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화가 남긴 하루

치욕과 웃음, 그리고 결심

by 홍삼이

새벽의 설렘

한 달 전에 잡은 약속.

2025년 9월 26일 금요일,

티업시간은 7시 45분이었다.

전날 챙겨둔 가방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그때만 해도 오늘 같은 민망한 날이

올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2년 3개월 만에 찾는 골프장.

좋은 인연들과 하루를 즐길 수

있다는 기대에 마음은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아내가 출근용으로 쓰는 차를

오늘만큼은 내가 몰아야 한다는

미안함을 안고, 손수 끓인 떡국으로

허기를 달랜 뒤 집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은 68km, 소요시간 54분.

도착하면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북수원을 지날 무렵 대학동기

종연이와 전화를 했다.

그는 안성시 고삼면을 지나고 있다며,

아침은 완식 후배가 싸 온 떡으로

간단히 해결했다고 했다.

안개낀 고속도로의 모습

"안개가 많이 끼었으니 조심히 와라"

며 당부한다.


첫 번째 해프닝


아시아나 CC.

고급 골프장답게 주차장엔

외제차와 대형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무료 발레파킹이 가능했지만, 차 안이 어수선하기도 하고 소형차라

민망하기도 해서 직접 주차했다.


프런트에 도착하니 종연이와

대학후배 완식이가 먼저 와 있었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종연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와이어식 골프화의 다이얼이 부러져

신발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침 도착한 골프장 정회원인 진규 후배가

운동화 끈을 풀어 주어 임시방편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난 후, 우리는 카트에 올라 티업

장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골프장을 찾은 종연이의 걱정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첫 홀에 도착한 카트

두 번째 해프닝


첫 홀, 첫 타자.

내가 티업에 나섰다.

신중하게 친 공은 시원하게 날아갔지만,

안갯속으로 곧장 사라졌다.

결과는 OB.

멀리건으로 다시 시작했지만,

이날의 해프닝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전반 9홀째, 드라이버 샷이 잘 맞았다.

세컨드샷도 깔끔했다.

기분 좋게 그린을 향해 걸어가는 순간,

발끝이 이상했다.

내려다보니 골프화 접합 부분이

벌어지더니, 이내 밑창이 들려

올라왔다.

골프화 헤프닝이 발생한 홀

신발 밑바닥이 소 혀처럼 길게

늘어지며 필드에 떨어졌다.

이를 본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급히 캐디를 불러 새 신발을

구했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 순간부터 내 멘털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후반으로 갈수록 스윙은 흔들렸고,

퍼팅은 엉망이었다.

자신감은 모래벙커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결국 돈도 잃고, 자존심도 잃었다.


40대 초반의 캐디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이런 일은 처음 보네요."


두 명의 후배와 종연이까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만 씁쓸했다.

두 명의 후배, 동기와 함께

교훈과 결심


라운딩이 끝나고 후배들이 캐디피와

카트비를 계산했다.


" 녀석들 우리가 잃은 돈으로

생색을 내는군 "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백수 처지에 그저 고맙기만 했다.

점심까지 완식이가 샀다.

한 달 용돈이 날아갈 뻔했는데,

후배들의 배려가 고마웠다.


" 형님들, 다음에 또 모시죠 "


진심 섞인 말이었지만,

나에겐 분발하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 달 전부터 기다려 온 기회였는데,

이선희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아니야, 이제는 잊어야지 "

지난날의 자신감과 실력을

그리워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골프장의 한 장면

뒷 이야기와 결심


이튿날 아침,

종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이미 커피숍 한켠에서

어제 일을 글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며,

스크린 골프라도 자주 하자고

제안했다.


" 새 골프화를 비싼 수업료 치르고

얻었으니, 5년 정도는 라운딩 해야지 "


내 말에,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껄껄 웃음이 오래도록 귀에

맴돌았다.

새 골프화를 갈아 신고, 드라이브 샷 前 모습


진규가 보내온 동영상을 보았다.

새 골프화를 신고 '뱀샷'을 날리는

내 모습.

언제 찍었는지 모를 그 장면 속엔,

배꼽 빠지게 웃는 동행들의

웃음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려 있었다.


쓰디쓴 커피 향과 함께 되살아난

어제의 웃픈 기억.

그 안에서도 감사와 다짐을 찾았다.


나는 崔氏다.

한다고 하면 한다.

다음 기회에는 웃음과 동시에

실력으로 감탄을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