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산의 추억
내 고향은 경기도 이천이다.
많은 희로애락이 묻혀 있는 곳이다.
고향을 떠올릴 때면 가끔 눈물이 핑 돌곤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그렇다.
고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있다.
포근한 엄마 품처럼 따사로운 설봉산이다.
집을 나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
눈이 오면 소박한 설산이 정겨웠고, 저녁노을이
물든 하늘은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보름달이 뜨던 밤, 초승달이 걸린 밤, 그믐달 아래의 밤.. 모두 아름다웠고, 때로는 애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설봉산은 시내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 394m의 아담한 산이다. 칼바위, 영월암,
삼형제 바위등 다양한 볼거리와 전설이 있다.
능선 너머에는 '저명산(猪鳴山)' 또는 '도드람산'이라고 부르는 조그마한 산이 있다.
설봉산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이른 봄, 어른 팔뚝보다 더 굵은 알칡을 캐서 쌉쌀한 맛을 입으로 터득했던 곳이다.
보물찾기, 노래자랑등 봄소풍의 추억이 있고
진달래, 아카시아 꽃을 한가득 입에 넣어 봄의
향기와 향수를 만들어 가던 곳이다.
여름철에는 녹음 우거진 계곡에서 가재를 잡고
철렵을 하며 시원한 폭포수 밑에서 멱을 감던 곳이다.
산밤, 개암, 다래, 산머루, 토종보리수를 따 먹으며 가을의 풍성함에 감사했던 곳이다.
겨울철에는 산토끼, 꿩을 잡으려고 흰 눈이 덮인
산을 온종일 헤매며 허당을 치기도 했다.
겨울밤 늑대 울음소리가 무서워 집 밖에 있는
변소 가기가 싫었던 곳이기도 하다.
오늘 나는 50여 년 전 소싯적, 누렇게 변한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꺼내려고 한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 어느 한가한
가을날 일요일 아침이었다. 동네 꼬마들이 기다란 장대를 어깨에 걸치고 떠들어 대며 신나게 어딘가 몰려간다. 동네 한복판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쪽 길을 따라 개구쟁이들이 줄지어 간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마다 함박꽃 같은 웃음이 피어있다.
고추잠자리, 검은색잠자리, 범잠자리와 소금쟁이, 물방개가 노는 개울 한복판에 누구 집 오리인지 주둥이를 물속에 들이대며 먹이를 찾는다.
빨래를 하려는 동네 아주머니가 돌멩이를 던지자 커다란 날갯짓을 하며 달아난다.
설봉 저수지의 거대한 제방이 눈앞에 나타났다.
둑방길 저 멀리 설봉산이 우뚝 서 있다.
그때는 왜 그리 크고 멀게만 느껴졌던지.
개구쟁이들 이마에 땀이 맺혀 반질반질하다.
누렇게 익어 가는 벼들이 고개를 떨구고 메뚜기가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비탈진 과수원에는 늦복숭아가 군데군데 달려있다. 돌멩이를 던져보지만 서리하기가 만만치 않다.
좁은 오솔길이 길게 뻗어 있다.
목탁소리가 에코 되어 산 중에 걸려 있다.
다람쥐, 청설모가 발길을 잡는다.
영월암 사찰 입구에는 약 600년 된 커다랗고
굵은 은행나무가 서 있다.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웅 대사가 영월암에 잠시 머물 때 꽂은 지팡이가
지금의 은행나무란다.
산사는 점심 공양을 위해 쌀과 나물을 씻느라 분주하다. 우리도 이따가 절에서 점심 공양을 할 예정이다.
대웅전 옆길로 100~150m 정도 올라가면 오래된 밤나무가 수 십 그루 서 있다. 나무를 잘 타는
재순이가 벌써 나무 위에 올라가 잔가지를 흔들어댄다. 밤송이가 우두둑 떨어진다.
키가 큰 태휴와 승덕이는 기다란 장대를 휘두르고 승연이와 나는 밤송이를 까느라 정신이 없다.
알밤을 담은 망사로 된 자루가 어느 정도 채워졌다.
바지 주머니도 불룩하다. 스님 한 분이 급하게 올라온다. 느낌이 이상하다. 나무 위에 있던
재순이가 잽싸게 내려온다. 누구랄 것 없이 산 정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얼마를 달렸는지 모른다. 커다란 바위 뒤에 숨었다. 콩 딱 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숨죽여 한참을 보냈다. 고개를
내밀어 산 아래를 살펴보았다. 정적만 맴돈다.
홀로 된 불안감이 공포심으로 변했다.
키보다 큰 억새풀이 앞을 가리고 작은 나무들과 칡덩굴로 산길이 보이지 않는다.
친구 이름을 목청껏 부르자, 메아리만 떨리는
소리로 되돌아온다.
얼마나 지났을까? 재순이랑 승연이가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났다. 너무나 반가웠다. 땀으로 얼룩진 새까만 두 녀석 얼굴은 영락없는 거지였다.
햇밤이 들어있는 볼록한 바지 주머니를 양손으로 꼭 잡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우습던지,
지금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추억의 사진으로 남아있다. 이제 만나야 할 친구는 태휴와 승덕이다.
허기가 진다. 영월암을 찾아야 했다.
그곳은 우리들에게는 향도였다.
영월암을 지나야 만 집에 갈 수 있다.
화난 스님 얼굴이 눈앞을 스친다.
힘이 빠지고 어깨가 처진다. 불경 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산중이 너무나 조용하다. 파르스름한 햇밤을 까먹고 개암, 다래 등을 따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한참을 산속을 헤맸다. 산 아래쪽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태휴와 승덕이다.
저 멀리 두 놈이 보인다. 잽싸게 뛰어갔다.
두 친구의 얼굴은 우리와는 달리 말끔했다.
스님에게 붙잡혀 훈계를 듣고 절에서 점심 공양까지 받았다고 한다. 배가 불룩하도록 점심을
얻어먹은 두 놈이 부러웠다. 스님께서 친구들을 찾아오라고 했단다. 절에 들어서자 스님이 의외로 우리를 반겨주신다. 일하고 계신 신도에게 점심을 차려 주라고 부탁하신다. 허겁지겁 먹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곤 천천히 먹으라고 눈짓하신다.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저녁노을이 설봉산을 넘으려고 헉헉 대며 뛰어간다.
세월이 흘렀다. 까맣게 그을렸던 얼굴은 주름이
깊이 파였고,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졌다.
하지만 우리의 우정은 변함이 없다.
며칠후면 타임캡슐에 숨겨져 있던 동심들과 만난다. 아직도 목소리를 높이며 티격태격할 때가 많다. 50년 전 녀석들이 그립다.
"친구들아!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자."
" 그리고 행복하자. 사랑한다."
-2021년 9월 중순경 어느 가을날 적다-
추신
2025년 4월 4일, 아버지 산소와 어머님, 누님,
매형을 모신 납골당을 다녀왔다. 설봉산과 추억의 현장도 방문하여 사진도 찍었다. 승덕이와 만나서 막걸리 한잔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