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 초여름의 나라로 날다.

2026년 1월, 여섯 친구들의 베트남 여행

by 홍삼이


1월 22일, 새벽 4시 30분.

휴대폰 진동에 잠을 깼다.

성북구에 사는 종권이의 전화였다.

8시에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벌써 공항버스를 탔다고 한다.


기온은 영하 13도.

속내의를 챙겨 입고 두꺼운 외투를 걸쳤지만

귀 끝이 얼얼할 만큼 추위가 매서웠다.

5시 30분,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아파트 문을 나섰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천 여행사 주차장에서 모여 전용차량으로 이동 중이라고 했다.

성태의 목소리는 날씨와 달리 따뜻했다.


7시 40분, 인천공항 1 터미널 D게이트.

죽마고우 여섯 명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였다.

이른 시간부터 움직인 탓에 모두 허기가 졌다.

공항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베트남은 나에게는 첫 여행지였다.

민희에게는 평생 첫 해외여행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긴장이 묻어났다.

총무이자 회장을 맡은 나는

괜히 어깨가 무거워졌다.

여섯 명의 친구를 태우고 갈 베트남행 VN409편.

10시 35분, 항공기가 이륙했다.

다섯 시간 뒤, 우리는 호찌민에 닿았다.

두 시간의 시차를 건너 닿은 곳.

그곳은 이미 초여름의 공기를 품고 있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베트남 특유의 냄새와 열기가 훅 밀려왔다.

여행할 때마다 느낀다.

나라마다 공기의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입국 심사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맨 앞에 서 있던

재순이가 손을 흔든다.

알고 보니 우리는 환승 통로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것이다.


작은 글씨로 적힌

' international transfer '

표지판을 뒤늦게 발견했다.

여행은 늘 이렇게 작은 소동을 데리고 온다.


옆을 보니

' All Passports '

1시간 이상 입국이 늦어졌다.


수하물 컨베이어 모퉁이에 우리의 캐리어가

모여 있었다.

겨울옷을 벗고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출구로 나오니 현지 가이드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순박한 인상의 운전기사와 함께 9인승 밴에 올랐다. 첫 식사는 현지 쌀국수였다.

기내식을 먹었음에도 또다시 젓가락을

들게 된다.


오후 3시 30분 붕따우로 향했다.

차창 밖 호찌민 시내는 오토바이의

강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흐름이

도로를 물결처럼 채웠다.

엔진소리는 묘하게 리듬을 타며 도시의

숨결처럼 들렸다.


두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해변 도시 붕따우.

체크인을 마치고 한식당에서 느긋하게

저녁을 먹었다.


자유시간.

가벼운 술잔과 따뜻한 차 한 잔 사이로

웃음이 번지고 추억이 조용히 새겨졌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을 뒤로한 채

여유로운 첫날을 보내고 있었다.



●여행 2일 차

-붕따우, 시간을 멈추게 하다


새벽 6시,

아침 식사 전 혼자 해변으로 나섰다.

길가에는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그들만의 하루를 열고 있었다.

해변에는 축구와 배구, 에어로빅과 조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어떤 이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커다란 뜰채로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붕따우 아침의 해변가 모습

수평선 너머에서 붉은 태양이 구름을

밀어내며 새빨간 혓바닥을 내민다.


야자잎과 풀로 엮어 만든 쪼이라(Choi la), 쪼이 응이(Choi nghi)라고 하는 쉼터가

길게 이어져 있다.

어디선가 본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줄지어 있는 것이었다.


호텔에서 여유로운 아침을 마친 뒤

9시 30분, 일정이 시작됐다.

붕따우의 랜드마크인 거인 예수상.

높이 32미터 남중국해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그리스도상이었다.

거인 예수상 앞에서 예수님을 흉내내다.

8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말에

민희와 성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종권이는 사진을 담느라 저만치 뒤처져

있었다.


반바지를 입은 승덕이는 내부 입장이 제지되었다. 신성한 장소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했다. 마침 얇은 긴바지를 가진 현지인의 도움으로 우리는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 어깨 전망대까지 140여 개의

가파른 나선형 계단.

한 사람씩 겨우 교차할 수 있는 좁은 통로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남중국해와

붕따우 시내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거인 예수상에서 비라본 붕따우 시내 및 남중국해의 모습

내려오는 길,

푸른 바다가 보이는 작은 가게 앞에 앉아 탄산음료를 나눠 마셨다.

추억 이야기가 한참 이어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열반사를 둘러본 뒤 바다와 모래가

반짝이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카페에 앉았다.


푸른 바람을 맞으며 커피와 차를 나눴다.

얼마 만에 찾아온 여유였을까.

바닷가 한 카페에서의 여유, 바닷가 전경

육십 중반을 넘긴 얼굴의 주름 사이로

잔잔한 평화가 스며 있었다.

어릴 적 천진함이 어깨너머로 달려오듯 친구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녀석들,

힘든 세월을 건너오느라 참 고생 많았구나.

친구들을 바라보던 내 눈가에는

어느새 물기가 맺혔다.


