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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가젤에 대해

by 톰슨가젤

1996년쯤 아니 맞다 그 해이다 김광석이 죽었고 내가 사랑하던 사람도 죽었고,

난 그 당시 갓 대학에 입학했지만 관심은 없었다. 정신은 멍해있고 그저 술 술 매일 술로 버티어 나갔다.

아니면 인간실격의 요조처럼 슬픔을 감추기 위한 익살대신 흥분 광기 등을 보였던 거 같다. 난 중학교 시절부터 혼자 바둑을 공부한 후 20살쯤에는 8급쯤은 되는 줄 알고 있었다. 가토마사오의 8급으로 가는 행마를 탐독 중이었으니 말이다 고지식하고 남들 의견을 듣지 않을뿐더러 그 당시는 책 외엔 매체가 없던 시절이라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익살대신 알 수 없는 슬픔으로 포장된 광기를 지닌 나는 기댈 곳이 필요했다 난 길을 가다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한 기원이란 곳을 보고는 모든 호기심이 다 끓어올랐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과도 멀지 않아서 아르바이트가 끝나고는 기원에 가 보았다. 원장님은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는 마포질을 흥겨운 리듬에 맞추어하고 계시다가는 나를 보고는 호기심 있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 바둑실력을 조금 알고 싶어서요"나는 수줍게 대답해 보았다

"가토마사오의 8급으로 가는 행마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8급쯤 될까 해서요

원장은 흥겨운 리듬으로 바둑판 앞으로 나를 안내하고는 의자를 빼어 앉는다 그러더니 8점을 깔아보라고 한다. 난 속으로 아니 엄청난 고수인가 8급에 8점을 접어준다면 1급이란 소린데 그런 생각들로 슬픔을 조금은

덮어보았다. 8점을 깔고 깔고 두니 이건 대체 질 수가 없을 것 같은 느낌으로 교만한 마음이 가득했다.


귀에서 날일자 걸쳐오는 백돌은 이미 다 협공되어 있는 형세이므로 몰아세울까 했지만 난 조금은 겸손한 척을 하며 날이자로 받아 두었다. 원장은 무심하게 대각선 반대편으로 또 날일자 걸쳐간다. 나 또한 겸손하게 날일자로 받아둔다 몇 번의 걸침 후에 가운데 한 점이 이상하게 백이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 한 점의 꿈틀거림 살고자 하는 꿈틀거림이 커질수록 뭔가가 이상해져 갔다. 귀의 돌들이 다치고 어느새 가운데의 돌들은 버릴 수 없는 커다란 대마로 쫓기며 주변의 흑돌들을 다치게 했다. 결국 나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귀가 빨개져서는 졌습니다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원장님은 그리고는 "공사범 이 분 상대 좀 해드려"라고는 말한다

한편에서 난로 근처의 의자에 몸을 기대고 졸던 더벅머리의 공사범이라 불리는 아저씨는 눈을 갑자기 뜨더니

고개를 좌우로 한번 흔들더니 잠을 깨려고 애쓴다. 그러더니 나와 원장의 자리를 쳐다보고는 이쪽으로 슬슬

오더니 바둑판을 슬쩍 한번 보더니 나를 옆자리로 권한다 그러더니 9점을 깔라고 한다. 그러더니 오히려 자기 돌을 한 움큼 나한테 준다. 이건 대체 무슨 룰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그는 날렵하게 백돌을 착점 한 후

내가 생각을 하려는 찰나 바둑돌을 손에 들고 손을 허공에 들고 있다. 언제든지 내가 두기만 하면 인공지능처럼 바로 둘 기 세이다. 묘한 매력이 있는 아저씨였다. 나는 그 아저씨에게 9점을 깔고 역덤을 받고도 대패를 했다 한두 판 더 두어주고는 흥미를 잃은 모양인지 "오늘은 여기까지" 라며 순수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더니 tv 리모컨을 가지고 작은 tv 앞으로 가 앉는다 그 주변은 이미 서 너 명의 아저씨들이 둘러앉아 있고 tv에서는 낯익은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린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흩날리는 먼지들과 풀이라고는 거의 없어보이는 황량한 초원 그속에서

사자들이 초원을 배회하다가 무리 지어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고 있다 뿔 달린 사슴같이 생긴 애들이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결국은 목을 물려서 사자들에게 사냥당한다.

아저씨들은 마치 넋을 잃은 듯 그 광경을 보며 삼매경에 빠졌다. 난 아직 귀가 빨개진 채 원장님에게 물었다

"저는 몇 급 정도 되는 걸까요?"

"음 한 13급 되겠어"원장은 인심 쓰듯 대답한다.

승부욕이 강하지만 실력은 없던 나는 엄청난 수치스러움이 몰려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tv앞의 광경은

고요 그 자체로 아나운서의 그 안정된 저음만이 낭독되고 있다. 물론 암사자의 입가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 있다.

세월이 아주 흐른 후 내가 그 아저씨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난 알았다 그 아저씨들은 사자가 되고 싶은 톰슨가젤이었음을 그 프로그램을 보며 삼매경에 빠진 이유가 그 안에 그들의 인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실을 느낀 이유도 아마 나도 톰슨가젤이 되었기 때문이겠거니 생각이 든다.

난 나의 목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는 목을 쓰다듬어 본다. 몇 번이나 물렸던 자국들 사냥당한 자국들을 훑어본다 아직 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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