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알프스롤 횡단하며
나는 몇 해 전부터
두 가지 목표를 세우고 걸어왔다.
하나는 국내 100대 명산을 완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삶을 글로 남기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아흔세 개의 산을 올랐고,
올해가 가기 전이면 그 숫자는 마침내
백이 된다.
글 또한 마찬가지다.
등산일기와 시, 그리고 지나온 추억들을 모아
일흔 편의 글을 완성했다.
이제는 그것들을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려 한다.
오늘 내가 걷게 될 산은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능동산, 천황산, 재약산이다.
네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배내고개.
이곳은 밀양과 울산을 잇던 길목이자
산군을 잇는 중요한 시작점이다.
올해 첫 원정 산행.
그리고 하루에 세 개의 산을 넘는 긴 여정.
출발 전부터 마음을 단단히 여몄다.
능동산까지는 짧았지만
경사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준비하고 온 길,
숨이 차오르는 만큼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임도 위에서 돌아본 능동산은
그 이름처럼
완만한 능선으로 조용히 누워 있었다.
천황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길고도 지루했지만
그 길 위에는 봄이 스며 있었다.
잔설이 남은 길가,
마른 억새가 바람에 몸을 맡기고,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이
동행처럼 곁을 지켰다.
두 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을 때,
비로소 몸이 신호를 보냈다.
정상 아래 볕 좋은 곳에 앉아
준비해 온 음식을 펼쳤다.
눈앞에는
물기를 머금은 진달래 봉오리들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이곳의 봄은 멀었지만,
그 시작은 분명히 와 있었다.
잠시 앉아 쉬는 그 시간,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되었다.
산길이 아닌, 삶의 길을.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 지나갔고,
어떤 순간은 후회로,
어떤 기억은 고마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가만히 벅차올랐다.
올해가 지나면
내가 세운 두 가지 목표는
모두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어떤 길을 향해 걸어가게 될까.
산 위에서
다음 목표를 생각하는 여유가
조용히 스며들었다.
천황산 능선에 들어서자
누렇게 마른 억새들이
몸을 흔들며 나를 맞이했다.
정상석을 끌어안듯 마주한 순간,
멀리서 재약산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그러나 그 만남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긴 하산길,
표충사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나는 자연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났다.
층층목포의 요란한 물방울 속에
맺힌 작은 무지개,
그리고
구룡폭포와 흑룡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그 모든 것이
지친 발걸음을 다독여 주었다.
나는 오늘도
목표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알게 된다.
목표란
도착하는 지점이 아니라,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2026년 3월 14일 영남 알프스를 횡단한 후
능선을 따라 걷는다
정상은 저 멀리
발아래 쌓이는 시간들이
이미 나를 이끌고 있다
바람이 등을 밀어주고
억새가 길을 알려준다
물기 먹은 진달래 봉오리
아직 봄은 저 멀리 있건만
나는 어디로 가는가
어디까지 왔는가 스스로 묻지만
잔설 묻은 산이 부르고
폭포수 물방울이 무지개 되어
넘어오라고 유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