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제 갈 곳이 없다 3

휴지역에서

by 톰슨가젤

이상하다 이상한 법칙이 날 휘감고 있다. 최근에 말이다. 예를 들어 집 근처에서 지나가는 타인을 우연히 눈여겨보았다면,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10-20분 사이에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 벌써 몇 번 아니 10번도 넘은 것 같다. 물론 그 인물들은 전부다 다른 인물들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타인들 하지만 나의 외로움이 그들을 나의 뇌리 속에 조각한다. 내가 기억하려고 하는 의식이 아니다. 무의식 외로움이 조종하는 무의식이다. 이쯤 되면 난 어떤 공간에서는 어떤 인물이 나타날 텐데 하는 퍼즐까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권태로부터 숨는다.


한가한 오후 나는 전철을 타고 흘러가고 있었다. 남쪽으로 가는 전철이니 중력의 법칙에도 맞는 게 아닌가 흘러간다 전철 문이 열리고,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할머니 셋이 수레를 들고 탄다. 그 수레에는 예의 그 보자기로 싼 두루마리휴지가 한 두 묶음씩 들어 있다.

"아니 당신 건 왜 두 묶음이야" 노약자 석에 나눠 앉은 한쪽의 할머니는 건너편 두 할머니 중 한 명에게 말한다

"한 개는 이이 거지" 라며 질문을 받은 할머니는 옆 할머니를 고개를 돌려 바라보곤 다시 맞은편, 질문을 한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그 왁자지껄한 소음을 동반한 그 두루마리 휴지를 보고 할머니들을 번갈아 안보는 척하며 바라봤다. 할머니들은 뿌듯한 표정과 단단한 만족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전철과 전철사이 그 연결부위의 발판 위에서 흔들리는 두부에 올라탄 느낌으로 기대어 할머니들을 관찰하며 생각한다.

멜키아데스가 드라이아이스 혹은 틀니를 가져와서 현혹하고, 휴지 몇 개를 주고 할머니들의 영혼을 훔쳐간 것 같은데... 나의 입은 할머니들과 무언의 협상을 하고 싶어 움찔 거린다. 이런 주책맞게, 외로움이 또 입술을 달그락달그락 움직이려는 걸 간신히 절제하고 있다.


그때 옆에 키가 작고 무테안경을 쓴 단단한 차림의 여자가 나타났다. 그 여자는 나의 법칙에 맞긴 했지만 예외가 있는 여자랄까 오늘 본 여자가 아니고, 얼마 전에 본 여자다 나의 외로움은 역시 그녀도 각인해 두었다.

그녀는 나의 바로 앞에 서서 할머니들을 요리조리 관찰하고 있다. 그녀의 옆모습이 나의 바로 앞에 있다. 그녀의 듬성듬성한 흰머리가 검은 패딩모자 밖으로 조금 삐져나와 테가 없는 안경알 위로 흐느적 거린다.

그 안경알 위로 그녀의 호기심 어린 눈이 할머니들을 꾸짖으며 무언가를 말할 채비를 한다.

" 어르신들 , 이거 이거 휴지 어디서 주셨나 보다. 무슨 행사하는데 다녀오셨어요?"라고 말하며 할머니들에게 말을 건다.

"이거, 앉아있는 값이야. 가서 앉아 있으면 다 주는 거야 "라며 한 할머니가 대답을 한다.

"그러니까 앉아 있으면 이걸 준다는 거죠? 근데 할머니 혹시 이름 전화번호 주소 이런 것도 써 주었어요?"라며 그녀가 한 할머니를 보며 캐묻는다

"그럼~ 이름하고 전화번호 써달라고 해서 써줬지~" 한 할머니가 해맑게 뚱한 표정으로 약간은 성가신 듯 대답한다.

"어르신들 이거 큰일 날 수도 있는 거예요 개인정보를 다 내주고 휴지랑 바꿔온 거라고요 더 큰일 날 수도 있고요 "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약간은 횡설수설한다.

"저는 경찰서 법원만 수천번을 다녀온 사람이에요 이런 걸 너무 잘 알아요" 라며 그녀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할머니들은 이제 매우 성가신 느낌이다. 할머니들의 눈동자 위로는 분노감이 약간 스쳐간다.

"그러니까 할머니들 거기서 앉아서 , 개인정보를 다 주고 이깟 휴지를 받아 왔다는 거죠 "라며 그녀가 재차 이야기한다.

"아유~~~ 젊은 여자가 왜 참견이 그리 심해. 별꼴이야 정말 " 한 할머니가 숨을 약간은 씩씩대며 분노를 표출한다. 약간이 정적이 흐른다.

"할머니 저도 이제 50이에요!"라며 여자가 돼 받는다.

"아니 낼 모라면 관뚜껑 닫고 들어갈 건데, 사기 좀 당하면 뭐 어때서 이걸로 똥이나 닦다 가는 거지 뭐"

다른 할머니가 능청스럽게 받으며, 그녀를 응시한다. 그녀는 상대를 잘 못 고른 거 같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반격할 기회를 찾으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 역은 휴지, 휴지 휴지역입니다.! 디스 탑 휴지 휴지" 안내방송이 나온다.

할머니들은 다시 분노를 풀고 깔깔깔 웃는다.

나는 휴지역에서 나의 자식 같은 호기심을 남겨놓고, 내린다.

휴지라. 잠시 쉬는 곳이라니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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