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육공 Oct 18. 2022

살고는 싶은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나는 지금 물에 술을 붓고 있다. 내가 멈추지 않고 계속 술을 붓는다고 하면, 물은    물이  거고, 그러다가 물과 술이 정확히 반반인 경계를 넘어가면  이상 술을  물이 아니게 된다.  경계를 넘는 순간부터, 나의 행위는 술에 물을 타는 행위로 변질되는 것이다. 내가 물에서부터 시작해도 나는 술이   있고, 반대로 술에서부터 시작해도 물이   있지만  어떤 것도 '진짜' 물과 술은 아니다.


    물이  정신을 대유하고 술이 취함을 대유 한다면 인생을 물에   , 술에    살기는 조금 힘들  같다.  험한 세상을 어떻게 100%  정신으로만 살아갈  있을까? 만취한 인생도 마찬가지, 삶을 건사하기가 쉽지 않다. '진짜' 산다는  언제 오염될지 모르는, 상처받기 쉬운 이다. 그럼 결국   물이나   술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게  애매하다. 도대체 어떤 비율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을 구할 때쯤이면 이미 환경 문제로 인류의 수명이 끝난 후이거나,  숨이 멎을 때쯤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평생 답도 모르는 채로 삶을 마칠   겠다.


  어릴  나는 내가 서른이 되면 달에 600  정도 벌면서 42평짜리 집도 있고, 광낸 차도 있고, 번듯한 직업도 있을 줄로만 알았다. 막상 지금의 나는 자가도 자차도 없는 월세 인생에, 600 원은커녕 600 적립금 모으자고 꼬박꼬박 계산대에서 번호를 입력하는 소시민으로 살고 있다. 물론 프롤레타리아 인생이라 하여 삶에 대한 고민이 없지는 않다. 의식주는 생존일  삶은 아니니까. 애초에 나는 '어떻게  벌지?'보다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지?'  관심 있는 인간이다.

  잠들기 전이면 나는  나와 세상과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서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 하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 사랑을 믿어서 이타적인 사람으로 살고 싶다. 물론 최근의 결론이기에 언제 변할지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갈지를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있지? 어떻게 살아야 끊임없이 사랑하며   있지? 어떻게 살아야  그대로 멋있는 어른이   있지? 참고로  꿈은 눈가에 웃음 주름이 인자하게 피어있는, 위스키를 마시며 마작을 치는 할머니였다.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인해 금주한  오래이고, 250 원짜리 자동 마작 테이블은 진작 포기하였지만 아직도 멋진 할머니가 되겠다는 꿈은 접지 않았다.


  그리하야,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나는 얼렁뚱땅 굴러가며 사는 중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누더기처럼 여기저기 기워놓고, 중구난방으로 칠해진  조합을 방치하며 그렇게 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작게나마 시도해보고, 마음에  들면 던져버리고. 가끔은 뜻대로 되지 않는 자본주의적 생존에 절망하다가, '그래도 굶어 죽진 않겠지, 대충 살자'라며  다른 꿈을 꾼다.   술인지,   물인지는   없지만 이렇게 어중간한 인생 속에서 ''라는 세상이 나름대로 형태를 갖추어간다. 아직 내가  전부를 파악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까  우당탕탕한 ()에서 무언가 얻어갈  있다면 얻어가고, 참견하고 싶다면 참견해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서로 우당탕탕하며 함께 구르다가 웃고 울고 화내고 공감하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같이 구르다 보면 예쁜 조약돌이 될지도 모르고 끝까지 마모되어 고운 모래가 될지도 모른다. 돌이 모이면 돌탑이 되고, 모래가 모이면 모래사장이  테니  모습을 누군가와 함께 발견할 그날까지 아무렇게나 굴러가는 물도 술도 아닌 생의 조각을 모아보려 한다.


2022.10.07. 첫 글

26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