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걸 완전히 단절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잡생각이 심해 모든 사람들에게 나만의 기준으로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한다.
관계 맺는게 불편해도 어느정도 사회성은 갖춘 채 사람들과 지내려고 노력한다. 일단은 사람들과 연락 자체를 거의 안 한다. 시시콜콜한 대화로 연락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굳이?'라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그러다보니 관계가 깊게 유지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관계에서 쌍방의 노력이 아닌 일방적인 노력만 있다면 그 관계는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상대가 나를 향한 애정이 너무 심해서 일방적인 관계 유지가 있지 않는 이상. 그런데 이런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상대가 나에게 오는게 없는데 내가 왜 그 상대에게 내 마음을 쏟아야 하는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스쳐지나간 많은 인연들이 있다.
요즘은 그 인연 하나 하나가 뚜렷하게 기억나고 떠오르는데 외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퇴사 후 외롭다는 생각이 문득 치밀어 오를 때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사소하지만 내가 더 용기내어 그 사람들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줄 수도 있었는데 그런 노력을 아예 하지 않고 지냈던 나의 과거가 떠오른다.
'굳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나 싶었는데, 이제는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은 마음이랄까.
생각이 깊어지니 단순 나와 함께한 적이 있던 사람들을 떠오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생각이 치중되기 시작했다. 80% 정도는 단순히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이거나 내가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였다. 20%정도는 나에게 의미가 있던 사람들이였으나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받거나 내가 상처를 준 경우였다.
여기서 말하는 '상처'란 거의 대부분 '말'에 의해서다.
지금은 관계가 다 끊겼지만 한때는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낸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을 더욱 조심히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너무 잘 알기에 내가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했기에 늘 그래 왔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더 쉬운 것을 몰랐다.
방과후 담임으로 일을 할 때 아이들끼리 서로 싸우고 울고 불며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잦았다. 싸우는 이유는 대부분 '말'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이 말의 중요성에 대해 어떻게 다 알겠는가. 누군가 맘에 안들면 그것이 바로 말로 표현되고 말로 되갚아주고 보통은 이러지 않는가.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평생 상처로 남을 말을 듣게 되고. 이런 것을 어떻게 내가 아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어린시절 나의 약점을 아무렇지 않게 놀리던 친구들의 말이 아직까지도 가슴 깊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말의 중요성을 매일 같이 강조했고 사소한 말이더라도 쉽게 내뱉어선 안된다고 했다. 정작 나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살았는데, 아이들은 나처럼 후회하지 않았으면 했다. 적어도 습득이 빠르게 될 때 내 행동을 내가 의식해서 고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때 말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했다.
내가 관계에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깨우치고 느낀건 얼마 되지 않았다.
몇 없는 내 친구들 중에서도 매일같이 만나고 일상을 함께 보냈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날처럼 술자리를 함께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내가 던진 말에 친구가 갑자기 울었다. 웃으면서 울었다.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는 것은 나는 그 말에 의도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말에 한 번도 내 앞에서 운 적 없는 친구가 울었다. 당황하여 연신 사과를 했고 친구는 괜찮다고 웃으며 말하면서도 계속 울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그 친구와의 인연이 끊기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친구가 나를 끊어냈다.
당시에는 내가 뭘 그리 잘못했지?라는 생각에 억울함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끊길 관계면 나도 더이상 의미를 두지 않겠다 생각하고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 친구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채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한 친구와 술을 마시다 그 친구가 뱉은 말에 내가 울었다. 화가 났다.
너무나도 가깝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였기에 더 상처였다.
친구가 내뱉은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적어도 내 마음 상태가 온전했다면 말이다.
그런데 퇴사 이후 여러 고민들과 일들로 내 스스로가 낮아져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친구가 뱉은 말들이 내가 정말 한심한 사람,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다. 물론 친구는 의도가 없었다. 그래서 더 상쳐였을지도. 그냥 넘길 수도 있던 말이 칼이 되어 나한테 꽃힌 것이다. 이 날 이후 그 친구와 관계를 예전처럼은 유지할 수 없겠다 싶었다. 오히려 내 상황과 나를 잘 아는 사람이기에 그 말이 더 상처였던 것이다.
전에 인연이 끊겼다던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걔한테 이랬구나, 걔한테 이런 상처를 준거구나, 왜 그걸 이제야 깨달았을까 등등 수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이 들었다.
의도 없이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던진 말들이 그 사람에겐 의도 있는 날카로운 말들로 갔구나. 내가 정말 나쁘고 못된 짓을 한거구나. 내가 관계를 망쳤던 거구나 싶었다.
말이 이렇게나 위험하다. 한 번 뱉으면 다시 주워담을 수 없기 떄문에. 특히나 그 말이 타인에게 향했던 말들이라면 더더욱.
모든 오해는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 있을까?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려면 내려놓아야 하는 자존심,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현명함, 사과할 줄 아는 용기, 그게 나에겐 없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 친구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줬던 그 친구를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했다. 내가 용서한 이유는 나 또한 용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받았던 상처가 온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시간이 더 흐르면 무뎌질까? 싶지만 아마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