프랑스식 건축양식의 바오다이 황제별장은

하얀 외벽과 아담한 정원이 아름다웠다.

베트남 마지막 황제가 머물렀던 곳이라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붕따우 해변의 야경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도 페러글라이딩이 떠 있었고

파도는 하얀 포말을 밀어 올렸다.

붕따우 해변에서 야경을 즐기며

해변가 버스커의 애절한 노래가 발길을

붙잡았다. 자그마한 베트남 여인의

뮤지션은 노래책을 주며 노래를 권유한다.

민희와 나는 한국노래를 부르려 했지만

실패했고 작은 팁으로 대신 마음을 전했다.


금요일 밤의 해변은 인파로 가득했다.

그 인파 속에 우리가 함께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밤은 이미 충분히 행복했다.


●여행 3일 차

-도시와 역사 사이에서 흔들리다


붕따우에서의 시간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호찌민으로 향했다.


전날 밤 U23 아시안 컵 베트남 승리로

도시는 오토바이 행렬로 들썩였다.

승덕이는 잠을 설쳤다며 투덜거렸다.

민희와 성태는 다리에 알이 배고

낯선 음식에 적응하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롯데마트에서 여행 선물을 구입했다.

베트남 커피와 건망고가 인기였다.


달러와 동, 원화를 함께 쓰다 보니

돈 계산이 쉽지 않았다.

종권이는 짝퉁시장에서 5만 동을

한국돈 5만 원으로 착각해 상인에게

"너무 비싸" 라며 외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었다.


간단한 돈 계산법을 가르쳐 주었다.


50,000동 이면

' 0 '을 하나 제외하고, ' 나누기 2 ' 하면

한국돈 2,500원.


호찌민,

한때 사이공이라 불렀던 도시.

전쟁과 식민지의 아픔을 품은 곳이다.


중앙우체국과 노트르담 대성당 주변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졸업사진을 찍는 학생들, 마스코트와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그리고 우리처럼 추억을

남기려는 사람들.

중앙우체국 앞에서 친구들, 졸업사진을 찍는 학생들

전쟁박물관에서는

베트남 전쟁 상흔을 마주했다.

사진 속에서 인간의 잔혹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장면들은 오랫동안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저녁 이후

성태의 권유로 우리는 발 마사지를 받았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자

하루의 피로가 조용히 풀려나갔다.


남자 마사지사가 서툰 한국어로

어제의 축구를 얘기하며 김상식, 박항서

최고, "코리아 파이팅"을 외쳤다.

그 소리에 우리는 웃음꽃이 폈다.


●4일 차(1월 25일)

-메콩강에서 돌아본 시간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메콩강 하류지역 미토(美土)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초록빛 논이 끝없이 펼쳐졌다.

이곳에서는 3 모작이 이루어진다.

벼베기와 모내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풍경이

낯설고도 인상적이었다.


메콩강 델타지역.

황톳빛 강물 위에는 수많은 목조선이

떠 있었다.


전통 모자 '논라'와 '아오자이'를 정갈하게

입은 현지 가이드 '얀'이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정크선 위에서 한국 노래를 능숙하게

부르는 모습에 박수가 쏟아졌다.

메콩강 정크선 선착장, 노래 부르는 현지 가이드 '얀'

유니콘섬에서의 점심,

꿀차 시식, 코코넛 사탕 제작 현장 체험,

전통 음악 공연까지 이어졌다.


야자수로 둘러싸인 수로를 따라

노를 젓는 노부부의 삼판 보트를 타니

그들의 모습처럼 강물은 잔잔하고,

평화롭기만 하였다.

야자수로 둘러싸인 수로를 삼판 보트를 타고


길이 4,900킬로미터.

여섯 나라를 굽이치며 흐르는 메콩강.


그 강물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스쳤던 인연들처럼 삶도

이 강처럼 서로를 지나며 이어지는 것

아닐까.


출국 전

우리는 이발소에 들렸다.

머리를 다듬고 면도를 하며 여행의 끝을

정리했다.


공항 의자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내 마음처럼

우울해 보였다.


친구들아, 이번 여행 정말 즐겁고 고마웠다.

덕분에 마음 깊이 쉼을 얻었다.

우리의 장구지의(長久之誼)가 메콩강

길이처럼 오래도록 함께 하자구나.


그리고 건강하세.


베트남 특유의 공기 냄새,

호찌민 시내를 메우던 오토바이 물결,

붕타우 해변의 고요한 아침과 화려한 야경,

거인 예수상에서 내려다본 낯선 바다,


그리고 황톳빛 메콩강 위를 스치던 바람과

베트남 처녀의 애절한 노랫소리.


그러나 무엇보다 오래 남는 기억은

여섯 명의 죽마고우가

작은 언덕 위 가게와

조용한 바닷가 카페에 앉아

서로의 시간을 꺼내어 놓던 그 순간이다.


우리는 여행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다시 만나고 돌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모든 것에 감사하며...


-2026년 2월 4일 여섯 친구들과의

베트남 여행을 정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