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망경대산에서 응봉산까지

두위지맥의 애상

by 홍삼이

●새벽의 약속


어제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

문식, 그리고 명희와의 만남은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오늘 산행은 그 아쉬움을

설렘으로 덮어 주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떠나는 길,

그것만으로도 내겐 또 다른

약속이었다.


6시 25분경 사당역에 도착했다.

30여분의 여유가 있어 근처 김밥집에서

김치가락국수를 시켰다.


텔레비전에서는 "10월의 마지막 날"

이라며 기상캐스터가 오늘의 날씨를

전한다.

강원도 일부 지역이 서리와 얼음이

얼었다고 한다.


인터넷을 뒤지며,

오늘 산행지의 일기를 살펴보니

기온은 17~20도, 풍속은 초속 3m라 했다.

왠지 조금은 부풀려진 예보처럼 느껴졌다.

두위지맥길에서 만난 가을의 풍광

버스에 오르니, 내 옆자리에 듬직한

50대 중반의 남성이 앉았다.


죽전에서 다시 몇 명이 탑승했다.

그중 호리호리한 체형의 60대

산악대장이 있었다.

숙취 기운이 역력한 모습이다.

"죄송합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사당역에서 합류했어야 했는데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쫓아왔다고

한다.


첫인상과 달리 그는 베테랑

산악대장이었고, 산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노련한 안내로

우리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망경대산의 인상


10시 40분경, 들머리인 만봉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걷어 올린 소매사이로 신선한 공기가

피부를 스친다.


갑작스레 몰려든 무리에 놀란 까마귀

한 마리가 크게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가른다.


만봉사 앞 전경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참나무

낙엽이 바스락 거린다.

가을의 음률이었다.

마치 누군가 숲 속에서 연주하는

현악기의 선율처럼...


오르막 길은 가팔랐다.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며

올라야 할 정도로.

산악대장은 혼자 걷지 말고 삼삼오오

함께 하자고 당부했다.


1시간 반쯤 걸려 도착한 망경대산 정상.

해발 1,088m,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연상리와 김삿갓면 예밀리 경계에

위치한 이 산은,

단종의 충신 추익환이 수양대군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이곳에서 한양을

바라보며 통곡했다는 사연을 지나고

있다.

그래서 '망경대산(望景臺山)'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가을 하늘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연신 탄성을 쏟아낸다.


망경대산 정상석과 주변 풍광


● 두위지맥의 작은 만남들


응봉산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으로

정상에 계속 머물 수 없음이 아쉬웠다.


응봉산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표지판 없는 구간이 많았고,

앞을 막은 덤불을 헤치며 걸어야 할

미지의 길이 많았다.

선두에 선 회원들이 준비해 온 종이를

길바닥에 표시해 가며 걸었다.


그러던 중

"산토끼다!" 누군가 외쳤다.


회색빛 산토끼 두 마리가 놀란 듯

산비탈 아래로 뛰어갔다.

잠시 마주친 까만 눈망울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그 겁에 질린 모습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망경대산을 내려오며 찍은 사진


● 십승지, 그 깊은 마음


응봉산으로 가는 길엔 묘지가 유난히

많았다.

깊은 산중에 어찌 이리 봉분이 많을까

의아했는데,

날머리에서 '십승지' 비석을 보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조선의 예언서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

흉년•전염병•전쟁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는 천하의 명당.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응봉산 정상, 십승지 표시석


응봉산 (해발 1,013.3m)을 넘자

조용한 산골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독대의 장독마다 햇살을 머금은

장이 익어가고 있었고,

텃밭에는 볏짚에 묶인 통통한 배추가

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 속의 고갱이를 된장에

찍어 먹는 상상을 하자,

입안에 단맛이 감돌았다.


산골마을 집앞의 모과 및 연하계곡

석양빛에 황금색으로 물든 모과가

가느다란 가지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연하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긴 여정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 감사의 하루


시월의 마지막 날.

두위지맥을 따라 망경대산과

응봉산을 넘는 여정은 내게 잊지 못할

하루였다.


자연의 아름다움, 사람들의 온기,

그리고 가을이 남긴 슬픔과 위안이

마음 깊이 내려앉았다.


오늘도 참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였다.


● 산행정보

•코스별 시간대

10 : 35 만봉사 주차장

11 : 26 뾰족봉

11 : 49 망경대산 정상

12 : 05 망경대산 삼거리

13 : 50 응봉산 정상

14 : 42 연하계곡

14 : 57 물바람 버섯농장 주차장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약 14km, 4시간 30분


•날씨:맑음, 기온 17~20°, 초속 3m 내외의 미풍


•산행일자: 2024년 10월 31일


연하계곡의 단풍 및 능선


● 두위지맥의 哀傷(애상)

까마귀 날갯짓에

마지막 잎새마저 이별을 고하고


가을이 색동옷 벗으니

백운이 실눈 뜨고 훔더라


애달픈 충정에

망경대산은 눈 감고 절하였고


잿빛 산토끼

새까만 눈동자만 가슴에 남는다


장 익는 산골 마을

노란 모과 음처럼 달콤하고


낙수는 통곡되어

가을을 웅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