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산에서 마주한 청춘

청화산•조항산 산행기

by 홍삼이

초가을, 청화산과 조항산 능선 위에서

나는 문득 물었다.


"나는 아직 청춘일까, 황혼일까"


산길 위에서 잊고 지냈던 젊음이

나를 다시 맞이했고,

황혼의 나이에도 마음속 푸른 기운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청화산 능선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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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첫 발자국, 산으로 향하다


가을의 느낌이 막 올라오는 9월 초,

세 달 만에 다시 산을 찾았다.


오늘은 경상도와 충청도 경계에

자리한 청화산과 조항산을

산행하기로 했다.

하루에 두 산을 오르는 것이

무리일까 잠시 망설였지만,

갓바위재에서 체력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새벽 공기는 이미 가을의 냄새가

짙게 스며 있었다. 차창 밖에는 묵직한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며,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초가을 들녘

길가의 감나무와 콩밭은

아직은 푸르지만,

머지않아 곧 가을빛으로 물들 것이다.

밭머리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들이

농부들의 땀방울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금강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는 동안,

산악대장은

"조항산 하산길만 조심하면

두 산을 산행하기에 무난하다"

청화산과 조항산을 잇는 산행을

권했다.

그 말에 마음은 이미 두 산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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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재, 소금길에 스민 삶의 애환


늘재에 도착하니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 새겨진

거대한 돌비석이 먼저 반겼다.

'분수령, 낙동강•한강'이라는

표지판도 눈에 띄었다.

서쪽 충청도로 흘러가면 한강 물이 되고,

동쪽 경상도로 흘러가면

낙동강 물이 되는 분수령이다.

백두대간 돌비석과 분수령 표지판

늘재는 예로부터 소금과 곡물을

지고 오르내리던 소금길이고

장터길이었다.

선비들이 넘나들던 길,

민초들의 땀과 웃음이 묻은 길,

산꾼들의 이야기가 넘실대던 길이었다.


지금은 포장도로로 편안히 넘나드는

길이 되었지만,

그 옛날 지게를 진 소금장수의

고단한 숨결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길에서 나는 잠시 멈추어, 그 길에

스민 삶의 애환을 짧은 시로

불러 보았다.


※ 소금길의 애환


소금땀

삼베옷에 스며드는

늘재 고갯길,


늘어진 고개만큼

고단한 삶이 너무 길다


초가삼간 마루 위,

제비입 벌린 처자식


쌀, 콩, 고구마, 옥수수

바꾼 지게너머엔

석양 그림자 늘어지고,


무거운 발걸음만

애간장 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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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황혼이 마주한 청화산


늘재에서 청화산 정상까지는

한 시간 남짓.

흰구름이 능선 위에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며 산행길을 위로한다.

청화산 능선위 에 그늘지다

청화(靑華),

늘 푸르고 깨끗하며 겨울에도 산죽과

소나무가 푸른 산.


풍수지리에서는 '십승지' 중 하나로

복이 깃든 땅, 산세와 분지가 마치

소의 배처럼 편안하게 둘러싸인 곳이다.


청화산 정상에 앉는 순간,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나는 청춘일까. 황혼일까."


청화산(靑華山)과 마주 앉아

한시(漢詩) 한 수로 내 마음을

열어본다.


※對靑華 (대청화)-청화산과 마주하다

靑山頂上初老翁

(청산정상초로옹)

對君四序盡如春

(대군사서진여춘)

心猶不老同靑春

(심유불로동청춘)

奈何身已向黃昏

(내하신이향황혼)


푸른 산 정상에서 초로의 노인,

그대는 사계절이 다 봄과 같구나

마음은 여전히 늙지 않고 청춘인데,

어찌하여 몸은 벌써 황혼으로

기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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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발걸음을 따라 조항산으로

청화산에서 갓바위재로 내려서는 길,

앞서 걷는 한 젊은 여인의 발걸음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체구임에도

바위와 오르막을 거침없이 오르는

모습이 놀라웠다.


숨 한번 흐트러뜨리지 않고

능숙하게 산을 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청춘의 상징이었다.

그녀의 젊음이 부러웠고,

그 모습을 좇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나만의 체력으로 그의 뒷모습을

놓쳤지만

갓바위재와 삼굿마을의 전경

계곡 아래,

영월의 삼굿마을이 정겹게 앉아

있었고, 저 멀리 백악산의 풍경은

줌처럼 당겨왔다.

새의 목처럼 뾰족한 조항산이

암릉미를 뽐내며 눈앞에 쏟아진다.

암릉미를 자랑하는 조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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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속에서 다시 피운 청춘


조항산에 오르는 길,

앞서 걷던 젊은 산객이 전해준

푸른 기운이 황혼의 나이를

잊게 했다.

길 옆에는 샤스타테이지, 고들빼기,

꽃며느리밥풀, 참나물꽃,

이름 모를 풀꽃과 나무들이

싱그럽게 피어 있었고,

산행길에 잠시나마 여유를 갖게

하였다.

샤스타테이지,고들빼기,꽃며느리 밥풀,참나물꽃

오늘 청화산과 조항산 산행은

그 모든 생명들이 함께 한 동행이었다.

젊은 숨결과 저무는 빛이

서로 스며든 시간,

그 자체가 감사한 선물이었다.


청춘과 황혼이 서로 스며든 오늘의 길,

그 길에서 얻은 선물은 아마 내일도

다시 산을 향하게 하는 푸른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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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코스 ]

•늘재 - 정국기원단 - 청화산정상 -

갓바위재 - 조항산정상 -

의상저수지 - 옥양교부근 주차장


[ 산행거리 및 시간 ]

•약 13.5km, 6시간

•산행일:2025년 9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