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씨 가족의 제주 3박 4일
2026년 2월 11일.
겨울 저녁의 김포공항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제주행이 얼마 만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출발을 앞두고 나는 아내의 걸음을 자주
바라보았다.
이틀 전 발목 인대를 다쳐 절뚝이는 모습.
설렘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혹여 더 다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오후 6시 30분.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다. 잠시 후 고도를 잡자 창밖으로
진한 선홍빛 띠가 길게 펼쳐졌다.
해가 막 넘어간 서해의 노을이 수평선에
붉은 선을 긋고, 비행기 날개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자연이 완성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대구에서 출발한 장모님과 처가 식구
여섯 명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포옹과 악수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작달막한 60대 초반 여성 가이드가 대형버스로 우리를 안내했다.
"수고멍 말멍 했수다." "폭싹 속았수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는 뜻이라며, 다시 한번 힘차게 외친다.
그 말 한마디에
제주가 조금 가까워졌다.
호텔에 짐을 풀고 우리는 동문시장
야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불야성이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고, 철판 위에서는
기름이 튀며 밤공기를 달궜다.
회와 흑돼지구이, 초밥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처남 방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었다.
양이 부족해 통닭까지 배달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 큰 처제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둘째 아들이 내년 3월 결혼을 한단다.
잠시 방 안의 공기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동서.
삼 형제를 홀로 키워낸 큰 처제의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기쁜 소식이었지만
그 기쁨의 그림자 뒤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할 시간이 함께 서 있었다.
이튿날 아침 7시 20분.
기온 영상 1도.
맑은 하늘과 초속 1~3미터의 잔잔한 바람.
가이드는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그냥 즐기라!"
"오늘이 최고의 날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그저 즐기기로 했다.
오늘은 제주도의 서부코스, 내일은 동부코스를 여행할 여정이란다.
제주의 4대 산업은 물(水), 말(馬), 향(香),
돌(石)이라 한다.
제주도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네 가지.
말고기, 갈치, 흑돼지, 방어회라 한다.
저녁에 예정된 흑돼지 요리.
말고기 5인분도 사전 주문했다.
카멜리아 힐은 붉은 동백으로 흐드러졌다.
동백은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한 번
그리고 가슴에서 한 번 더 피어 세 번
핀다고 했다.
사랑과 그리움의 꽃말 때문일까.
사진을 찍는 가족들의 얼굴이 유난히
밝았다.
그날 동백은 네 번 피었다.
가족들 웃음 안에서
한 번 더.
여객선의 스크루가 거칠게 바다를 갈랐다.
산방산이 물러서고, 형제섬이 손을 흔든다.
송악산 절벽은 병풍처럼 서서 거친 파도로 박수를 친다.
30분 만에 닿은 마라도.
최남단의 하얀 등대와 비석이 우리를 맞는다.
톳짜장과 톳짬뽕을 먹고 해안도로를 걸었다.
대한해협과 남태평양이 맞닿는
에메랄드 빛 바다.
깎아지른 절벽과 바람.
자연의 웅장함 앞에서
가족들의 웃음은 더욱 또렷해졌다.
근심은 파도에 실려 멀어졌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
귀가 멍해지고 공기가 차갑게 폐를 파고
들었다.
눈 덮인 한라산 정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능성마다 검은 얼룩을 두른 백호(白虎)가 누워있는 듯한 형상.
'한라산'이라 새겨진 비석 앞에서
사진만 남기고 내려와야 했다.
산은 남았고, 우리는 내려왔다.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저녁은 흑돼지와 말고기.
말고기는 낯설지만 생각보다 담백했다.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하루였다.
여행은 풍경만 보여주지 않았다.
제주에는 또 다른 '재주'가 숨어 있었다.
끊임없이 지갑을 열게 하는.
장모님 말가죽 가방, 굼벵이 건강식품,
우리는 큰 손이 되었다.
성읍민속마을에서 제주의 옛 삶을 들었다.
초가집 정낭(門)에 걸린 나무 막대기로
집안의 상황을 알렸다는 이야기.
네 개를 모두 걸면 여자가 혼자 사는
집이라는 표시였다는 설명에 4•3의
아픈 역사가 머릿속을 스쳤다.
정낭은 단순한 문이 아니었다.
이웃을 믿고 살아온 방식이었다.
마을의 또 다른 이야기.
주수익원인 굼벵이와 고사리를
공동 소득으로 나눈다는 설명에
제주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을 엿보았다.
점심으로 돼지불고기와 고사리나물,
좁쌀막걸리.
평소 술을 못 드시는 장모님이 두 잔이나
드셨다.
그 모습이 괜히 반갑고, 또 뭉클했다.
서울, 인천, 보령, 대구에서 모인
서른 명의 여행자들.
외할머니와 손자, 노부부, 네 자매,
티격태격하던 두 쌍의 부부, 오십 대 친구들,
그리고 우리 탁 씨 가족.
승마체험장에서만큼은
모두 같은 얼굴이 되었다.
말 위에 올라선 순간,
우리는 잠시 아이가 되었고
서로의 웃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넓은 초원을 뜻하는 '드르',
품다는 뜻의 '쿰다'.
"어서 오세요"라는 방언처럼
그곳은 우리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차 한잔의 여유와 수다.
바람은 거칠었지만, 가족의 시간은 따뜻했다.
은빛 억새가 몸을 낮추고,
우뚝 선 성산일출봉 배경으로 몸을 맡겼다.
막 피어나는 유채꽃에 추억도 만들었다.
강렬한 푸른색, 거친 바람.
해변가는 제주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복고풍 기관차가 기적을 울린다.
"철커턱철커덕, 덜컹덜컹"
우리는 잠시 과거를 달렸다.
잔잔한 호수와 황량한 나무숲을 지나
작고 아담한 역사에 내렸다.
어느 북유럽의 한적한 시골 분위기.
풍차가 매달린 하얀 사일로 창고가
우리를 내려보며
'어서 오시라' 손을 내민다.
제주도 한라산은
"한번 구경 오십시오"라는 뜻으로
높이가 약 1,950미터란다.(*실제높이:1,947m)
또한 '어머니의 산'이라 했다.
오백명의 자식을 둔 어머니의 전설,
커다란 가마솥과 슬픈 사연,
능선에 피는 철쭉은 자식들의 피눈물이란다.
백록담 물은 그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가이드의 멘트도 점점 힘을 잃어갔다.
우리 여행의 시간처럼.
제주에서의 나날도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3박 4일이 이렇게 짧을 줄은 몰랐다.
구십을 바라보시는 장모님의 쇠약함.
발목이 성치 않은 아내.
동서를 먼저 떠나보낸 큰 처제.
병마를 신앙으로 이겨내는 막내처제.
묵묵히 가족을 지키는 처남 내외.
이번 여행은
풍경을 보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수시로 이런 여행을 계획하자는 제안에
큰 사위인 나는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오래도록,
우리가 서로의 곁에 남아
함께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2026년 2월 18일 여행을 정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