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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을 다녀오며

by 톰슨가젤


전 직장에서 알던 형님이 계신다. 10살 위 형님이신데 결국은 유일하게 연락을 하는 전 직장 동료이다. 얼마 전 우리는 만났지만, 난 요 며칠 음주를 하다 보니 마음의 한 구석이 허했나 보다. 형하고 약속을 하고 우린 신포동에서 만났다 웃긴 이야기지만 난 어제 신포동에서 혼자 혼술을 하며 길을 방황했었다.

인현통닭집에서 우리는 삼계탕을 먹고 갤러리 한 곳을 방문했다. 통통한 파마 머리의 여자 관장님이 나오셨다. 관람객은 우리뿐, 난 엄청난 정적이 가져오는 공포감에 버티지 못하고 얼마 못 가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난 형님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여자 관장님이 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나를 보고 2층에도 그림이 있다며 들어오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해왔다. 난 바람에 밀려 들어가는 낙엽처럼 딸려 들어가 2층으로 가 형님 옆에 뚱하게 서 있었다. 형과 관장은 적절한 대화로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1층으로 내려와 서로의 어색함을 어떻게든 채워 나간다. 갤러리를 나오고는 난 다시는 이러한 정적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형님에게 어필했다.

근처에는 무슨 근대 문학관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으로 발길을 옮겨 구경을 이어 나갔다. 여기는 관람객을 반기지 않는 듯한 직원이 어설프게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어설픈 문학 지식을 나열하며 구경하다가 발걸음을 옮길 곳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3층에 뭐가 있나 궁금해 올라가니, 다용도실이라고 몇 명의 중년의 여자분들이 모여있다. 형은 고개를 들이밀더니 이내 반가운 인사 소리가 들린다. 나는 3층 과 2층의 중간에서 형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형이 나왔다.

." 아니 북 콘서트를 한다네 얼떨결에 시집을 사고 회비를 내고 나왔어"

"네? 무슨 북콘서트요? 형님 아는 분들이세요?"

"아니, 저번에 문인협회 갔다가 아는 분인데 여기 오셨네 얼떨결에 잡혔어"

"하하 형님 초대받은 자리는 아니고 형이 찾아온 모습이 되었네요 형 커피 한잔하고 가보세요~"

우리는 근처의 찻집으로 가서 차를 두 잔 시키고 글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다가 나왔다.

"아 ~ 그냥 저녁이나 먹자 거기 가봐야 조금 그렇네"

"아니 형 그냥 가세요 회비도 내셨다면서요 ~"

그렇게 우리는 자리를 마무리하고 형은 그곳으로 가고, 난 혼술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나는 길을 나설 때 가방에 넣어둔 책을 펴 들었다. 몇 번의 시도를 하다가 읽지 못한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다시 읽어 본다. 버스에서 책을 읽다 보니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버스는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같은 노선의 버스로 정해진 길을 벗어남 없이 수십 년간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물고기들이 생각났다. 저수지에서 보로 보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물고기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가는 내가 물고기보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에 의해 통제되는 느낌 말이다 분명 자유는 주어지는데 통제되는, 그리고 형과의 오늘 일이 되새김질이 되었다. 약속을 잡고 중간에 우발적으로 헤어지는 일이 분명 불쾌하고 어색할 수 있는데, 난 그렇지 않았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형과 나는 독신 결핍 문학이라는 약간의 공통점이 우리를 묶어 주고 있었고, 또 한 가지는 내가 그동안 사유했던 것의 약간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기쁨이 있었다. 무상의 현실을 인식하는 자세랄까 결국 난 오늘 형을 만나고 바로 오늘 헤어지기로 되어있었고, 형이 우발적으로 그렇게 내 곁에서 조금 일찍 헤어졌더라도 이러한 계기를 만들어준 그것이 알 수 없는 새로움을 만난 기쁨이었다.


나는 묘한 쾌감을 느끼며 구토를 몇 장 읽어 내려가다가는 피로감에 가방에 넣어두고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버스에 타고는 내 옆 자리에 앉는다. 분명 빈자리가 많음에도 내 옆에 앉았다. 그녀가 걸어오는 몇 걸음 사이에 그녀의 안색은 병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건 내 느낌일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이내 틱 장애와 비슷하게 알 수 없는 단어를 간헐적으로 내뱉었다. 묘한 오후의 햇살이 비치는 버스 안에서 나는 굉장한 어색함에 둘러 싸여 있었고 형님의 대한 생각은 잠시 밀려나게 되었다. 그녀의 간헐적인 외침은 반복되었고, 나는 조금은 불편해지고 약간은 그녀가 여기서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곧 나는 한 정거장 전이지만 그녀를 피해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벨을 누르고 내리려는 자세를 취하자 그녀의 굽이 높은 커다란 부츠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그녀의 찬란했을 거 같은 과거를 그녀는 자신의 신에 아직 남겨 두었음이 생각되었고, 그녀의 재빠른 발놀림에 나의 어리석은 마음의 여유 없음이 들통 나 버린 느낌이었다.

형에 대한 생각으로 유연하고 조금은 넓어진 마음도 좁아진 혈관처럼 수축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버스의 뒷문 손잡이를 잡고 그녀를 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었다. 분명 무언가 애절한 마음이 있을 거란 생각이 났지만 난 그러지 못하고 버스를 내려 또 술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생각이 들었다. 호의를 품은 대상에게는 관대할 수 있지만, 길가의 강아지 고양이에게는 관대할 수 있지만 낯설고 병든 자에게는 관대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마음 한구석은 조금은 다시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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