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재 Jun 08. 2022

차-카게 살자.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착하게 살자.

 90년생 맏딸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나는 자라오면서 부모님에게 "네가 언니니까 양보해.", "네가 더 많으니까 양보해."라는 얘기를 많이 듣고 성장했다.


 현재의 나는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게 편하고, 선택권을 양보하는 게 편하다.


 이로 인해 뒤돌면 항상

'그때 그랬으면...'

'아니라고 말할걸'

하며 혼자 이불 킥하며 속앓이 할 때가 많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많았다'가 아니라- '많다'가 맞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나를 오래 본 사람들은 다들 똑같은 말을 한다.

"너는 착해."

이 말이 어느 순간 바보 같다는 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나였으면 안 그래. 언닌 참 착해."

"역시 넌 여전히 착하네."


 착한 것과 바보 같은 것, 이기적인 것과 쿨한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면서 자기 할 말만 하는 걸 쿨하다고, 난 할 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엔 쿨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이기적인 것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종종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얘기를 듣다 듣다 그건 쿨한 게 아니라 이기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이해하고 배려하자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아닌 것은 아니다. 싫은 것은 싫다. 별로인 것은 별로다. 하고 표현해야 한다.


 옛날의 나였으면 상대방에게 상처되는 말은 하지 안 했을 것이다. 아니 못 했을 것이다. 상처되는 말과 듣기 싫은 말은 전혀 못 하는 성격이었다. 그냥 둥글둥글. 좋은 게 좋은 거지.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아이가 나처럼 둥글둥글한 사람보다는 자기 기준과 자기 기분을 말할 줄 아는, 이기적이지 않고 쿨한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변화하고 있다.



남에게 착하지 않고 나를 위해 착하게 살자고.



하지만 이 기준이 매번 어렵다.

어느 순간에는 '내 성향이 그냥 이런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성향도 있겠지만, 이미 몸과 마음, 머리에 익숙해져 버린 것들은 쉽게 고쳐내기가 어렵다. 하나씩 하나씩, 아기 손톱 자르듯이 차근차근 고쳐나가야 한다.


나를 위한 착하게 살기 프로젝트!

지금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개봉박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