르르.”

진서가 밝게 웃었어요. 원기도 따라 웃었죠. 진서의 웃음이 돌아오자 삐져나오던 웃음이 조금 줄어들었어요. 원기는 기분이 좋았어요.

 웃음을 돌려주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이번에는 윤채의 웃음을 돌려줄 차례예요. 원기는 윤채를 찾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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