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곰배령

곰배령의 눈물

by 홍삼이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미니 실비가 내리고 있다. 적은 양이지만 신경이 쓰인다.

우의와 바람막이 등 우중 산행에 필요한 것을

챙겼다. 간단하게 아침도 먹었다.

홍삼이(반려견)가 낑낑대며 밥을 달라고 조른다.

한 움큼의 사료를 주니 꼬리를 흔든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아파트를 나섰다.


신도림 역사는 토요일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전철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젊은이들이 제법 많다. 타투를 한 젊은 외국인 여성이 어깨를 드러낸 채, 흐릿 한 발음으로 뭐라고 떠든다. 대학 4학년인 늦둥이 아들이 떠올랐다.

어제 삼성전자 인턴에 합격했다며 가족 카톡방에 올라왔다. 등산을 위해 배낭을 멘 사람, 생계를 위해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로 새벽임에도

지하철은 무척 혼잡했다.

산행코스와 곰배령에 대한 공부를 했다.

높이 1,164m로 강원도 인제에 있으며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해 벌떡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상의 화원'이라고도 부른다.

곰배골 입구에 들어서니 녹음 짙은 숲길이 나타난다.

버스는 홍천휴게소에서 20분가량 쉬었다.

산악대장이 주의사항과 코스를 상세히 설명했다.

특히 식물 채취나 꽃을 꺾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다.

귀둔리 곰배골 주차장에서 10시 50분경 산행을 시작했다. 날씨는 화창했다. 짙은 활엽수 녹음 속으로 등산객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


들머리 입구에 설치된 곰배령 표지판

정상이 가까워질 무렵 비가 쏟아졌다.

우의를 꺼내 입었다.

몰려든 등산객들이 곰배령이라 적힌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길게 늘어서 있다.

형형색색 우의를 입고 우산을 쓴 행렬이 멀리 보이는 화창한 설악산과 어울려 한 장의 사진을 연출한다.

곰배령은 친근한 이름만큼 정겨운 곳이다.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함이 있다.

정상석과의 사진을 찍기 위해 늘어선 행렬

곰배령에 올라보니 어릴 적 시골집이 생각난다.

어머님께서 앞뜰에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나팔꽃, 깨꽃(샐비어), 백일홍을 심어 꽃이

피어날 때마다 꽃 이름을 알려 주셨다.

누나들과 봉숭아 꽃과 꽃잎, 백반을 빻아 손톱 위에

싸매 묶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손톱이 빨갛게 물들여졌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해 앙큼한 주먹을 꼭 쥐고 다니던 그때가 그립다.

뒤뜰 텃밭에는 아욱, 상추, 쑥갓, 고추, 가지, 오이 등을 심어 채소를 자급했다.


어머님이 생전에 자주 부르시는 노래가 있다.

평양에 두고 오신 외할머니를 그리며 많이 부르셨던 노래다. 가사가 맞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어머님의 노랫소리가 구슬프게 곰배령 골짜기에

울려 퍼진다.


"엄마, 어엄마~우리 엄마 어디 가셨나요."

"지난봄에 나를 두고 어디 가셨나요."

"산에 가시면 쓰라리고요. 넓은 벌판에~"

"엄마생각 그리워서 울었답니다."


각종 식물의 얇은 꽃이 핀 곰배령

멀리 설악산 한계령이 남성미를 뽐내며 우뚝 서 있다.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곰배령과 다르다.

하늘을 맞닿은 산마루 너머로 여행자들이 사라진다.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모습이 폭의 그림이다.

점봉산은 곰배령 주위만 여행할 수 있다.

희귀 식물 보존 구역으로 입산이 금지되어 있다.

비가 오는 날씨가 조금은 아쉬웠지만 물안개 낀 운치 있는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곰취 막걸리, 모두부, 김칫국수로 행복한 여정을 정리하는 이 시간도 한 장의 추억으로 담는다.


곰배령 정상석


제 목 : 곰배령의 눈물

최 경 선


모자 눌러쓴 나그네

꽃물결이 반긴다


어머님이 부르시던 노래

가랑비 되어 꽃길 위에 선하다

망운지정이 얼마나 사무 치셨으면


멀리서 한계령이 손짓한다

'천상의 화원'이 사뿐 대며

네가 오란다


아담 이브 짝 지어준 천국이

바로 여긴데, 금기 어긴 죗값이

출입 제한이라


-2024년 6월 15일 점봉산 곰배령 산행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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