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내 삶을 살자'

내가 하고픈 거 하자

by 홍삼이


●노화, 조용히 다가오는 변화


60대 중반을 넘어서니, 눈이 부쩍 침침해진다.

손가락은 '방아쇠 증후군'이라며 뻣뻣해지고,

몸 곳곳에서 하나둘 고장 신호가 켜지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산에 오르고,

하루에 만 보 걷기를 유지하며 글도 쓰고~

나름대로 일상의 리듬을 지키려 애쓰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 난다.


아내도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침대에는 전기 매트가 깔리고,

건강식품이 하나둘 늘어난다.

왠지 모르게 서글프다.

100대 명산중 70%이상 완등하다.

●반려견 홍삼이, 함께 한 시간


입양 13년 차 홍삼이도 작년보다 눈에 띄게

활력이 줄었다. 녀석의 머리와 가슴을 쓸어주면

꼬리를 살랑인다.


3년 전, 망막 양성 종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왼쪽 눈을 적출해야만 했다. 가끔 산책을 할 때, 고양이가 옆으로 지나가도 못 보고 가는 때가 있다.


옛날 같으면 난리를 쳤을 텐데.

그래도 나름 적응을 잘해서 고맙다.


서서히 이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듯하다.

울컥,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겁게 올라온다.

반려견 '홍삼이'의 모습

● 23년 서울살이의 무게


목동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23년째다.

사람만 늙는 게 아니다.

아파트도 설비 하나하나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돈 들어갈 일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관리비가 40만 원을 훌쩍 넘자

아내의 볼멘소리, 눈치도 이제는 담담히 흘려버린다.


건강 보험료, 자동차 보험, 재산세, 실손보험,

통신비, 식비, 경조사비...

월 2백만 원 남짓한 국민연금으로는 서울살이가

택도 없다.

관리비 내역서

● '하고 싶은 삶'을 위한 계획


아파트 평수를 줄이고,

월 8~900만 원 수준의 연금형 자산 운영

계획을 세밀히 짰다.

자식들 결혼 비용도 현금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이제라도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라고

아내를 설득했다.


하지만 살아온 습관 탓일까.

아내는 선뜻 고개를 끄떡이지 못한다.


●드라마 한 편에 울다


며칠 전부터 딸이 추천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기 시작했다.

16부작을 단 3일 만에 다 봤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주인공들의 인생이

우리의 삶과 겹쳐지며 아내와 나는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는지 모른다.


슬픈 장면이 흐를 때

아내가 슬며시 내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아내가 더 애잔하게 느껴졌다.


'수고하셨습니다'란 제주 방언을

혹시 '깜박 속았다'라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지

않았나 싶어서 '이제라도 하고 싶은 거 하라'며

얼마전 했던 제안을 슬며시 다시 꺼내본다.

'폭싹 속았수다 " 드라마 주요 장면의 유채꽃 밭


●그래,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하자


늦둥이 아들은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 독립했다.

딸도 지금 준비 중인 시험만 합격하면

내 제안을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돈, 권력, 명예를 위해 남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발목을 거는 삶이 안타깝다.

세상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데 말이다.


모래는 움켜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과유불급, 부족한 듯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욕심이 많으면 미련이 남고,

욕망이 크면 후회가 많아진다.

나만이라도, 이쯤에서 다 내려놓고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보련다.


지금도 나는 내게 주문을 건다.


"경선아! 넌 행복한 놈이야.

지금처럼,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내일모레면 추억의 여행을 떠난다.


-2025년 4월 8일 도서관에서 몇 자 적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봄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