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병아리, 흙의 노래를 부르다

청춘의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홍삼이


이른 아침의 외출


45년 전 대학시절,

우리가 지겹도록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들어라 괭이 들고,

밭갈이 가세."


"씩씩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며~"


이른 아침,

초로의 한 남자가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잎이 물든 가로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아파트 단지내 모습

아직 어둠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지만,

거대한 아파트 벽 너머로 밝아오는

여명처럼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들떠 있었다.


오늘은 오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뜻밖의 지연


신도림역 승강장.

그는 평택행 급행전철을 기다리며,

시계를 확인하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무언가를 메모하고, 카톡을 남긴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두 손을

비비며 횡단보도를 건너던 그는

택시들이 줄지어 선 도로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때, 왼쪽 도로 끝에서 한 대의

승용차가 다가와 섰다.


문이 열리자 반가운 얼굴ㅡ

종연이었다.

둘은 굳은 악수로 반가움을 나누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병건이 사업장의 외부 전경

잠시 후, 전화가 울렸다.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려는 영춘이었다.


" 9시 38분 제천행 고속버스가

만원이야, 창엽이만 예매해서

먼저 출발했어. "


종수와 석래, 영춘 셋은 다음 차로

떠난다며 한 시간쯤 늦을 거라고 했다.


" 11시 30분쯤 제천 버스터미널에

도착할 테니, 창엽이 픽업 좀 부탁해 "


서울 친구들에게 소식을 받은

병건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 평택에서 출발한 종연이랑

자네라도 빨리 오시게. "


전화 너머로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엔

반가움과 설렘이 가득했다.

그의 음성은 여전히 청춘이었다.

유기농 닭을 키우는 농장의 일부분

※제천의 병아리 회장


병건이는 제천에서 공장과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20년 전, 그는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대학시절, 축산학을 공부하던 그가 지금은 제천의 '병아리 회장'이 되어 있었다.


세월의 무게만큼 그의 인생 여정은

험난했다. 수차례의 실패와 시련

속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몸의 떨림과 어눌한 말투가 남았지만,

31명의 직원과 함께 유기농의

길을 걷는 그의 뚝심은 그 어떤

기업가보다 단단하고 뜨거웠다.

친구들과의 미팅후 사진 한 장

그 뒤에는 부인의 헌신과 가족의

사랑이 있었다.

대표이사인 부인과 대학교수 출신의

연구소장이 직접 회사 연혁, 미션,

비전을 소개할 때

나는 괜스레 울컥했다.


수치는 아직 부족한 매출이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대기업과 시청에서 근무했던 영춘.

농축협에서 근무했던 박사 출신 창엽.

닭업계 전문가 종수.

농협 유통을 두루 거친 종연.

그리고 농협 지점장등 요직을 지냈던 석래.


친구들과의 대담 속에서 병건이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눈빛에는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흙의 노래'의 가사처럼 대학 동기중

진정한 농촌혁명의 실천자였다.

유기농 달걀의 선란 작업과 포장

※우리들만의 시간


우리들은 과일 꾸러미를 들고

그의 사업장을 찾았다.

불편한 몸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그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미팅을 마친 뒤, 근처 막국수집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덕담이

오갔다.


"ㅇㅇ의 1,000억 매출을 위하여"


"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웃음소리 사이로 잔이 부딪히고,

젊은 날의 우정이 따뜻하게

되살아났다.


식사 후에는 그의 농장을 둘러보았다.

농장장, 외국인 노동자, 일하는 분들의

환영 속에 우리는 유기농 달걀의 선별,

세척, 포장, 배송과정을 지켜보았다.


모든 과정이 정직했고, 성실함이

배어 있었다.

농장 한켠에서의 조촐한 파티

이후 병건이의 제품으로 차린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화덕 위에서 고소한 닭고기 냄새가

피어오르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우리의 웃음소리가 함께 흩어졌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다시

풋풋했던 대학시절로 돌아갔다.


제천의 하늘엔 구름 한 점, 바람 한 점

없었다. 오늘처럼 맑은 하늘 아래에서

그의 사업이 번창하고,

꿈이 이루어 지길 마음 깊이

빌었다.


'흙의 노래'와 '축산과 노래'를

끝으로 우리는 병건이 부부와

농장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왔다.


석양빛에 물든 제천 하늘아래,

병건이의 눈망울이 살짝 젖어 있었다.


" 친구야, 건강하거라 "


그 한마디가

늦가을 바람처럼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


- 2025년 11월 3일,

친구 병건을 생각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