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고독을 가장 잘 이겨낸 현자
어린 시절 방학마다 시골에 내려가면 맞은편 집에는 3대가 모여사는 식구들이 있는데
그중 큰 아저씨는 소아마비에 미혼이었다 동생내외 식구가 소도 키우고 농사도 짓고 해서
같이 사는 전형적인 시골 가정이다.
그 아저씨는 볼 때마다 항상 같은 옷차림이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바지는 무릎까지 살짝 걷어
올리고 마을 큰 나무아래서 혼자 웃으며 있거나 가끔은 경로당에 가서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이
화투장을 들고 아귀다툼을 하는 걸 구경하다가 오는 게 일과의 전부이다
한쪽팔과 한쪽다리가 비틀어져 걷는 것도 불편하고 두 팔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가끔 쓰레기 같은걸
줍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나는 방학이 되어 시골에 가서 할아버지집까지 걷다 보면 항상 그 아저씨가
해맑게 웃어주는 모습으로 맞아주시곤 했다 어린 시절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이제 내가 그 아저씨 나이쯤 되고 보니 그 고독이 만든 그 웃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난 지금 그분보다 덜 고독하다고 할 수 있을까 더 고독할까 인터넷도 있고 tv도 있고
난 왜 해맑게 웃지 못할까 그 아저씨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결국 그 고독과
투쟁해 일찍이 일체유심조의 경지에 다다른 것을 이제 알 것 같다
그 아저씨 방을 잠깐 본 적이 있는데 예전 시골 사랑방이다 안에는 한두 벌의 옷과
작은 밥상과 이불이 전부다 어느 해탈한 스님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무소유
평생을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은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모든 일은 마음에서 짓는 것이니까
생각해 보니 나는 평생을 술에 의지했고 그분은 술 같은 건 입에도 대지 않았다
술이 이끈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버리기엔 너무도 매력적이다
그렇다면 해맑게 웃고 싶은 욕구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겠구나
그 마을엔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 잉여인간으로 단명한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나는 그 부류의 사람과 그 현자 아저씨의 양극단에서 중간쯤에서 현자아저씨의 길은
너무도 가파른 언덕이라 올라가다가도 자꾸 미끄러지는 것이구나
오랜만의 혼탁한 마음속에서 그 아저씨를 떠올리니 나 스스로도
현재의 마음의 위치를 더듬게 되어 보았다
항상 웃어주던 그 웃음 어쩌면 그 아저씨의 마음속에서는 내가 6개월에 한 번씩 조우하는
유일한 친구였을 수도 있었겠구나 낯선 타인에게 웃는 연습을 해보고 싶어진다
나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