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때려치우고 싶다
이제까지의 글만 보면 삶에 대한 열망이 남다른 것 같지만, 오늘도 출근한 지 1시간 반 만에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오천 번쯤 하였다. 인생에서 내가 일으켜 본 기적이라고는 밍기적과 어기적뿐이라 나태함이 관성처럼 남아있는 걸지도 모른다. 클라이밍을 배웠으니 나태 지옥에 가서도 봉을 기어올라 그 위에 누워 잠을 청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긴...... 운동 안 한지 오래라 전완근이 못 버틸 거다. 글은 월급을 꽁으로 받는 시간에나 쓰는 거지 집에서 쓰라 하면 달에 한 번 쓸 위인이라, 나를 조금이라도 부지런하게 만들어준 직장에 감사해야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나마도 연금 복권에 당첨되면 당장 때려치울 예정이다. 사실 귀찮아서 복권도 잘 안 산다.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하면 집에 있을 때 '누워있는 사람'과 '앉아있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는 확실한 전자이다.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간 공식적으로 은거했을 때, 몸은 좀 아플지언정 정신은 얼마나 행복했는지, 격리가 끝나는 날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침구 속의 안온함으로 질식하고 싶다. 뛰어야 한다면 메타버스 세상에서나 뛸 것이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행복을 그저 불행의 부재 정도로 여기면 홀로 누워있는 시간이야말로 천국인가 싶다. 그러나 진정한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다.
그토록 사랑하는 이불속에 오래도록 파묻혀 있으면 스멀스멀 불안감이 기어오른다.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은 나와 동떨어졌고, 세상에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누워있으면 안 될 텐데, 누워서 스트레스 받을 거라면 차라리 공부하고 돈 벌며 스트레스 받아야지! 꼬리를 무는 불안감에 어느덧 아늑했던 집이 뱀 소굴로 변한다. 아니다, 나 스스로 꼬리를 문 뱀이 되어 버린다. 매일 말로만 대충 살아야지를 외치고 정작 걱정 투성이인 삶이여! 밍기적은 불순한 기적이 나니!
아이들은 종종 너무 멋진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 일전에 학생에게 그간 뭐하고 지냈냐고 물었더니 "인간이 되는 연습을 했어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하냐고 되묻자 "그냥 뒹굴 댕굴 하면 돼요"라고 무심히 답했다. "그래서 인간은 됐니?"라고 반문했더니 "반만 됐어요. 아침부터 뒹굴거리지는 못했거든요"하였다. 그럼 나머지 반은 뭐냐고 물어보니 대뜸 "사람이요. 반은 인간, 반은 사람"이랬다. 이 친구야 말로 밍기적을 기적으로 여기는 친구였다. 어차피 일으킬 기적이라면 순수하게 받아들임이 좋다. 안온함에 중독된 삶이라도 인간이 되는 연습이다.
그러니 나도 인간이 되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냥 뒹굴기만 하면서 걱정하지 않는 연습, 실패했더라도 사람이니까 그렇지 뭐 하고 개의치 않는 연습, 밍기적에 이유를 붙이지 않고, 오롯하게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리는 걸 보니 나는 평생 인생 연습생으로 살 것 같다.
추신, 알아차렸을지 모르지만 밍기적의 표준어는 '뭉그적'이다. 하지만 대충 살자!