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정 탐방로에서 만난 두려움과 환희
길상암 입구,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글귀
길상암
佛陀彌阿無南
불타미아무나
오른쪽으로 몇 번이나 읽어 보았다.
낯익은 불경의 문구 같았으나,
뜻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귀경 후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며
순간, 폭소가 터졌다.
그 흔한 *"나무아미타불"*이 아니던가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정상(正常)**이 아니었다.
길상암에 닿기 한 시간 전,
산악대장이 오늘 산행을 설명하며
물었다.
"비법정 탐방로 처음 가시는 분,
손 들어 보세요"
나는 이미 전국 명산 80여 곳을
다니며, 정상 인증을 해 온 사람이다.
그러나 '비법정 탐방로'라는 말은 낯설기만 했다.
옆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던,
키가 큰 사내에게 물었다.
"비법정 탐방로가 뭐예요?"
그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 그냥 손 드세요"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손을 들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목요일은
그들만의 '비법정 산행'이 있는 날,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일반 산행인 줄
알고 신청했던 것이다.
"개척조 몇 명이지요?"
"대장님! 5명입니다."
"좋습니다. 로프와 길표지를 챙기고,
처음 오신 분들은 절대 혼자
움직이지 마세요. 반드시 함께
다니셔야 합니다."
그제야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길상암(吉祥巖),
노구승천암(老龜昇天巖), 입술바위.
인터넷으로만 보던 명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설렘은
곧 닥쳐올 아찔한 고난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길상암 뒤, 개구멍 같은 협로로
산행 대열이 빠져나갔다.
나도 무심코 그 무리에 섞였다.
곧 직각에 가까운 비탈이 나타났다.
나뭇가지와 돌부리를 움켜쥐고
기어오르듯 움직였다.
이어지는 길은 개척조가 매단 로프에
의지해야만 하는 곡예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아득했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고소공포증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긴 길이 없네"
개척조가 발길을 돌려 다른 길을
찾는 일도 잦았다.
짧은 휴식시간, 나는 산의 비경을
급히 휴대폰에 담았다.
정규 산행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풍광에 그저 감탄뿐이었다.
나뭇가지에 스치고 바위에 긁혀,
팔토시와 긴 등산복을 입었음에도
팔과 다리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등산복은 엉덩이 부분이 살짝 찢어져
배낭으로 가려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희열과 성취감이
몰려온다.
사람의 발길이 멈춘 곳에서야
만나는 풍경.
산이 감추어 두었던 얼굴을 엿볼 수
있다는 신비감에 사람들이
이러한 산행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별안간 정상적인 산행로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발아래는 세상이었고,
눈앞은 하늘이었다.
기암괴석과 바위 틈새로 나타난
남산제일봉(1,010m)은 구름과
어우러져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개척조는 우리를 남겨둔 채 매화산을
향해 달아난다.
"하산 후, 식당에서 봅시다.
조심하세요"
만남의 장소인 홍류동 식당에서
보자고 인사하고는
그들은 마치 산을 자기들의
놀이터처럼 내달리며 사라진다.
남겨진 남자 셋, 여자 넷은
자연스럽게 하산 파트너가 되었다.
가장 노련해 보이는 남자가
GPS를 켜며 길잡이가 되었다.
하산길 시작은 정상로였으나
조금 후에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희미한 험로, 급경사와 능선, 계곡을 따라
내려가야만 했다.
미끄러운 바위 능선, 수북이 쌓인
낙엽에 발을 헛디딜때마다
아찔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서로 위로하고 끌어주며
우리는 무사히 홍류동 계곡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찢긴 옷자락과 긁힌 상처는
곧 잊혀졌지만, 위태로운 순간마다
서로를 잡아주던 손길의 따뜻함은
오래도록 남았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보낸다.
●산행정보 : 2025년 9월 11일
•10:45 길상암 입구
•11:00 길상암
•12:21 오봉산
•13:26 남산제일봉
•15:27 홍류동 계곡
•16:00 홍류동 주차장
• 약 7km, 5시간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